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사진가 다나 포파의 사진전 <아워 파더 차우셰스쿠>(Our Father Ceausescu)가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운영하는 서울 중구 케이에프 갤러리에서 4월3일부터 4월18일까지 열린다.
케이에프 갤러리 ‘다나 포파 사진전’
극심한 가난·물가상승 속
젊은이들 일상의 모습 통해
삶·변화·트라우마 등 보여줘
“오랫동안 관찰하며 장면 포착”
극심한 가난·물가상승 속
젊은이들 일상의 모습 통해
삶·변화·트라우마 등 보여줘
“오랫동안 관찰하며 장면 포착”
루마니아 사진가 다나 포파의 사진전 <아워 파더 차우셰스쿠>(Our Father Ceausescu)가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운영하는 서울 중구 케이에프 갤러리에서 4월3일부터 4월18일까지 열린다. <포켓 레벌루션>(Pocket Revolutions)이라는 이름의 ‘루마니아 현대미술전’ 가운데 하나다.
루마니아 현대미술전은 다나 포파를 포함해 설치미술, 회화, 책,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 9명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9년 루마니아 혁명 이후 루마니아인들의 삶과 변화, 집단적이거나 개인적인 트라우마 등을 보여주는 시도다. 미술전의 제목은 냉전의 종식으로 이어진 1989년 동유럽혁명과 루마니아인들이 ‘혁명 이후’에 겪게 되는 새로운 체제의 ‘혁명적 변화’까지 포함하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미술전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인 다나 포파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났고 현재 영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다. 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과 포토저널리즘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주요 관심 분야는 특히 인권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다. 전시되는 사진에는 루마니아 젊은이들의 일상생활이 가장 많이 담겼다. 또 1989년 혁명 당시를 연상시키는 황폐한 공간도 포함되어 있다. 초상사진은 언뜻 리즈 사르파티가 찍은 10대 여성들의 공허한 표정과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은 판이하다. 가만히 서 있는 지루한 유형학 사진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거나 자고 있거나 화장을 하거나 수영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는 등 뭔가를 하고 있다. 케이에프 갤러리의 도움을 받아 다나 포파와 전자우편으로 인터뷰를 했다.
-사진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어떻게 섭외했는가?
“몇 명은 프로젝트 전에 알고 있던 이들이었다. 내가 졸업한 부쿠레슈티 소재의 대학교 웹사이트에 광고를 올려 모은 이들도 있다. 또 그 뒤 내가 촬영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지인을 소개해줘서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의 경우 이미 내용을 알고 찾아왔으므로 훨씬 성공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젊은이들에게 사진 작업의 취지를 알렸는가? 그리고 포즈를 요구했는가?
“작업 전에 목적과 취지를 설명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사진 중에는) 카메라를 쳐다보는 직설적인 초상사진도 있지만 그 경우도 포즈를 요청한 것이 아니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내 앞에서 상황들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면서 어떤 장면을 포착한다.”
-혁명 전의 루마니아는 어땠는가?
“내가 어렸을 적, 우유 한 병을 받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줄을 서야 했다. 부모들이 야근을 하는 가정의 어린아이들이 통상 그 줄에 서 있곤 했다. 차우셰스쿠는 ‘국부’(father of the nation) 등과 같은 명칭으로 불리기를 원했지만, 누구도 그렇게 믿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또 하나의 농담의 소재가 될 뿐이었다. 물론 차우셰스쿠를 언급하거나 내가 들었던 농담을 입 밖으로 꺼내면 내 부모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히터가 너무 약해 우리 집이 너무 추웠고, 겨울 저녁에 전기가 끊겨 초를 켜고 숙제를 해야 했다. 공급받는 음식의 양은 항상 부족했다. 하지만 식탁 위에서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았다가 죽은 여자들이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사람들, 75개의 정치·강제 노동 수용소, 외국의 매체나 여행 금지 등에 대한 엄격한 사전 검열제도 등을 생각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은 집과 일자리를 받았는데, 정말 단순히 이것만을 생각하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루마니아는 그 뒤 민주화가 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차우셰스쿠 시절이 더 나았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다시 그 체제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사람들이 전체주의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그때에는 모두가 불안했을 것이다. 혁명 이후의 루마니아는 자본주의의 단점도 받아들여야 했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민주주의가 왔지만 독재정권 시절에 권좌에 앉았던 사람들이 민주주의 시대에도 그 권좌를 유지했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들은 이전의 전체주의 체제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극도로 가난했고, 물가는 해마다 급격히 상승했다. 미래에 대한 안전판과 희망이 없었기에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길 원했다.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표면적으로는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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