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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잡스가 뭐라 했든…감상은 당신의 몫

등록 2015-03-30 19:38

마크 로스코 회고전의 마지막 공간에 내걸린 <무제(레드)>. 1970년 로스코가 자살 직전 그린 이 작품은 피 같은 주홍빛깔로 뒤덮여있다.
마크 로스코 회고전의 마지막 공간에 내걸린 <무제(레드)>. 1970년 로스코가 자살 직전 그린 이 작품은 피 같은 주홍빛깔로 뒤덮여있다.
[리뷰] 마크 로스코 전
로스코, 작품-관객 사이 개입 싫어해
주최쪽 ‘잡스 마케팅’이 명상 방해
“우리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마크 로스코의 그림처럼 단순하게 접근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색깔구름들이 떠다니는 거장 마크 로스코(1903~1970)의 그림 앞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지난 23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 회고전 개막식에 참석한 그는 “작품들을 보면 힐링이 많이 된다고 하는데 저희들도 많이 힐링하고 가겠다”고 덧붙였다.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은 물론 얼마전 피습당했던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도 축사를 했다. 리퍼트 대사는 “로스코는 다양한 스타일의 예술을 실천했습니다. 잘 알려진 것은 추상표현주의 작품이겠지만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작품들도 남겼습니다. 삶도 흥미진진합니다…시간을 초월한 이 작품들을 함께 볼 수 있어 기쁩니다. 같이 갑시다!”라고 외쳤다.

여러 빛깔의 색층이 어우러진 로스코의 49년작 ‘무제’. 색면추상작업이 막 본격화된 시기의 작품이다.
여러 빛깔의 색층이 어우러진 로스코의 49년작 ‘무제’. 색면추상작업이 막 본격화된 시기의 작품이다.
자살로 생을 마친 로스코는 50~60년대 세계 현대미술의 새 주도세력이 된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대가 중 한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아는 사람만 열광하는 생소한 작가다. 라트비아 출신 이민자였던 작가는 화면을 물질로만 간주하는 모더니즘 흐름에 선을 긋고 마음 속의 숭고한 세계, 감정의 심연을 오직 색을 바른 화면 자체속에 잠기듯 보여주고자 했다. 색깔 속으로 작가는 물론 관객들까지 잠겨 심연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하는 낭만적 그림이 거장이 추구한 회화의 본질이었다. 국내 한 상업기획사에서 차린 이번 마크 로스코 전은 국내 두번째다. 앞서 리움에서 2006년 미국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컬렉션 27점을 전시했다. 이번에도 내부 수리중인 내셔널갤러리에서 초기작부터 전성기의 색채추상, 온통 진홍색 뒤덮인 최후의 작품 <무제>까지 50점을 들여왔다. 전시 시작부터 떠들썩하고 들뜬 분위기는 이색적이다. 정계 주요 인사들이 개막 테이프를 끊었고 철학자 강신주씨가 작품 세계를 설명한 2권짜리 고급도록을 발간하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

주최 쪽은 ‘스티브잡스가 사랑한 작가’란 부제를 달고, ‘잡스 마케팅’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들머리부터 말년 로스코에 매료됐던 잡스와의 인연, ‘단순함, 세상을 지배하다‘라는 경구 등을 전시벽에 채워넣었다. 로스코 작품 특유의 명상적 감상과는 별개로 ‘다르게 생각하라’, ‘모든 걸 단순하게 정리하라’는 식의 잡스식 처세훈을 익히라고 주문한다. 그리스 비극과 신비주의, 니체의 실존 철학에 탐닉했던 로스코는 “내 그림과 관람자 사이에 아무 것도 놓여서는 안된다”며 작품과 관객 사이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래서 로스코 전시의 본령으로 우선 꼽히는 것이 ‘개입하지 말라’인데, 이번 전시는 거꾸로다. 무엇을 감상하며 감동해야할 부분은 무엇인지까지 범주를 짓고 지침을 주려는 의도가 뚜렷해 보인다.

미술계 한 기획자는 “관객들이 로스코를 잘 몰라 제대로 소개하려는 취지겠지만, 홍보와 전시의 초점이 왜곡돼 야단스러운 교양 판타지처럼 전시가 흘러간다”고 꼬집었다. “침묵은 그만큼 정확한 것”이라는 로스코의 말처럼 관객이 거의 없는 시간대에 홀로 거장의 색면그림들을 직시해보길 권한다. 끝간데 없는 색채의 바다 속에서 한 색면과 다른 색면이 만나는 접점의 울렁거림을 만날 때 화면 속에서 번뇌하고 방황하는 로스코의 영혼을 만나게 된다. 6월 28일까지. (02)532-4407.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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