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편경·편종 악기장 김현곤씨는 “편경의 소리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와 같다”고 설명한다. 국립국악원 제공
편경 악기장 김현곤 제작 시연
삼십년 헤매 국내서 ‘궁중옥’ 찾아
두달간 깎고 갈아낸 16개의 ‘ㄱ자’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맑지요”
삼십년 헤매 국내서 ‘궁중옥’ 찾아
두달간 깎고 갈아낸 16개의 ‘ㄱ자’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맑지요”
“편경 돌을 찾아 중국 땅을 3년이나 헤매고 다녔습니다. 1980년대니까 정보기관한테 전화도청도 당했어요. 그때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오려 합니다.” 국악기 편경(編磬·오른쪽 사진)을 만드는 김현곤(79)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중요무형문화재 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을 연주하려면 꼭 필요한 게 편경이다. 모든 악기의 음을 조율할 때 편경에 맞추기 때문이다. 2층의 걸이에 각각 8개의 ‘ㄱ’자 모양 돌을 매단 편경은 맑고 청아한 소리를 지녔다. 세종 때 박연은 중국에서 수입하던 편경을 경기도 남양의 돌로 처음 ‘국산화’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돌의 산지와 제작기법의 명맥이 끊겼다. 국내에서 돌을 뒤지다 찾지 못한 김현곤은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북으로는 헤이룽장성에서 남으로는 차마고도의 초입 윈난성까지 중국 전역을 샅샅이 뒤졌다. 공자의 주유천하에 비유할 만하다. 중국을 헤맨 지 3년여 만에 1989년 허난성에서 적합한 돌을 찾아냈다. 맑은 소리를 내는데다 흰색이었다. 그 돌을 배로 실어와 1990년 편경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토록 찾아 헤맬 때는 보이지 않던 ‘세종 때의 편경 재료’ 남양석이 우연히 눈에 띄었다. 2008년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들과 경기 남양 건달산에서 편경의 재료인 남양석을 본 것이다. 이후 그 광산 소유주가 가져온 ‘궁중옥’으로 편경을 만들게 된다.
김현곤은 2012년 뒤늦게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편경·편종 악기장으로 지정됐다. 그는 오는 10일까지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에서 열리는 ‘악기장을 만나다’ 행사에서 편경 제작 과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4일 그를 만났다.
“편경은 시원하면서 맑은 소리가 납니다.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라고 할까요?” 하지만 돌을 다듬는 장인의 손은 거칠고 마디가 툭 불거졌다. 손등엔 푸른 멍이 들었고 손바닥엔 옹이가 졌다. 수도 없이 다친 손톱은 검게 변했다.
그는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쑥대머리’로 유명한 임방울 명창과 동향이라고 자랑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와 악기점에 취직했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김현곤은 색소폰 등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구조와 원리를 익혔다. 3년 뒤엔 악기점을 차렸다. 그 뒤 양악기 제작사를 만들어 수출까지 나섰다.
1980년대 초 한만영 국립국악원장이 “편경하고 편종이 다 망가졌다”며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편경·편종 악기장의 길이 오늘에 이르렀다.
편종을 만들려면 우선 돌을 30㎜ 두께로 자른다. 거울처럼 광이 나게 간다. 소뿔 망치로 두들기면서 깎고 또 깎는다. 율관이라는 측정기에 음이 정확한가 맞춰본다. 두께가 조금만 얇아져도 음이 내려간다. 조심조심. 그리고 조각장, 단청장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편경이 완성된다. 하나를 만드는 데 대략 두 달 정도 걸린다. 돈벌이를 생각했다면 예전에 이 일을 접었다. 이렇게 편경을 만들어 보급한 것이 2002년부터다. 주 고객은 국립국악원, 시·도립국악단과 대학교 국악과 등이다.
이번 ‘악기장을 만나다’ 제작 시연회에는 김현곤을 비롯해 가야금 악기장 고흥곤, 북 메우기 악기장 이정기가 참여한다. 여름방학을 맞아 자녀와 함께 국악기를 둘러보고 제작과정도 체험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국악기 편경(編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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