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키에 짧은 머리. 일탈을 거부한 육체와 앙다문 입. 마치 남방불교의 수도승을 연상시키는 오창익은 하루 12시간 연습하는 ‘고행의 춤꾼’이다. 그가 현대무용극 <붓다, 일곱 걸음의 꽃>에서 ‘2대 붓다’를 맡은 이유로 충분해 보였다. 파사무용단 제공
‘붓다, 일곱 걸음의 꽃’ 오창익
183㎝ 키에 살집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몸. 육체의 일탈을 거부하는 과묵한 정신. 미얀마에서 온 수도승인 줄 알았다. 오창익(33)은 ‘늦깎이 춤꾼’이다.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한 그는 23살에야 무용에 입문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몰랐다. 춤꾼의 삶은 부처의 고행과 다르지 않았다. 연습이라는 이름으로 하루 꼬박 12시간 용맹정진. 공들인 만큼 평가도 따랐다. 안무작품 <우리는 무엇인가>에서 양변기를 통해 배설과 잉태의 이미지를 동시에 표현해, 지난해 평론가가 뽑은 무용가로 선정됐다. 2011년에는 안무 및 출연작 <구토>로 한국현대무용협회 신인상을 받았다. 늦깎이란 말은 ‘나이 들어 머리를 깎은 스님’을 뜻한다. 오창익은 이번에 정말 머리를 깎았다. 그런데 스님이 아니고 부처다. 이달 31일~11월2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 오르는 현대무용극 <붓다, 일곱 걸음의 꽃>에서 ‘2대 붓다’를 맡았다. 황미숙 파사무용단 예술감독의 안무로 부처의 일생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2012년과 2013년 공연 때도 호평을 받았다. 지난 20일 오창익을 만났다.
“부처는 몸을 혹사하면서 많은 고행을 했고, 중도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몸을 통해 진리를 얻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무용은 직접 몸으로 표현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인간이 겪는 욕망과 갈등 그리고 아름다움과 외로움을 몸으로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봅니다.”
오창익은 어눌했다. 하지만 말하는 뜻은 분명했다. ‘부처의 고행이 해탈이라는 꽃을 피우듯, 춤꾼도 몸을 움직여 깨달음의 꽃을 피운다는 것.’ 그는 이번 작품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저는 이 작품의 주요장면을 3개로 나눠요. 처음엔 왕국에서의 부처, 두번째 세상의 모순과 죽음을 목격한 부처, 세번째 오제자와 설법하고 그것의 마지막인 해탈하는 부처입니다. 저는 해탈의 순간보다 오제자들과 대화를 하고 천천히 움직이는 장면을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정적이지 않고 동적입니다.”
23살에 무용 입문 ‘용맹정진’
몸 움직여 깨달음의 꽃 피워
붓다의 인간적인 고뇌 춤으로 “미묘한 부분 수위조절 중요
기뻐도 웃는 게 아니고
슬퍼도 우는 게 아니어야” 부처의 일생을 춤으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일단은 강해야 하지만 강한 것처럼 보이면 안 되고, 느리지만 느리게 보이면 안 되고, 기뻐도 웃는 게 아니고 슬퍼도 우는 게 아닌, 미묘한 부분의 수위조절이 힘듭니다. 모든 게 섞여있지만 몸동작은 상당히 정교하지요.” 오창익은 힘들다지만 심정민 무용평론가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2대 붓다’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냈다. “때로 부드럽고 때로 날카롭게 그려지는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고, 모든 것을 초월해 종교적 아이콘으로 거듭납니다. 붓다에 대한 복합적인 성격묘사로 작품에 드라마틱한 무게감과 긴장감을 더해줄 것입니다.” 오창익은 기교를 과시하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려 노력한다. 관객이 자신의 춤을 보고 마음이 편해지고 따뜻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의식적이 아니라 무의식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무의식에서도 소통이 있다고 봐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거나 곁에 있으면 왠지 편해지는 게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무의식적인 소통을 좀 더 개발해 볼 생각입니다.” 광고 전공자답게 그는 이미지를 꽤 중시한다. “종교적일 수도 있고 사회적일 수 있는 이미지를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동물적이고 원시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좋아합니다.” 현대무용극 <붓다, 일곱 걸음의 꽃>은 생로병사에 고민하는 싯다르타의 인간의 면모에 비중을 둔 작품이다. 황미숙 예술감독은 “부처의 생애를 통해, 특정 종교를 넘어 현대인들이 자신의 존재와 삶의 가치를 발견했으면 좋겠다”라고 작품의도를 설명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몸 움직여 깨달음의 꽃 피워
붓다의 인간적인 고뇌 춤으로 “미묘한 부분 수위조절 중요
기뻐도 웃는 게 아니고
슬퍼도 우는 게 아니어야” 부처의 일생을 춤으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일단은 강해야 하지만 강한 것처럼 보이면 안 되고, 느리지만 느리게 보이면 안 되고, 기뻐도 웃는 게 아니고 슬퍼도 우는 게 아닌, 미묘한 부분의 수위조절이 힘듭니다. 모든 게 섞여있지만 몸동작은 상당히 정교하지요.” 오창익은 힘들다지만 심정민 무용평론가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2대 붓다’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냈다. “때로 부드럽고 때로 날카롭게 그려지는 삶의 희로애락을 뒤로하고, 모든 것을 초월해 종교적 아이콘으로 거듭납니다. 붓다에 대한 복합적인 성격묘사로 작품에 드라마틱한 무게감과 긴장감을 더해줄 것입니다.” 오창익은 기교를 과시하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려 노력한다. 관객이 자신의 춤을 보고 마음이 편해지고 따뜻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의식적이 아니라 무의식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무의식에서도 소통이 있다고 봐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거나 곁에 있으면 왠지 편해지는 게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무의식적인 소통을 좀 더 개발해 볼 생각입니다.” 광고 전공자답게 그는 이미지를 꽤 중시한다. “종교적일 수도 있고 사회적일 수 있는 이미지를 구체적이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동물적이고 원시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좋아합니다.” 현대무용극 <붓다, 일곱 걸음의 꽃>은 생로병사에 고민하는 싯다르타의 인간의 면모에 비중을 둔 작품이다. 황미숙 예술감독은 “부처의 생애를 통해, 특정 종교를 넘어 현대인들이 자신의 존재와 삶의 가치를 발견했으면 좋겠다”라고 작품의도를 설명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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