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부터 가을까지 서울 서촌의 골목과 거리를 수놓은 꽃들을 펜화로 기록한 김미경 작가의 신작. 도판 김미경 작가 제공
그가 손에 든 펜은 그의 집요한 눈길을 곧이곧대로 전해주는 투시경이다. 펜으로 슥삭슥삭 그려낸 화폭에 작가가 물처럼 공기처럼 눈매로 들이마신 서울 옛 동네의 오래된 삶과 생태가 꿈틀거린다.
올해 2월 첫 전시에서 서울 인왕산 자락 서촌의 골목과 옥상 풍경을 펜화로 옮긴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받았던 작가 김미경(56)씨가 서촌의 꽃들을 담은 신작들을 들고 다시 전시장에 나온다. 11월 4~10일 서울 창성동 갤러리 ‘창성동 실험실’에서 열리는 두번째 전시 ‘서촌 꽃밭’이다. 올해 봄부터 가을까지 서촌 거리에서 피고 진 100여 가지 꽃들을 두루두루 사생한 결실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첫 개인전 때 서촌 살림집들의 옥상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이곳의 살아있는 풍경을 떠냈던 작가는 그 뒤 아래로 내려와 동네 골목골목을 훑고 다녔다. 낮은 땅바닥에 소박하고 겸손하게 피어난 ‘우리 동네, 우리 꽃’들을 그때그때 마음 기운을 모아 관찰하면서 펜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엷은 수채 물감으로 색을 입혀 가로 10㎝, 세로 25㎝의 소품 그림으로 옮겨냈다.
맨드라미, 진달래, 찔레꽃, 봉숭아, 나팔꽃, 백일홍, 채송화 등의 꽃잎과 꽃대, 꽃자루 등의 연약하고 섬세한 자태들이 작가의 감정에 실려 다가오는 작품들이다.
작가가 몸붙이고 사는 서촌 거리의 오랜 한옥들과 골목길 사이 틈새에서 세 계절을 지나는 동안 얼굴을 디밀고 피었다가 사그러진 꽃들이다. 계절, 공간마다 바뀌는 관찰자의 미묘한 감각과 정서가 펜선 사이에서 전해진다.
기존에 알려진 다른 펜화들은 대개 사진 이상의 정교한 묘사력과 현장감을 과시한다. 하지만, 김 작가의 그림은 형상을 핍진하게 옮기는 모사의 기술에 전적으로 기대지 않는다. 자기가 사는 동네 골목과 사물, 생태 등에 대한 애정어린 감정을 필력에 흠뻑 녹여낸다는 점에서 독특한 교감의 매력을 지녔다. 과거가 투영된 현재 서촌 공간의 일상성을 직관에 담아 기록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도 값지다. (070)7539-4822.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