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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천재 김홍도와 맞수 이인문…두 폭의 낙원으로 오시라

등록 2014-08-07 18:59수정 2014-08-07 21:59

이인문의 대작 ‘강산무진도’. 산세 등 대자연의 기운을 치밀한 세부 표현과 부드러운 톤으로 묘사한 이인문 식의 정통 화풍이 단원과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인문의 대작 ‘강산무진도’. 산세 등 대자연의 기운을 치밀한 세부 표현과 부드러운 톤으로 묘사한 이인문 식의 정통 화풍이 단원과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9월28일까지
궁중화원 함께 다닌 진짜 라이벌
산수 쪽은 이인문이 낫다는 평도

길이 8.56m 대작 ‘강산무진도’
단원의 털털한 명작 ‘삼공불환도’
한·중·일 산수화 109점 한곳에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불세출의 화가라는 18세기 거장 단원 김홍도(1745~1806?)의 맞수는 누구일까. 세간에선 미인도와 야한 풍속도를 그린 혜원 신윤복(1758~?)을 점찍는다. 비슷한 영정조 때 사람이고, 서민 생활을 담은 단원과 상반된 화풍을 구사했으며, 평생 야인으로 외면당한 혜원의 삶이 궁중화원 출신인 단원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탓이다.

사실, 단원이 혜원과 교유한 역사 기록은 없다. 미술사가들은 혜원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10년 이상 어리고, 삐딱한 화풍을 고집하는 후배를 굳이 주목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백인산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은 “단원과 함께 정조 어진을 그린 혜원의 아버지 신한평(1726~?)이 단원과 더 밀접한 동료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실 학계에서 꼽는 단원의 진짜 맞수는 동갑나이에 같이 궁중 화원을 지낸 이인문(1745~1821)이다. 단원의 먼 친척이자 평생친구였던 그는 ‘늙은 소나무, 흐르는 물을 마음에 담는 이’라는 뜻의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이란 긴 호를 썼는데, 필력 면에서 생전 단원의 유일한 경쟁자였고, 산수 표현 등에서는 더 낫다는 평도 받는다. 단원이 모든 그림 장르에 통달한 다재다능형이라면, 이인문은 산수화에 집중해 지존의 경지를 이뤘다. 정조의 총애를 함께 받았던 그들은 알게모르게 서로 화풍을 의식했을 것이다.

마침 단원과 이인문의 그림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특별전시실에 차린 ‘이상향 산수를 그리다’전이다. 국내 옛 회화중 가장 큰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와 단원의 산수화 대표작인 ‘삼공불환도’가 사상 처음 한 자리에 모였다. 길이 8.56m의 대작 <강산무진도>는 전시실 안쪽 가장 깊숙한 곳에서 한·중·일 산수화들을 굽어본다. 가로 세로 크기가 각각 4m, 1m를 넘는 ‘삼공불환도’는 들머리에서 조선 산수화의 진경을 펼쳐보인다.

단원 김홍도의 대작 ‘삼공불환도’. 조선 특유의 풍경과 운치가 그림 곳곳에 배어든 단원 특유의 화풍이 돋보인다. 이인문과 김홍도의 대작은 사상 처음 한 전시장에서 만났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단원 김홍도의 대작 ‘삼공불환도’. 조선 특유의 풍경과 운치가 그림 곳곳에 배어든 단원 특유의 화풍이 돋보인다. 이인문과 김홍도의 대작은 사상 처음 한 전시장에서 만났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궁궐 그림으로 추정되는 ‘강산무진도’는 자연과 문명이 너그럽게 어울린 대동세상이다. 연록색 바탕 화면에,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강직한 붓질로 화면 오른쪽에서 생겨난 산세가 왼쪽으로 휘몰이하며 장강처럼 흘러간다. 그 흐름 속에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과 마을·포구·농토의 후덕한 풍경, 노송과 호수 등이 함께 어우러졌다. 그의 호처럼 흐르는 물과 고송을 좋아한 화인의 취향이 8m넘는 화폭 속에서 갈래갈래 붓질로 재현되었다. 갖가지 준법(표현법)으로 묘사된 바위절벽의 상서로운 기운과 그의 장기인 솔바람 휘날리는 소나무숲, 사람들의 자잘한 움직임 등은 어느것 하나 튀지 않고 조화롭다. 중국 전통산수의 구도로 유교적 낙원의 풍경을 그렸지만, 특유의 부드럽고 유장한 분위기는 이인문만의 개성적 화풍이라고 할 수 있다.

단원의 ‘삼공불환도’도 낙원이다. 그런데, 어딘가 허투루 뵈고, 털털하다. 18세기 조선 세속의 냄새가 풍기는 전원 풍경이다. 1801년 순조가 수두를 앓고 나은 것을 기념한 그림인데, 자연과 즐기는 삶을 높은 벼슬과 바꾸지 않겠다는 중국 후한시대 문인 중장통의 <낙지론>을 주제 삼았다. 그런데, 이 천재화가는 그 풍경을 장독대 있고, 여염집 여인이 주안상을 들고 마당을 오가며, 선비가 곰방대 물고 전각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풍경으로 탈바꿈시켜놓았다. 낮고 푸근한 모양의 언덕바위, 그 주변 밭에서 고개숙여 일하는 농부들, 소타고 숲길에서 나오는 선비들까지 다 정겹다. 말년기량이 흠뻑 녹은 이 명작은 왜 단원이 가장 조선적인 화가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지를 여러 요소들로 보여준다. 삼성가 이건희 회장의 애장품이기도 하다.

전시장엔 관념 속 이상향을 그린 한·중·일 산수화 명품 109점이 모였다. 박물관 역대 회화전중 최고 컬렉션이다. 우리 전통화의 뿌리인 중국 명대 남종화 창시자 문징명과 동기창 친필의 산수화들이 처음 들어왔다. 청나라 건륭제의 평이 적힌 14~15세기 명대의 귀거래도, 남송대 하규의 산수화, 중국 1급 문화재인 15세기 두경의 ‘남촌별서도’, 일본 거장 소아미의 ‘소상팔경도’ 등도 다 처음 선보이는 최고 명품들이다. 이 막대한 명품목록들을 감안하면, 더 넓은 기획전 공간에서 펼쳤어야 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9월28일까지. (02)2077-90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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