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을 휘저었던 거장 김홍도의 대작 ‘삼공불환도’와 맞수 이인문의 대작 ‘강산무진도’, 조선 초 세조 임금의 피고름이 묻은 낡은 저고리, 요절한 천재 화가 이중섭(1916~1956)의 걸작 ‘황소’를 주목하시라. 추석 연휴 전시 나들이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유물과 작품들이다.
저 유명한 이인문의 8m 넘는 두루마리 대작 ‘강산무진도’와 단원 김홍도의 산수화 대표작인 ‘삼공불환도’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 차려진 ‘이상향 산수를 그리다’전(28일까지)에서 사상 처음 함께 자리하고 있다. 동아시아 전통 사회의 관념 속 이상향을 그린 한·중·일 산수화 명품 109점을 모은 이 전시에서 백미로 꼽는 두 작품이다. 모든 그림에 통달했던 천재 김홍도와 산수화에서 지존의 경지에 올랐던 그의 친구 이인문이 펼치는 그림 대결이기도 하다.
두 작품 다 낙원을 그렸지만, 화풍은 흥미롭게 대비된다. ‘강산무진도’는 자연과 문명이 조화된 유교적 이상향이다. 화면 오른쪽부터 기암 준봉의 산세가 왼쪽으로 흘러가며 그 흐름 속에 간간이 나타나는 마을, 호수, 포구, 농토, 솔숲의 평화로운 풍경과 오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펼쳐진다. 중국 전통산수화의 구도지만,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한 이인문 특유의 필치가 느껴진다. 이와 달리 단원의 ‘삼공불환도’는 18세기 조선 전원의 풍경이다. 장독대가 있고, 여인이 주안상을 들고 오가며, 선비가 평상에 널브러진 그림 속 모습들은 정겹고 편안하다. 가장 조선적인 화가로 꼽히는 단원의 진가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내친김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차려진 ‘간송문화전 2부 보화각’(28일까지·추석 당일 휴관)에 내걸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현재 심사정의 ‘촉잔도권’을 비교 감상하는 것도 좋다.
종기에 시달렸던 세조가 입었다고 전해지는 피고름 묻은 저고리는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의 ‘조선왕실의 생로병사’전(14일까지)에서 볼 수 있다. 오대산 월정사에 세조가 행차했을 때 홀연 나타나 등창을 치료해준 문수보살 공덕을 기려 1466년 만든 문수보살상 안에서 발견된 희귀한 옷이다. 조선 왕실의 질병 치료, 의료사를 다룬 이 전시에는 <동의보감> 등의 의서와 침구 실습에 사용된 구리인형, 영조 임금이 시력을 재어본 각석 등 재미있는 내력의 유물들이 많다.
경복궁 뒤 백악산 너머의 부암동 서울미술관에는 이중섭의 대작 ‘황소’가 걸렸다. 21일까지 열리는 개관 2돌 기념전 ‘황소걸음’(추석 당일 휴관)의 대표작이다. 2010년 경매에서 35억여원에 낙찰됐던 이 작품은 강인하면서 활달한 필력으로 우직한 소를 묘사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근현대 작품으로 유명하다. 박수근의 ‘우물가’ 등 다른 근현대 명작 60여점도 감상할 수 있다. 미술관 꼭대기에서 만나는 흥선대원군 별장 석파정을 엿보는 즐거움도 있다.
지방에서는 5일 개막한 국내 최대의 국제미술제인 광주비엔날레(11월9일까지)가 기다린다. 창립 20돌을 맞아 영국 테이트모던 큐레이터 제시카 모건 총감독의 기획 아래 39개국 작가 106개팀이 ‘터전을 불태우라’는 주제로 현대미술의 난장을 펼쳐놓았다. 충남 공주시 금강변 쌍신공원 일대에서 지난달 29일 시작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나무 등의 자연물을 소재로 작업해온 국내외 자연미술 작가 26명의 작품 잔치다. ‘옆으로 자라는 나무’란 주제 아래 설치한 색다른 자연 조형물들을 금강의 정경 속에서 구경할 수 있다. 경주 천마총 출토 천마도와 금관 등의 순회전을 차린 국립청주박물관과 요나라 삼채 도자기를 국내 처음 선보이는 국립대구박물관도 가볼 만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서울미술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