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사진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를 보는 두 가지 시선
클래식 교육을 통해 빈민가 청소년을 구제하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으로 전세계에 귀감이 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40년간 ‘예술로 사회를 구한다’는 메시지를 표방하며 여러 나라로 전파된 이 프로그램이 사실은 폭압과 불법 행위로 점철됐다는 고발성 주장이 제기되면서 동조자들과 엘 시스테마 지지자들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은 영국 런던 로얄홀로웨이 대학 조프리 베이커 교수의 칼럼에서 촉발됐다. 그는 지난 11일(현지시각)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게재한 컬럼에서 “엘 시스테마의 장밋빛 이미지에 영감을 받아 이를 연구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로 갔다가 기존에 소개된 미담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됐다”며 “설립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박애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 단체를 설립했으며, 지휘자로서도 독재적인 마에스트로의 전형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아브레우 박사가 규율에 지나치게 집착해 “엘 시스테마의 유력 앙상블(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베네수엘라의 노예 오케스트라’로 불렸다”고도 밝혔다. 또한 수석 연주자들이 경제적 보상에 길들여져 악단의 설립 정신이 변질됐고,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청소년의 상당수가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이며 교사와 학생들간에 폭압적인 상하관계가 형성됐고 성추행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엘 시스테마 설립 정신의 핵심인 ‘빈곤층 청소년 구제’마저 사실과 다르다는 충격적인 고발이다. 그는 12월초 <엘 시스테마:베네수엘라 청소년에 대한 조작>이라는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베이커 교수의 발언은 엘 시스테마 영국지부 진출 움직임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지부를 설립해 북미까지 활동 범위를 확장한 엘 시스테마는 영국 등 세계 각지로의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 설립뒤 규율에 집착
폭압적 상하관계…성추행 발생도
상당수는 빈곤층 아닌 중산층”
영국 제프리 베이커 교수 주장
엘 시스테마쪽 “신뢰성 없다” 맞서 ‘성역’처럼 여겨져 온 엘 시스테마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에도 런던 현대음악 페스티벌 예술감독 이고르 토로니-릴락이 한 클래식 음악 잡지를 통해 엘 시스테마가 과연 빈민층 청소년 구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한 바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아 온 엘 시스테마가 정치적 도구로 이용됐다는 주장도 있었다. 예술 교육이 국민들의 투쟁 정신과 비판적 사고를 무디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시행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의 연구자가 현지 조사와 참가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문제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엘 시스테마 미국지부의 레이날도 트롬베카는 “베이커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며 맞섰다. 트롬베카는 “2007년 발표된 엘 시스테마에 관한 연구와 2010년 발행된 서적에 따르면 참가자의 11%가 중산층, 36%가 빈곤층, 53%가 극빈층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행정적 허술함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개선한다면 오히려 엘 시스테마가 사회에 끼친 경제적 효과와 긍정적 영향에 대해 명확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엘 시스테마는 1975년 경제학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빈민층 청소년 11명을 모아 악기 연주를 가르치면서 시작됐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에만 102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55개의 유소년 오케스트라 270개의 센터를 거느린 거대 단체로 성장했다. 100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엘 시스테마는 마약과 포르노, 총기 사고 등에 노출된 베네수엘라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미래에 대한 꿈을 제시하고 협동과 질서, 책임감 등의 가치를 심어준 혁신적인 사회운동으로 평가 받으며 전세계에 전파됐다. 김소민 객원기자
폭압적 상하관계…성추행 발생도
상당수는 빈곤층 아닌 중산층”
영국 제프리 베이커 교수 주장
엘 시스테마쪽 “신뢰성 없다” 맞서 ‘성역’처럼 여겨져 온 엘 시스테마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에도 런던 현대음악 페스티벌 예술감독 이고르 토로니-릴락이 한 클래식 음악 잡지를 통해 엘 시스테마가 과연 빈민층 청소년 구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한 바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아 온 엘 시스테마가 정치적 도구로 이용됐다는 주장도 있었다. 예술 교육이 국민들의 투쟁 정신과 비판적 사고를 무디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시행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의 연구자가 현지 조사와 참가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문제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엘 시스테마 미국지부의 레이날도 트롬베카는 “베이커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며 맞섰다. 트롬베카는 “2007년 발표된 엘 시스테마에 관한 연구와 2010년 발행된 서적에 따르면 참가자의 11%가 중산층, 36%가 빈곤층, 53%가 극빈층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행정적 허술함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개선한다면 오히려 엘 시스테마가 사회에 끼친 경제적 효과와 긍정적 영향에 대해 명확히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엘 시스테마는 1975년 경제학자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빈민층 청소년 11명을 모아 악기 연주를 가르치면서 시작됐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에만 102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55개의 유소년 오케스트라 270개의 센터를 거느린 거대 단체로 성장했다. 100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엘 시스테마는 마약과 포르노, 총기 사고 등에 노출된 베네수엘라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침으로써 미래에 대한 꿈을 제시하고 협동과 질서, 책임감 등의 가치를 심어준 혁신적인 사회운동으로 평가 받으며 전세계에 전파됐다. 김소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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