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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공황기 미국의 ‘잉여가족’

등록 2014-08-18 19:39수정 2014-08-18 21:37

연극 ‘유리동물원’
연극 ‘유리동물원’
리뷰연극 ‘유리동물원’

테네시 윌리엄스 자전적 작품
파경 이른 가족의 절망 담아
무대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계산된 무대다. 잘 나가던 미국경제가 기울었고, 이 집 가세도 기울었기 때문이다. 어둑한 골목 아래 길은 싱크홀처럼 푹 꺼졌다. 이 집 사람들 처지도 푹 꺼졌다. 낡은 아파트에 들어서면, 거실에 깨진 거울이 보인다. 깨진 거울은 파경(破鏡)이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 부부 사이가 깨졌고,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도 깨졌다.

6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막 올린 <유리동물원>(한태숙 연출)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유명한 테네시 윌리엄스의 자전적 작품이다. 이 연극의 대사는 대학 연극과 실기시험에 가장 많이 출제된다고 한다. 학생 관객들이 식빵 속의 건포도처럼 객석 곳곳에 박혀 있다.

세 명의 가족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존재다. 1930년대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어머니 아만다(김성녀 분)와 다리를 저는 딸 로라(정운선 분), 구두공장에 다니는 아들 톰(이승주 분)이 등장한다. 1930년대 미국은 2014년 한국과 오버랩된다. 아만다 가족이 절망의 현실을 회피하는 동안, 80년 뒤 한국에선 궁핍에 못 이겨 목숨을 끊는 ‘세 모녀 사건’이 벌어진다. 아만다 가족을 공황기의 ‘잉여가족’이라고 부른다면, 지금 한국에서도 ‘잉여가족 ’이 넘쳐난다. ‘잉여’는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한 젊은이들이 자신을 ‘쓸데없는 인간’이란 뜻으로 부르는 말이다.

먼저, 어머니 아만다는 처녀 시절을 농장주들로부터 애정공세를 받던 시절을 회상하지만, 남편은 16년째 ‘외출 중’이다. 다리를 저는 생쑥맥 딸 로라와 밤새 극장을 떠도는 아들 톰도 못마땅하다. 아만다는 ‘억척어멈’이 될 수밖에 없다. 삼류잡지를 팔기 위해 끈질기게 다이얼을 돌리고,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과장된 배우’가 되기도 한다. 아들 톰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만, 시인을 꿈꾸고 선원이 되려고 한다.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 톰의 누나 로라는 유리동물을 모으고 그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연기도 만족할 만하다. 김성녀는 ‘2014년 한국 엄마’ 같다. 결핍의 상징인 정운선은 유리동물에 자기만의 망명정부를 세웠다. 이승주는 김성녀에게 마귀할멈이라고 쏘아붙였다.

상징코드도 눈에 띈다. 로라의 별명인 ‘파란 장미’가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면, 스윙재즈와 골목길의 키스는 마땅히 기댈 곳 없는 젊음의 일탈이다. 그리고 첼로의 활은 슥~ 관객의 가슴에 혈흔을 남긴다. 30일까지. 1644-2003.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명동예술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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