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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영국학자가 본 황병기 “모순을 명상하는 선의 경지”

등록 2015-03-05 19:00

사진 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황병기 음악 연구서’ 번역 출간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면 그것은 골동품이 되고 만다. 옛것으로 오늘날을 사는 우리와 소통할 때 비로소 그것은 전통이 되는 것이다.” 가야금 명인이자 작곡가인 황병기의 말이다. 그는 ‘옛것’과 ‘오늘것’을 아울렀다. 황병기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는 실마리다. 그는 가야금 산조(장구로 장단을 맞추는 기악 독주곡)를 기반으로 전통음악을 두루 섭렵하는 한편, 작곡 초기에는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쉔베르크 등 서양 현대음악의 테크닉도 활용했다. 동서음악의 합류 지점에서, 황병기는 전통을 대체한 게 아니라 오히려 확장해왔다.

황병기를 한국의 ‘안’이 아니라 ‘밖’에서 살핀 이가 있다. ‘밖’이지만 ‘안’도 충분히 알았다. 바로 영국인 앤드루 킬릭이다. 황병기를 처음 만난 건 1988년 서울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때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황병기의 집을 찾아 가야금 레슨도 받고, 한국 음악 전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 결과 황병기의 작곡을 분석한 논문을 완성했다. 그는 황병기와 한국 전통음악을 공부해 ‘안’의 세세한 무늬를 살필 수 있었고, 음악인류학을 공부해 ‘밖’의 엄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안과 밖의 적절한 균형이다.

<황병기: 한국의 전통음악과 현대 작곡가>
<황병기: 한국의 전통음악과 현대 작곡가>
앤드루 킬릭 영국 셰필드대 교수가 황병기의 음악을 조명한 연구서가 우리말로 번역됐다. 2013년 출간한 <황병기: 한국의 전통음악과 현대 작곡가>(사진)다. 영국의 저명한 사회과학 출판사 ‘애쉬게이트’가 펴낸 이 책은 영국 최초로 동양의 전통음악 작곡가를 다룬 연구서다. 김희선 국민대 교수가 번역한 한글판 제목은 <황병기 연구: 한국 전통음악의 지평을 넓히다>(풀빛)이다. 김 교수는 한국 전통음악, 특히 산조를 공부한 음악인류학 박사다.

80년대 그의 작곡 분석해 논문 쓴
앤드루 킬릭 영국 셰필드대 교수
서양 음악 수용한 접근법 등
작품 전반에 깊이 있는 평가
그의 스승 ‘정남희’ 주목하기도

킬릭이 보기에 황병기의 음악은 전통과 현대가 만나고, 고전 속에서 실험을 추구하는 모순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황병기의 음악을 “모순을 명상하는 선(禪)의 경지”라고 정의한다.

책은 연대기가 아니라 주제별로 얼개가 짜였다. 먼저 전통 장르인 가야금 산조에서 황병기의 독보적 지위를 평가한다. 또 그가 어떻게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됐는지 되짚어본다. <침향무>, <가라도> 등 작품을 통해서는 황병기의 불교문화와 명상적 심미안을 들여다 본다. 서아시아적 영감이 깃든 <비단길>, <하마단>과 아방가르드적인 작품 <미궁>, <자시>도 뜯어본다. 그리고 서양의 전위음악을 수용한 접근법에 이어 작품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평가를 내린다.

킬릭은 황병기 음악의 출발을 산조로 본다. “산조를 창작함에 있어 황병기는 ‘작곡’보다는 가락을 ‘짜고자’ 하였”고 “산조는 그에게 서양개념으로서의 ‘작곡’을 위한 풍부한 원천을 제공하였”으며 “정악과 산조 양식, 20세기 서양음악 작곡 기법을 결합시킴으로써 더 현대적인 향을 가미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특히 킬릭은 황병기 산조의 원류인 스승 정남희(1905~1984)를 주목한다. 월북(추정)한 스승의 산조는 “꽃처럼 화사하지 않고 말하자면 잎사귀보다 가지, 가지보다 줄기, 줄기보다 뿌리가 실한 산조”였다고 한다. 황병기는 1990년 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한 뒤, 스승의 음반을 구해 연구를 계속한 결과 지난해 말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를 음반으로 내놨다.

황병기 음악세계 연구가 해외에서 활발했던 반면, 국내에서는 적극적인 노력이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 이 책은 황병기 후속연구를 에둘러 촉구하고 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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