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택배 왔어요’. 사진 극단 파수꾼 제공
리뷰 l 연극 ‘택배 왔어요’
노인 유기 문제 다루면서도
희극적 요소 곳곳에 담아
노인 유기 문제 다루면서도
희극적 요소 곳곳에 담아
“택배 왔어요!” 택배 기사가 커다란 종이상자를 싣고 소극장의 관객 출입문으로 들어오면서 연극은 시작된다. 집 주인은 일단 ‘뭐가 왔나’ 반가워한다. 그런데 상자 안엔 뭔가 특별한 게 들어있다. 연극 <택배 왔어요>(작 이미경, 연출 이은준)는 택배라는 장치를 적극 활용한다. 인터넷 연결을 빼면, 사실 택배라는 게 ‘나’와 외부를 연결하는 유력한 통로 아니겠는가.
문제는 택배 상자 속 물건일 터인데, 상자 안에선 다름 아니라 집 주인인 건설업자 ‘정승일’(박완규)의 어머니이자 주부 ‘송미란’(우정원)의 시어머니가 나온다. ‘분실노인센터’라는 곳에서 정승일의 형인 첫째아들이 봉양을 포기한 늙은 어머니를 둘째 집으로 택배에 실어 보낸 것이다. 늙은 부모를 산에 내다버리는 ‘고려장’ 이야기를 현대에 되살려낸 셈이다.
연극의 힘은 이들 40대 부부의 ‘특별한 처지’로 인해 배가된다. 남편의 사업 부진으로 빚쟁이의 빚독촉에 시달리고 있으며 첫째아들의 필리핀 유학 비용을 대느라 허리가 휜다. 더구나 필리핀에 유학간 아이가 납치범한테 붙잡혀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선 큰 돈을 송금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부부는 모실 형편이 안 된다면서 어머니를 분실노인센터로 반송한다.
비극적 상황임에도 무대는 희극적 요소를 곳곳에 뿌려뒀다. 40대 부부는 검정색 개를 키우는데, 배달된 어머니한테보다 더 정성을 기울인다. 분실노인센터 쪽은 밝으면서도 사무적인 말투로 유기 노인을 배달로 보내는 상황을 설명한다. 상황의 비극성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일 터이다.
연극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와중에, 부부를 연기한 박완규, 우정원 배우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다. 어머니에게는 지극한 불효를, 자식한테는 지극한 사랑을 쏟는 모순적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옆집 아저씨, 아줌마의 모습 그대로다. 지난달 공연된 국립극단 <겨울이야기>(연출 로버트 알폴디)의 그 배우들이다.
연극은 이처럼 2016년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포착해 냈지만, 노인 유기라는 너무 분명한 문제를 다룬 때문인지 메시지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어 보인다. 또, 우리 사회의 노인 문제를 ‘못난 자식’의 문제로 축소하는 바람에 사회적 고민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마무리의 신파 장면도 극의 전체 흐름과 맞지 않아 보인다. 서울 대학로 노을소극장에서 28일까지 이어진다. 관람료 2만~3만원. 예매처 인터파크 1544-1555.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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