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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홍성담은 빠졌지만…작품 413점 편안하게 빛났다

등록 2014-09-04 19:42수정 2014-09-05 10:23

5일부터 일반에 선보이는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출품작들. 사진은 1전시장의 작품, 제인 알렉산더의 ‘보병대와 야수’.
5일부터 일반에 선보이는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출품작들. 사진은 1전시장의 작품, 제인 알렉산더의 ‘보병대와 야수’.
열번째 광주비엔날레 가보니
38개국 103개팀 다채로운 작품전시
‘테이트’인듯 세련…감독 내공 돋보여
‘터전을 불태우라’ 주제의식은 흐릿
형식·메시지 다양한 퍼포먼스 많아
“자기 터전을 확실하게 불태운 퍼포먼스였어요. 전시 핵심을 정말 잘 짚은 예술이었죠.”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미술제, 올해 20돌을 맞은 광주비엔날레 10회는 시작부터 뒷말들로 넘쳤다. 지난달 앞서 시작했다가 큰 논란을 빚은 특별전 ‘달콤한 이슬’에 얽힌 미술인들의 입방아 속에 4일 본전시가 개막했다. 홍성담 작가의 대통령 풍자그림 전시를 광주시 쪽이 유보하면서 불거진 표현의 자유 공방부터 큐레이터 사퇴와 출품작가들의 작품 철수, 이용우 비엔날레 재단 대표의 사퇴 표명, 홍 작가 전시 철회까지 특별전 온갖 해프닝들은 거대한 정치 퍼포먼스였다는 촌평들이 나왔다. 비엔날레 권위를 먹칠했지만, 제시카 모건 본전시 감독이 내건 ‘터전을 불태우라’는 주제를 가장 절묘하게 실현시켜줬기 때문이라는 반응들이었다.

에드워드 키엔홀츠 & 낸시 레딘 키엔홀츠의 ‘오지맨디어스 퍼레이드’.
에드워드 키엔홀츠 & 낸시 레딘 키엔홀츠의 ‘오지맨디어스 퍼레이드’.
‘터전을 불태우라’는 80년대 펑크록그룹 ‘토킹 헤즈’의 노래 제목이었다. 모건은 주제를 “현 상태를 불태우는 급진적 정신”이라고 풀이했다. 그런데 3일 언론에 선보인 본전시 현장은 주제를 뒷받침할 법한 격렬하고 날선 분위기 대신, 고전적이란 느낌이 들 만큼 절제되고 세련된 공간 연출이 돋보였다. 작품과 관객의 감상거리 등을 배려한 공간 구획으로 눈이 피곤하지 않고 동선은 편안하게 흘러갔다. 서구 미술의 명가 테이트에서 정통으로 전시술을 익힌 모건의 내공이 공간에서 빛났다. 11월9일까지 선보일 38개국 103개팀(111명)의 작품 413점은 정교하게 가공된 공간 속에서 주제만으론 파악되지 않는 다채로운 색깔들을 뿜었다.

우선, 1~5전시장의 주벽면은 영국·스페인 예술그룹 엘 우티모 그리토의 ‘땡땡이’ 그래픽 벽지 ‘버닝’으로 뒤덮였다. 태우고 연기 내뿜는 이미지는 주제와 연관되지만, 뭉게구름 같은 몽환적 분위기도 피어난다. 모건은 벽지의 색깔과 톤을 각 전시장마다 다르게 조절해 각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시관 외벽에는 불타는 건물을 탈출하는 문어를 담은 제레미 델러의 벽화도 붙여 놓았다.

가장 시선이 쏠린 곳은 땡땡이 벽 위의 3전시장, 스위스 작가 우르스 피셔의 가상 아파트 ‘38 E. 1st ST’라는 설치공간이다. 작가의 뉴욕 거주지를 벽지 등을 붙여 실규모로 재현했다. 여기에 카롤 크리스티안 푈의 말 조형물 등 여러 작가 작업들이 다시 안에 기생하면서 집의 내부를 다층적으로 유영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입구에는 관객을 안내하고 큰 소리로 이름 불러주는 피에르 위그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이어진 브라질 작가 헤나타 루카스(43)의 공간은 전시관 건너 아파트 창문꼴을 베낀 창을 컴컴한 전시실 구석벽에 뚫어 우리 주거문화의 획일성을 응시하게 해주었다.

4전시장에 있는 아라카와 에이 & 임인자의 공간설치 작품 ‘비영웅극장’.
4전시장에 있는 아라카와 에이 & 임인자의 공간설치 작품 ‘비영웅극장’.
정치적 풍자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으로 명성을 얻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키엔홀츠와 낸시 레딘 키엔홀츠는 1전시장에서 ‘오지만디아스퍼레이드’란 설치작품을 내놓았다. 레이건 전 미대통령 시대를 배경으로 군사주의와 정치권력의 음습한 그늘을 말, 장군들의 우스꽝스러운 조합상을 통해 비꼰 것이다. 만원권을 삽날판에 그린 황재형 작가의 설치작품 돈삽과 70~80년대 국가기구 고문 장면을 재현한 사진가 김영수의 작업들도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형식의 퍼포먼스가 많은 것도 올해의 특징이다. 임민욱 작가는 3일 전시관 앞에서 경북 경산과 경남 진주에 방치된 민간인 학살피해자 유골이 담긴 컨테이너 2개를 현지서 트럭으로 옮겨오는 작업을 선보였다. 눈에 검은천 두르고 온 유가족을 광주 오월어머니회에서 맞는 장면까지, 호송 장면의 전후와 퍼포먼스 내용을 1전시실에서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틀어준다. 4전시장 에이 아라카와 & 임인자의 `비영웅극장‘은 일상적 인간군상의 여러 모습들이 전시장 아래위를 떠돌며 관계의 생동감을 전해주며, 작가그룹 알로라&칼사디아는 60명 시민들이 4전시장 입구에서 관객들을 악수로 맞이하는 광경을 펼쳤다. 20년전 알몸으로 묶인 채 매달려 절규하는 작가 이불씨의 충격적 영상도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전시공간 호감도는 높았다. 다만, 국내외 출품작별로 수준 편차가 엇갈려 감상의 맥이 종종 끊기고, 주제의 선명성이 두드러지지 않은 듯한 느낌이 남는다. 평론가 강성원씨는 “기존 비엔날레의 거대 물량 대신 서구 미술관의 관객 친화적 공간을 시범하듯 보여주는 얼개”라며 “국내 기획자들에게 큰 자극을 줄 것 같다”고 했다.

광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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