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여성농악단의 맥을 잇는 팔산대는 삼대가 모였다. 뒷줄 왼쪽 첫째 장보미와 둘째 배지원은 전문 가무악을 배운 2세대, 셋째 김정숙은 여성농악단으로 활동했던 1세대, 앞줄 왼쪽 첫째 임우섭과 둘째 정예닮은 3세대다.
고양/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문화‘랑’] 국립극장 오르는 여성농악단 ‘연희단 팔산대’
풍물로 유랑을 하던 여성농악단이 1970년대 말까지 있었다. 박수가 곧 밥이었던 유랑패들이 보여준 군살 없는 판굿, 춤은 탁발처럼 성스러웠다. 잊혔던 그들이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풍물로 유랑을 하던 여성농악단이 1970년대 말까지 있었다. 박수가 곧 밥이었던 유랑패들이 보여준 군살 없는 판굿, 춤은 탁발처럼 성스러웠다. 잊혔던 그들이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다.
뽀얀 황토먼지를 일으키며 트럭이 달렸다. 덜컹 더덜컹. 짐칸에 실린 말뚝과 광목 포장이 춤꾼보다 먼저 어깨를 들썩였다. 장과 장을 따라 돌았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면 어디나 극장이었다. 흙바닥을 다지면 곧 무대요, 가마니를 깔면 곧 객석이었다. 징이 울렸다. ‘포장극장’의 막이 올랐다. 유랑 춤꾼이 공중에 솟구쳤다. 장구, 꽹과리도 울렸다. 춤은 인파이터처럼 객석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박수가 터졌다. 박수는 곧 밥이었다. 손님이 차면 고깃국에 밥을 말았고, 손님이 비면 소금에 식은 밥을 비볐다. 바로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호남여성농악단의 모습이다.
그 맥을 잇는 호남우도농악단 ‘연희단 팔산대’가 9월18~21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무대에 <무풍>(진옥섭 연출)을 올린다. 추석 다음날인 9일에도 이들은 경기 고양시 장항동에서 풍물을 쳤다. 그들이 꿈꾸는 예술과 인생유전이 대하극처럼 장항들판에 굽이쳤다.
할리데이비드슨을 탄 춤꾼 김운태 가족사
호남여성농악단원 김정숙(59)은 당시 포장극장을 또렷이 기억한다. 트럭에 실어 온 말뚝과 광목 포장을 널찍한 공터에 부렸다. 100평(330㎡) 정도 마당 사방에 큰 말뚝 네 개를 박았다. 그 사이에 다시 작은 말뚝을 박고 건물 2~3층 높이까지 광목 포장을 둘러쳤다. 그는 1976년이라고 찍힌 사진을 꺼냈다. 상모를 돌리는 풍물패가 보이고, 중절모를 쓴 촌로와 아낙들이 객석에 빼곡하다. 잘나가던 여성농악단의 모습은 이제 빛바랜 추억으로 남았다. ‘궁정동의 총성’이 유신정권의 종말을 알리던 1979년, 호남여성농악단은 해단했다. 그리고 까무룩 잊혀졌다.
호남여성농악단의 막내 김운태(51) 팔산대 연희감독도 이번 무대에 오른다. 아버지 김칠선은 ‘호남 오도바이’란 별명의 건달이었다. 그는 여성농악단을 이끌고 팔도를 떠돌았다. 객지에서 텃세하는 건달로부터 식구들을 지키려 다리에 쌍칼을 찼다. 우리나라 첫 여자프로레슬링 챔피언이었던 큰누나 김홍(본명 김정희)은 포장극장 앞에서 기도를 봤다. 둘째 누나 정애는 유랑단체의 살림을 챙겼고, 셋째 누나 정숙은 바람처럼 원을 그리는 포장극장의 꽃이었다.
김운태는 여섯살 때부터 공중에서 돌았다. 여성농악단이 흥행을 멈추자 학업에 전념하려 했지만 가정 형편에 때문에 요정을 돌았고 밤무대도 뛰었다. 1989년부터 사물놀이패와 세계를 돌았다. 1995년에는 대학로에 서울두레극장을 세웠다. 비 새는 포장극장의 소년이 꿈꾼 것은 비 안 새는 극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뿔싸. 경험 부족으로 전재산을 밀어 넣고도 모자라 감옥까지 가야 했다. 출소해 훌훌 털려고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에서 춤을 췄다. 이 춤은 ‘김운태류 채상소고춤’으로 불린다. 그는 떠돌아서인지 탈것을 좋아한다. 춤판이 벌어지면 할리데이비드슨의 굉음이 먼저 도착한다.
말뚝 박고 광목 두르면 무대 변신
춤, 노래, 풍물 어우러진 종합예능
전국 돌며 20년 세월 풍미하다 해체 3년전 1~3세대 20명 다시 의기투합
함께 먹고 자며 도제식 연습 강행군
가가호호 돌며 노는 ‘판굿’ 무대 올려 3대가 함께하는 도제식 연희집단 호남여성농악단의 맥은 삼대째 이어진다. 김운태와 누나를 포함한 1세대, 그리고 판소리·무용·기악을 공부한 2세대, 1세대들의 손자·손녀를 비롯한 어린이·청소년들인 3세대. 이들은 2011년 고양시 장항동에 똬리를 틀었다. 모두 20명 남짓이 먹고 자고 연습한다. 연습장을 오가는 시간도 아깝다. 꼬박 3년, 2만6280시간 동안 공을 들였다. 잠자는 시간까지 연습시간으로 잡았다. 서로 잠버릇과 잠꼬대까지도 장단이 척척이다. 이들은 ‘배움’이 아니라 ‘겪음’을 강조한다. 학교에서처럼 소리나 사물놀이 한 가지만 배우는 게 아니라 가무악을 도제식으로 한꺼번에 ‘겪으며’ 체득하는 것이다. 팔산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거리축제였던 ‘산대’에 두루 능통할 때 쓰는 ‘여덟 팔’을 붙인 것이다. 이 이름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2012년 여수엑스포 주최 쪽은 ‘엑스포라는 첨단 이미지와 농악의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며 호남여성농악단이라는 이름을 막았다. 어쨌거나 이들은 여수엑스포에서 93일 동안 하루 평균 4회의 공연을 하며 팔산대 열풍을 일으켰다. 일본, 스페인, 프랑스, 웬만한 아리아 가수들이 노래를 불러도 박수조차 치지 않는다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도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들에겐 ‘춤의 비밀결사’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1995년 공연을 위해 여성농악단을 다시 모으러 나섰다. 다들 꼭꼭 숨었다. 시집가서 잘 사는데 ‘딴따라’ 했다는 게 드러나면 쫓겨난다는 것이었다. 그때 진옥섭 연출의 눈에는 이들이 ‘춤의 비밀결사’처럼 보였다고 한다.
“전통연희꾼을 전사처럼 키워라”
벼가 일제히 고개를 숙인 장항들판 논두렁에 풍물패가 고개를 들었다. 상쇠 장보미, 부쇠 배지원(이상 꽹과리), 징 김정숙, 수장구 이송, 부장구 윤미정, 삼장구 서은숙, 수벅구 박보슬에 이어 유가비, 이규호, 박근원, 박소원, 임현섭, 임우섭, 정호영, 정호은, 정예닮이 뒤를 따른다. 삼세대가 모인 팔산대의 미래는 어떨까? 1세대 김정숙은 “손자·손녀뻘 3세대 모두가 국악계 최고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2세대인 상쇠 장보미(29)는 “우리는 이미 또 하나의 가족이다. 춤, 음악, 노래를 모두 배우니까 한 분야가 아닌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전통예술인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며 부풀었다. 3세대인 최연소 정예닮(5)은 먼저 침을 꼴깍 삼킨 뒤 “상모를 잘 돌리고 싶다”며 입을 달싹였다. 이번 무대의 연출을 맡은 진옥섭 감독은 ‘독하게’ 한마디 했다. “전사처럼, 피투성이처럼 무대에서 싸우는 전통연희꾼들을 키워야 한다.”
팔산대에는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의 딸 이송도 있다. 한국에 와서 보니, 생각보다 전통예술이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해 충격이었다. 그는 “전통공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들이 이번에 보여줄 무대는 농악 최고의 기량으로 꼽히는 판굿이다. 집집마다 돌면서 풍물을 울리고 종합적인 예능을 보여준다. 판굿은 오채질굿, 오방진 등 군무를 펼치다 절정에 이르면 독무를 펼친다. 상쇠의 부포춤, 장구재비의 설장구춤, 소고재비의 채상소고춤 등 개인의 기량을 뽐내는 것이다. 수확을 앞둔 장항들녘에 팔산대의 춤과 노래가 허공에 솟구쳤다. 송골송골 땀방울에 9월의 따가운 햇빛이 보석처럼 박혔다. 1644-8609.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춤, 노래, 풍물 어우러진 종합예능
전국 돌며 20년 세월 풍미하다 해체 3년전 1~3세대 20명 다시 의기투합
함께 먹고 자며 도제식 연습 강행군
가가호호 돌며 노는 ‘판굿’ 무대 올려 3대가 함께하는 도제식 연희집단 호남여성농악단의 맥은 삼대째 이어진다. 김운태와 누나를 포함한 1세대, 그리고 판소리·무용·기악을 공부한 2세대, 1세대들의 손자·손녀를 비롯한 어린이·청소년들인 3세대. 이들은 2011년 고양시 장항동에 똬리를 틀었다. 모두 20명 남짓이 먹고 자고 연습한다. 연습장을 오가는 시간도 아깝다. 꼬박 3년, 2만6280시간 동안 공을 들였다. 잠자는 시간까지 연습시간으로 잡았다. 서로 잠버릇과 잠꼬대까지도 장단이 척척이다. 이들은 ‘배움’이 아니라 ‘겪음’을 강조한다. 학교에서처럼 소리나 사물놀이 한 가지만 배우는 게 아니라 가무악을 도제식으로 한꺼번에 ‘겪으며’ 체득하는 것이다. 팔산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거리축제였던 ‘산대’에 두루 능통할 때 쓰는 ‘여덟 팔’을 붙인 것이다. 이 이름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2012년 여수엑스포 주최 쪽은 ‘엑스포라는 첨단 이미지와 농악의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며 호남여성농악단이라는 이름을 막았다. 어쨌거나 이들은 여수엑스포에서 93일 동안 하루 평균 4회의 공연을 하며 팔산대 열풍을 일으켰다. 일본, 스페인, 프랑스, 웬만한 아리아 가수들이 노래를 불러도 박수조차 치지 않는다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도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들에겐 ‘춤의 비밀결사’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1995년 공연을 위해 여성농악단을 다시 모으러 나섰다. 다들 꼭꼭 숨었다. 시집가서 잘 사는데 ‘딴따라’ 했다는 게 드러나면 쫓겨난다는 것이었다. 그때 진옥섭 연출의 눈에는 이들이 ‘춤의 비밀결사’처럼 보였다고 한다.
여성농악단을 복원해 무대에 올리는 연희단 팔산대의 공연 <무풍> 연희감독 김운태(맨 오른쪽)씨가 9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연습장에서 단원들의 연습을 이끌고 있다. 고양/이정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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