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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한겨레가 만난 신해철…음악감독·DJ·연기자·공연쟁이

등록 2014-10-28 17:04수정 2014-10-28 17:07

가수 신해철의 20주년 기념공연 ‘2008 Remembrance’ 콘서트. 서울 광장동 멜론 악스에서 가수 신해철이 커플 관객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가수 신해철의 20주년 기념공연 ‘2008 Remembrance’ 콘서트. 서울 광장동 멜론 악스에서 가수 신해철이 커플 관객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마왕’ 신해철, 마지막 메시지는? “아프지만 마라”
신해철은 가수이면서 영화음악감독이었고 라디오 진행자였으며 공연쟁이였다. ‘한겨레’, ‘씨네21’은 각기 다른 신해철을 여러 차례 만나 얘기를 나눴다. 영화음악감독이어도, 라디오 진행자여도 신해철은 늘 신해철이었다.

영화음악감독 신해철, “영화음악 그만하겠다.”/씨네21 237호 2000년 2월 1일 김혜리 기자( ■ 기사 바로가기 )

1993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로 영화음악에 발을 담근 신해철은 2000년 송능한 감독의 영화 ‘세기말’까지 네번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씨네21’은 2000년 2월 그를 만났다. 신해철은 스타워즈 에피소드의 광팬이었다.

-근래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나요.

=‘스타워즈 에피소드1’은 봤죠. 참고로 제게 좋은 영화의 기준은 유에프오(UFO)와 외계인이 몇 마리 나오나, 광선총, 비행기, 탱크는 몇대나 등장해 몇발이나 쏘나, 이도 저도 아니면 예쁜 여자가 나오느냐의 문제거든요. 그러니 남들이 뭐라건 제게 스타워즈는 명작이예요. 모선에서 로봇이 떼로 내려와 정렬하면 전 거의 울면서 보는 거죠. 루카스를 욕하는 사람한테는 그럼 그걸 모르고 봤냐고 묻고 싶어요. 세련된 대사나 빠른 진행이 있으면 그게 무슨 스타워즈냐고요.

-‘세기말’은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정글 스토리’, ‘영혼 기병 라젠카’에 이은 당신의 네 번째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영화음악 작업이 스스로 불만스런 편이었다고 들었는데요.

=가요계와 달리 영화는 정교하고 합리적인 절차로 만들어지는 줄 알았는데, 시나리오도 고쳐지고 즉흥적 요소가 많이 끼어들더군요. 사운드트랙이 많이 팔리는 거야 대중 가수로서 제 위상과 관계된 문제고, 영화음악을 했으면 영화음악가로서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데 얼마나 영화에 타당한 음악이냐는 면에서 확신이 안 서서 괴로웠어요. 한국 영화음악은 속도전에 강한 아티스트만이 가능하다는 점도 힘들어요.

-영화음악 그만 하겠다고 말했다면서요. 진담인가요? 앞으로 음악인생 계획은?

=제가 제일 짜증나는 게 음악을 수세적 입장으로 만드는 거예요. 세모난 네모이면서 동그라미. 뭐 이런 완벽한 음악을 만들고야 만다는 마음으로 “들어봐 자식들아, 죽이지?”하는, 교만에 가까운 마인드로 음악을 해야 뭐가 되는데 망치면 안 된다 정도 감정으로 쫓기는 처지에 몰리면 원망만 늘죠. 그런데 제가 원하는 제작비와 기간을 보장할 작품은 앞으로 5년 내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조건이 갖춰지면 계약서 써야죠. 3개월에서 하루라도 빠지면 돈 들고 튄다고. 계획이라면 거대한 모자이크를 한 바늘씩 꿰는 작업을 계속하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그 모자이크의 발가락 끝 정도 보여드렸다고 생각하구요. 만약 이 선에서 제가 전업작가로 버틸 최소한의 제작비와 생활비를 팬들이 안 대주면 저의 스토리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겠죠. 그런 삶도 나쁘진 않아요. 듣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으니. 음악가는 비참한 것이, 아무리 좋은 걸 만들어봐야 남들 만든 것 중에 훨씬 좋은 음악이 많아요.

연기자 신해철, “18년간 쌓아온 카리스마가 무너졌다.”/씨네21 506호 2005년 6월14일 김혜리 기자( ■ 기사 바로가기 )

신해철은 종종 카메오로 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가장 화제를 모았던 역할은 2005년 맡았던 MBC ‘안녕, 프란체스카’의 안드레 교주역이었다.

-흔쾌히 합류했다고 들었다. <안녕, 프란체스카>를 1회부터 지켜보았나.

=TV는 있지만 안테나는 연결하지 않고 사는 집이다. <안녕, 프란체스카>를 알게 된 것은 <고스트스테이션> 청취자들의 추천을 통해서였다. 출연 얘기가 오가면서 1회부터 제대로 구해보았는데 상상보다 더 웃겼다.

-앙드레 대교주의 의상은 제작진의 컨셉인가, 당신의 구상인가.

=원래 검은 정장만 입고 왔었는데 넥스트의 무대 의상이 가미되고 뱀파이어 망토의 깃이 강조됐다.

-<고스트스테이션> 청취자들의 반응은.

=“꼴좋다”, “통쾌하다” 쪽인 것 같다. 그러다가 점점 망가짐의 도가 심해지니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하는 연민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번 러닝셔츠만 입고 찍은 다음에는 “노출 연기에 동의한 바 없다”고 작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눌까 고려 중이다.

-뒤늦게 들어온 식구로서 이미 팀워크가 자리잡은 프란체스카 가족의 텃세는 없었는지.

=실력으로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물론 초보 배우로서 겸손한 버전의 대답도 생각해봤지만 그렇다고 겸손하다고 여겨질 나도 아니고, 누가 겸손한 신해철을 원하겠는가. 그럴 바에는 이 방향이 경제적이라고 판단했다). 얼마 전 폭파신까지 찍고 액션배우로 불러주길 주위에 요구한 바 있다. 대역은 없었고 마네킹 한구가 나 대신 불탔다. <닥터 슬럼프> 같은 만화에서 엄청 고생한 주인공들이 “우, 이젠 개그 만화는 싫어”라고 독백하듯 나도 외치고싶다. “우, 이제 개그드라마는 싫어”라고.

-첫회 대본을 받고, 오직 “스카”로 일관하는 초반 일련의 대사를 읽었을 때 연기력을 불신당했다는 불쾌감은 없었는지.

=‘날 못 믿는군’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시청자들도 그렇게 생각할 무렵 바로 대본이 엎어치기를 해주지 않았나. 지난주 방영분에는 급기야 앙드레 대사가 한 페이지를 넘겼다.

-앙드레 대교주가 된 뒤 체감하는 변화가 있을 텐데.

=18년간 쌓아올린 카리스마가 무너졌다. 전에는 아이들 사인 요청은 거의 엄마들이 옆구리 찔러서 보낸 거였는데, 앙드레 이후로는 아이들이 만만히 보고 다가온다. 메신저 회사에서 앙드레 아바타 만들겠다는 제의도 들었다. 넥스트 다음 앨범에는 “보컬-앙드레”로 쓸까 싶기도 하다.

-연기자로서 다음 작품은 결정했는지.

=그렇다. 남궁연이 찍는 단편영화에 캐스팅됐다.

-내년에 <안녕, 프란체스카>가 만약 새로운 시즌으로 재개되면 출연할 것인가. 안 될 경우 2대 앙드레를 추천한다면.

=나도 음악 해야지. 2대 앙드레는 싸이가 하면 되지 않을까.

-바야흐로 <스타워즈> 시리즈의 종결을 맞이하는 감상은.

=한번 코가 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지만, 더이상 조지 루카스의 대사를 영화로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기쁘기 한량없다.

라디오 진행자 신해철, “라디오는 프라이빗한 맨투맨 매체. 가오잡으면 안돼.”/씨네21 475호 2004년 11월2일 박혜명 기자( ■ 기사 바로가기 )

2008년 서울 상암동 DM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tvN 이색뉴스쇼 ‘스매쉬(SMASH)’ 녹화현장의 신해철. 검은 색 양복과 검은 색 선글라스, 완장을 찬 세 MC는 바로 가수 김진표, 신해철, 그리고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왼쪽부터)
2008년 서울 상암동 DM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tvN 이색뉴스쇼 ‘스매쉬(SMASH)’ 녹화현장의 신해철. 검은 색 양복과 검은 색 선글라스, 완장을 찬 세 MC는 바로 가수 김진표, 신해철, 그리고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왼쪽부터)
‘고스트스테이션(유령방송)’을 빼놓고 신해철을 얘기할 수 없다. 2001년 4월1일 인터넷 포탈 사이트 라이코스 코리아의 음악 채널 라이코스 뮤직과 SBS 라디오에서 같은 이름으로 동시에 방송되던 이 프로그램은 2003년 4월 SBS에서 방송이 중단됐고 한동안 인터넷으로만 방송됐다. 그 해 10월에 MBC FM4U로 자리를 옮겨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Ghostnation)’으로 이름을 바꿔 방송됐다. 2005년부터는 MBC 표준FM으로 주파수를 옮겨 진행하다가 2007년 9월15일 종영됐다. 비정기 인터넷방송 체제로 전환됐고 제목도 다시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으로 원상복귀됐다. 방송용 바른말, 고정코너, 대본, 이야기와 음악의 비율 등 대개의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사항들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반말로 진행됐다.

-SBS에서 시작할 때부터 본인이 기획한 방송이다. 계기는.

=방송하는 건 재밌는데 내가 싫어하는 요소가 있으니까. 방송사들은 덩치만 비대해지고 시대가 바뀌는 건 못 쫓는다. 미디어가 민중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려면 그들의 귀와 눈과 입이 돼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방송이 나서서 소재나 언어 등에 대해 폭력적인 제재를 가하고 사람들의 귀와 입을 묶는다. 방송에 특정 상품 이름이 왜 등장하면 안 되나. 돈만 안 받으면 되지. 비속어 같은 언어 제재도 자기네가 문책당하기 싫어서지 언어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다. 왜 그런 것에 대해 제약을 강요해서 마치 하면 안 되는 일처럼 생각하게 만들고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드냐는 거다.

-SBS에서 방송을 그만둔 이유는 뭐였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잡아논 고기에는 밥을 안 준다. <고스트스테이션>이 새벽 2시대에 청취율 5% 나왔다. 5%면 거의 최고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그럼 그 이후의 행보에 대해 내가 요구한 걸 들어줘야 하는데 방송사쪽에서 동작이 늦더라. (웃음) 프로그램 이름을 가지고 방송사를 이동하는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앞으로는 DJ도 프리랜서처럼 바뀔 것이고 프로그램도 하나의 브랜드처럼 인식될 것이다. 또 그래야만 하고.

-그런데 MBC로 오면서는 프로그램 이름을 바꿨다.

=‘고스트스테이션’이란 이름을 인터넷 사이트나 카페 등에 브랜드처럼 사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다른 법인체들이 이미 있기 때문에 그게 방송 이름하고 똑같으면 법적으로 문제 소지가 있다더라. 그리고 ‘네이션’이 ‘스테이션’보다 사이즈도 더 크다. (웃음)

-청취자들의 전화상담을 하염없이 듣고 있다. 대답도 하염없긴 하지만. (웃음)

=쓸데없는 소리라고 미리 제한할 거면 그걸 왜 하겠나. 또 그 얘기 계속 들어준다고 해도 방송엔 전혀 문제 안 생긴다.

-라디오 프로그램이란, 또 DJ란 뭐라고 생각하나.

=라디오는 기본적으로 프라이빗한 맨투맨 매체다. 가오잡고, 방송이란 이유로 위장하고 틀을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라디오는 한 개인의 일상 중 일부가 되는 패턴과 내 패턴을 결합하는 매체다. 그 사람의 생각, 생활의 일정한 시기가 통째로 결합하는 거다. 그래서 난 방송을 하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얘기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개개인과 얘기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이 방송에 대해 엄청나게 노력하거나 시간을 투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너희들도 너무 불편해하지 말아라(웃음), 하는 게 내 태도다. 나도 그렇고 우리가 원하는 게 바로 그런 상태다.

음악가 신해철, “조용히 살았으면 조용히 사라졌을 것”/한겨레 2007년 11월9일 이재성 기자( ■ 기사 바로가기 )

2014년 신해철씨의 모습
2014년 신해철씨의 모습
뭐니뭐니해도 신해철의 본업은 가수다. 1988년 대학가요제로 데뷔했고 이후 한번도 ‘가수’라는 직업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그냥 조용히 살았으면 조용히 사라졌을 것 같아요. 제가 ‘노토리어스’(악명높은)와 ‘페이머스’(유명한)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잖아요. 우리나라에 이런 경우는 드물죠. 저에게 맡겨진 배역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팔린 음반이 600만~700만장은 될 텐데, 제가 아직 집이 없어요. 집 안 산다고 서약했거든요. 대신 음악하고 유학 갔다 오고, 원없이 썼어요. 술값으로도 천문학적인 돈을 썼을 거예요.

-문제는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성이 어떻게 만나느냐에 있다. 모노크롬 시절 월드뮤직에 국악과 테크노를 결합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요즘 가요를 집중 연구하고 있어요. 우리 언어에 맞는 멜로디를 특화시켜야 해요. 히트곡요? 히트곡을 써본 사람은 히트 코드를 알아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죠.

<한겨레>는 지난 6월20일 ‘리부트 마이셀프’ 들고 6년만에 귀환한 신해철을 만났다. 마지막 만남이었다. (6월23일 서정민 기자 ■ 기사 바로가기 )

=요 몇년 동안 탄압과 핍박을 받아서 활동 못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동안 잘 지내며 음악 작업을 했다. 6년을 쉬었다는 얘기를 듣고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요. 스무살 때 데뷔한 이후 매년 1~2장씩 앨범을 냈거든요. 쉬는 동안 가족과 함께 잘 지냈어요. 스무살 이전이 제 인생의 첫번째 시기, 음악 시작 이후가 두번째 시기라면, 지금은 세번째 시기예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이 시기가 없었다면 음악적으로도 기대보다 하찮았을걸요.

-‘단 하나의 약속’은 결혼 전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만든 사랑 노래를 15년 동안 다듬고 매만져 이제야 발표하는 곡이라고?

=노래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이제는 가족 전체로 넓혔다. ‘어찌 되든 아프지만 마라’는 게 가족과 우리 사회에 해주고 싶은 말이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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