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낮 음악인 이옥경씨가 휴전선 비무장지대 바로 밑인 양지리의 폐정미소 안에서 첼로로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리얼 디엠제트 프로젝트
철원 양지리 마을 곳곳 머물며
국내외 작가들 작업 구상·설치
이옥경씨 첼로 ‘불협화음’ 백미
31일부터 새달 27일까지 전시
철원 양지리 마을 곳곳 머물며
국내외 작가들 작업 구상·설치
이옥경씨 첼로 ‘불협화음’ 백미
31일부터 새달 27일까지 전시
“야, 지평선이다!”
산 정상에서 누군가 외쳤다. 정말이었다. 철원 비무장지대(DMZ)의 울창한 수림 너머 북쪽에, 평강고원의 지평선이 빛나고 있었다. 그 땅의 선은 북녘 첩첩산봉우리 사이를 힘차게 죽죽 걸치면서 멀리 허공을 이고있는 모습이었다. 화산 폭발로 형성됐다는 북쪽 고원은 지평선 아래 검붉은 현무암 빛으로 물들었고, 디엠지 남쪽 철원 평야는 막 황금빛으로 변하는 중이다. 비갠 하늘 아래 더욱 박진감있게 다가오는 철원 디엠지의 파노라마다. 국내에서 보기힘든 지평선이 힘찬 산세와 만나 부린 절경 앞에 ‘한반도의 스위스 같다’는 찬사가 터져나왔다.
27일 낮 강원도 옛 철원읍의 서쪽 고지 소이산 꼭대기. 진창길 걸어 올라온 수십여명의 작가와 기획자, 취재진은 이 디엠지 절경부터 넋놓고 감상했다. 그 뒤 풍광을 배경 삼아 소이산에 벌인 미술가들 난장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정상 아래 벙커로 들어가 불을 켰다. 텅빈 공간에 반들거리는 스텐스틸 테이블과 그 옆벽에 유령처럼 쪼그린 사람 이미지를 붙여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유럽에서 활동해온 중견작가 구정아씨가 ‘친애하는 영회에게’로 이름붙인 이 설치작업은 평화로운 몽상이다. 2차 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은 가상의 인물 영회를 떠올리면서 벙커의 군사적 용도가 끝날 미래에 작가들의 새 작업공간으로 벙커를 상상한다는 생각을 담았다. 평강고원 지평선이 눈에 잡히는 정상 전망대에는 알버트 삼레스라는 미국 작가가 전등갓과 거울들을 치렁치렁 매단 작품들을 설치해 생뚱하면서도 야릇한 느낌을 안겨준다. “남한의 대량생산 문화, 북한의 획일성을 동시에 짚은 작품”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이날 예술투어는 아트선재센터가 2012년부터 철원에서 시작해 올해 세번째를 맞은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다. 비무장지대 접경지역 주민들 삶과 분단 실상을 미술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살펴보자는 기획이다. 지난해까지 철원 ‘안보관광지’ 길목을 돌며 작품을 설치했는데, 독일 건축가 니콜라우스 히르쉬가 김선정 부관장과 기획한 올해는 다소 변화를 꾀했다. 민통선 부근 양지리 마을에서 국내외 작가들이 머물며 작업을 구상하고, 철원 구석구석을 살핀 작가들이 설치 장소 특성에 맞춰 스며들 듯 작품을 설치했다. 소리 중심 사운드아트도 들려주고, 전시현장을 돌아볼 버스 안에서도 통일 낭송문을 읽는 등의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다.
실제로 이날 소이산을 찾기 전 양지리 폐 정미소에서는 연주자 이옥경씨의 첼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정미소로 첼로를 켜면서 들어간 그는 처연한 단조로 시작했다가 활을 격렬하게 움직이며 불협화음을 정미소의 부서진 공간 속에 가득 채웠다. 금속 첼로 받침대를 바닥에 끌면서 불협화음이 더욱 돋보이게 한 그의 연주는 단연 백미였다. 불안과 평화가 공존하는 디엠지 현실을 청각적으로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평이 나왔다. 마을창고 안에서 스웨덴 농가 창고를 핵벙커로 개조하는 과정을 냉혹한 다큐 영상으로 찍은 존 스코그의 영상도 공간과 잘 어울렸다. 아르헨티나의 아드리안 비야 로하스 팀은 마을 안에 간이 작업실을 만들어 1달여 동안 살면서 주민들 삶과 대화를 점토 등의 자연재료로 표현하고 영상화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작가는 “오자마자 매혹됐다”며 “불안과 평화가 공존하는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는 과정 자체가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 경원선 끊긴 월정리 역사에서는 판문점에서 미군이 한국전쟁에 대해 설명하는 육성을 녹음한 사운드 작업과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는 영문 네온 글귀를 설치한 최재은씨 작품도 볼 수 있다. 31일부터 다음달 27일까지. 전시 기간 중 매일(화 휴무) 서울 아트선재센터와 철원을 오가는 투어버스가 운행된다. 투어비 3만원. www.realdmz.org, (02)733-8948.
철원/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은 전등갓, 거울 등으로 이뤄진 앨버트 샘리스의 소이산 설치작품. 아트선재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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