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는 아내의 사진.
윤철중 사진전 ‘꽃 한송이가 없네’
윤철중(1935~)씨의 사진전 <꽃 한 송이가 없네>가 9월30일부터 10월5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류가헌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윤철중씨의 아내가 발병하여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 끝내 세상을 떠 장례를 치르는 장면과 그 뒤까지를 기록한 25점으로 구성되었다. 윤철중씨는 성균관대학교와 상명대학교에서 고려가요와 향가, 한국 신화를 가르치고 연구해온 국문학자다. 주요 논문으로 <단군신화의 환웅과 신웅의 변별>, <혜성가 연구>, <서동요의 신고찰> 등이 있다.
2000년 8월에 정년퇴임한 뒤 한국 신화의 현장을 발굴하고 지형적 특성을 발표하거나 논문을 책으로 엮기 위해 카메라를 접했던 윤씨는 2004년에 12살 아래 띠동갑이었던 아내 유씨가 암에 걸리자 외부활동을 포기하고 간병을 시작했다. 현장을 기록하려던 윤씨의 카메라는 이후 9년간 병실을 기록하게 되었다. 발병 첫해 아내가 병원에 다니는 모습. 어둠에 잠긴 병실의 창문 바깥을 내다보는 모습. 황량한 복도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는 아내의 사진은 초점이 흐릿하다. 보온병 뚜껑에 따른 커피 한 잔이 놓인 아내의 무덤 등이 순서대로 이어진다.
윤씨는 “투병 당시 아내가 ‘죽기 전에 사진전 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해서 역량 미달임을 뻔히 알면서도 2009년에 갤러리 브레송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내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데 병원에 늘 붙어 있으니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나가서 사진 찍고 하시라고 자주 권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윤씨는 이번 전시의 작가노트를 통해 “정성인가 본데…. 인색해라~ 꽃 한 송이가 없네. 살던 게 모두 투정이었어. 투정하고 싶어 찾아왔더니 오늘도 그저 미소뿐인가. (중략) 투정이었지. 그려 투정이었지. 가여운 얼굴로 미소 지으며 그저 그렇게 넘겨주었지. 춘분이 지났다고 새 풀이 돋고, 낙엽은 바람이 쓸어 가고, 바람은 또 이리 날려서 세월처럼 여기 또 데리고 왔네”라는 시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인터뷰에서 윤씨는 “늦게 시작한 사진이고 예술성이 있는 사진은 기대할 수 없지만 80년대부터 찍어둔 한국 신화의 현장 사진에 새로운 사진을 더해서 신화 자료사진의 새 영역과 자료사진집 완성에 힘을 쏟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보온병 뚜껑에 따른 커피 한 잔이 놓인 아내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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