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연극단 ‘연필통’ 단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갈월동 다시서기지원센터 연습실에 모여 가족극 <우리 집에 왜 왔니> 연습을 시작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서로 별명으로 부르는 이들은 자기소개도 별명으로 밝혔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블랙홀, 김대리, 현태, 연꽃, 들국화, 뱅크, 시나브로, 백구.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문화‘랑’] 노숙인 극단 ‘연필통’
연극으로 필이 통하는 사람들이 뭉쳤다. 노숙인극단 ‘연필통’ 사람들은 연극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내친김에 잃어버린 가족도 찾고 일자리도 찾고 싶다. 오는 10월 공연을 앞둔 이들한테 출연료를 챙겨주자는 크라우드펀딩도 진행중이다.
연극으로 필이 통하는 사람들이 뭉쳤다. 노숙인극단 ‘연필통’ 사람들은 연극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내친김에 잃어버린 가족도 찾고 일자리도 찾고 싶다. 오는 10월 공연을 앞둔 이들한테 출연료를 챙겨주자는 크라우드펀딩도 진행중이다.
연극으로 필(feel)이 통하는 사람들. 줄여서 ‘연필통’이다. 노숙인 극단 연필통은 2012년 생겼다. 2006년부터 간간이 연극을 올렸지만, 본격 활동은 그때부터였다. 연필통 사람들은 어떻게 ‘연극과 통하게’ 됐을까?
“저는 원래 고함을 지르지 않거든요. 연극을 하면서 내 맘 먹은 대로 큰 소리를 내니까 속이 후련해졌어요. 대인관계도 괜찮아지더라고요. 그 전에는 내 일만 하면 됐지 남들 생각은 안 했는데, 대사를 주고받는 연습을 하고부터는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너가 필요하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뱅크’(38)는 연극으로 사람들과 ‘통했다’. 이들은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 ‘들국화’(45)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원래 영화나 연극을 좋아했는데, 연극을 하니까 너무 재미있었어요. 소심한 성격도 극복했고요. 그 전에는 필요한 말이 있어도 잘 안 했는데, 요즘에는 당장 필요하다고 느끼면 바로 말을 해요.” 곁에 있던 ‘블랙홀’(32·안상협 사회복지사)이 “연극을 한 뒤 들국화가 많이 밝아졌어요”라고 거든다. 연극을 통해 대인관계도 좋아지고 성격도 밝아졌다면 이들이 연극에 매달릴 까닭이 충분한 셈이다.
요즘 연필통 사람들은 10월24, 25일 서강대 메리홀에서 올릴 예정인 연극 <우리 집에 왜 왔니> 연습에 한창이다.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시립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지하 프로그램실에서 연습에 참여한 8명을 만났다. 공공근로를 나간 이들이나,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뛰는 전기송(35) 연출은 이날 연습에 불참했다.
“10월 공연엔 가족 부르고파”
연필통 사람들이 연극을 하는 이유가 ‘뱅크’처럼 대인관계 개선에만 있는 건 아니다. 연극을 통해 흩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고, 새 일자리도 얻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요즘 ‘촌놈’(74)은 구청에서 자활근로를 하고 있다. 그는 1990년대 말 구제금융 시기에 노숙을 시작하면서 형과 사이가 틀어졌다. 형한테 도와달라 매달렸지만, 형이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뒤론 연락도 툭 끊겼다. 하지만 그는 이제 형을 애타게 찾고 있다. ‘촌놈’은 무대에 서면 혹시 가족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기대한다.
‘들국화’(45)도 노숙을 하면서 가족과 헤어졌다. 연극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재작년 그동안 연락을 끊었던 아버지와 형을 찾아갔다. 아버지는 지금 요양병원에 있다. 그는 이번 공연에 가족과 친척들을 부를 생각이다.
연필통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극단에서 활동하던 ‘은하별’(54)은 운 좋게 취직에 성공한 경우다. 북한 출신인 그는 인민군 복무 시절 문화선전대에서 극작, 연출, 연기를 겸했다. 2002년에 남쪽에 온 그는 지난해 <사노라면>을 연필통 사람들과 함께 올렸다. 경기 이천에서 일하는 그는 요즘 연습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10월 공연엔 꼭 참여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가족과 헤어져 거리 헤매던 사람들
연극으로 마음을 열며 자신감 회복
자기 캐릭터 미리 만들어 공동 창작
노숙인·보육시설 등 찾아 공연 예정
대부분 공공근로…새 일자리 원해
후원 모금 900만원 목표로 진행 중 노숙인이라 불리지만 이들이 거리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야간잠자리 등 자활을 돕는 시설에서 지내거나, 서울역 부근의 고시원과 쪽방촌 등에서 지낸다. 변변한 직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손발을 놀리지는 않는다. 이들 대부분은 공공근로를 한다. 공원에서 담배꽁초 투기자를 적발하거나 쓰레기를 청소하고, 무료급식소에서 배식이나 설거지, 주방보조 등 자활근로를 하는 것이다. 공동창작하며 공동체 꿈꾼다 연필통 사람들이 올리는 연극은 연출가나 작가 맘대로 정할 수 없다. 공동창작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에게 연습하러 모일 때 자기 캐릭터를 미리 만들어 오라고 한다. 10월에 올릴 <우리 집에 왜 왔니>에는 아버지·어머니와 아들 셋에 딸 하나인 가족이 나온다. 그런데 어머니의 10주기를 맞아, 15년 전에 가출한 장남이 갑자기 나타난다. 배우들은 “장남은 왜 나타났을까, 차남은 장남이 없는 동안 장남 역할을 어떻게 해왔나” 등 각자 배역의 성격을 ‘창조’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 온 캐릭터를 토론하고 취합해 연극의 뼈대로 삼고 살을 붙인다. 작가와 음악감독 등 일인 다역을 소화중인 ‘김대리’(32·홍보람)는 이렇게 모인 의견을 대표집필한다. 전기송 연출은 대학로에서 전문극단 드림플레이에서 연출을 했다. 2009년부터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에서 연출을 맡은 그는 배우와 교사 역할도 한다. 그는 낮에는 자동차회사 영업사원, 밤에는 연극인이다. 영업직을 택한 것도 시간을 쪼개 연극을 더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기송 연출은 “연필통 사람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헤어진 우리끼리 새로운 가족을 만들자는 마음입니다. 우린 명절마다 ‘촌놈’의 집에 모여 전도 부쳐먹고 윷놀이도 합니다. 아빠나 형처럼 인생 조언도 하고 생일도 챙겨줍니다.” 연필통 사람들은 공동창작을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꿈꾼다. 사회에 문화예술로 공헌하기 위해 올해 노숙인시설, 보육시설을 찾아 공연도 할 예정이다. 지금의 연필통 활동이 성에 차지 않는 이도 있다. 20대 때부터 연기에 뜻을 뒀다는 ‘시나브로’(45)다. “<이문동네 사람들>에서 사다리 위에 올라가 술 먹는 연기를 했더니, 전문 연극인이 감동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무대 체질입니다. 그래서 소재를 노숙인에 국한하지 말고 가족 문제, 사회 문제로 확대하고 연기도 더 발전시켜야 합니다.” 젊을 때의 꿈이 되살아난 ‘시나브로’는 시나브로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다. 한편에선 연필통 사람들을 응원하는 행사도 한창 진행중이다. 이들에게 출연료를 챙겨주자는 것이다. 지난 18일부터 모금이 시작된 ‘크라우드펀딩’은 900만원을 목표로 10월27일까지 진행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나무 포털(artistree.or.kr)에 가면 최소 3000원부터 후원에 동참할 수 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연극으로 마음을 열며 자신감 회복
자기 캐릭터 미리 만들어 공동 창작
노숙인·보육시설 등 찾아 공연 예정
대부분 공공근로…새 일자리 원해
후원 모금 900만원 목표로 진행 중 노숙인이라 불리지만 이들이 거리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야간잠자리 등 자활을 돕는 시설에서 지내거나, 서울역 부근의 고시원과 쪽방촌 등에서 지낸다. 변변한 직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손발을 놀리지는 않는다. 이들 대부분은 공공근로를 한다. 공원에서 담배꽁초 투기자를 적발하거나 쓰레기를 청소하고, 무료급식소에서 배식이나 설거지, 주방보조 등 자활근로를 하는 것이다. 공동창작하며 공동체 꿈꾼다 연필통 사람들이 올리는 연극은 연출가나 작가 맘대로 정할 수 없다. 공동창작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에게 연습하러 모일 때 자기 캐릭터를 미리 만들어 오라고 한다. 10월에 올릴 <우리 집에 왜 왔니>에는 아버지·어머니와 아들 셋에 딸 하나인 가족이 나온다. 그런데 어머니의 10주기를 맞아, 15년 전에 가출한 장남이 갑자기 나타난다. 배우들은 “장남은 왜 나타났을까, 차남은 장남이 없는 동안 장남 역할을 어떻게 해왔나” 등 각자 배역의 성격을 ‘창조’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 온 캐릭터를 토론하고 취합해 연극의 뼈대로 삼고 살을 붙인다. 작가와 음악감독 등 일인 다역을 소화중인 ‘김대리’(32·홍보람)는 이렇게 모인 의견을 대표집필한다. 전기송 연출은 대학로에서 전문극단 드림플레이에서 연출을 했다. 2009년부터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에서 연출을 맡은 그는 배우와 교사 역할도 한다. 그는 낮에는 자동차회사 영업사원, 밤에는 연극인이다. 영업직을 택한 것도 시간을 쪼개 연극을 더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기송 연출은 “연필통 사람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가족과 헤어진 우리끼리 새로운 가족을 만들자는 마음입니다. 우린 명절마다 ‘촌놈’의 집에 모여 전도 부쳐먹고 윷놀이도 합니다. 아빠나 형처럼 인생 조언도 하고 생일도 챙겨줍니다.” 연필통 사람들은 공동창작을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꿈꾼다. 사회에 문화예술로 공헌하기 위해 올해 노숙인시설, 보육시설을 찾아 공연도 할 예정이다. 지금의 연필통 활동이 성에 차지 않는 이도 있다. 20대 때부터 연기에 뜻을 뒀다는 ‘시나브로’(45)다. “<이문동네 사람들>에서 사다리 위에 올라가 술 먹는 연기를 했더니, 전문 연극인이 감동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무대 체질입니다. 그래서 소재를 노숙인에 국한하지 말고 가족 문제, 사회 문제로 확대하고 연기도 더 발전시켜야 합니다.” 젊을 때의 꿈이 되살아난 ‘시나브로’는 시나브로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다. 한편에선 연필통 사람들을 응원하는 행사도 한창 진행중이다. 이들에게 출연료를 챙겨주자는 것이다. 지난 18일부터 모금이 시작된 ‘크라우드펀딩’은 900만원을 목표로 10월27일까지 진행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나무 포털(artistree.or.kr)에 가면 최소 3000원부터 후원에 동참할 수 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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