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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힘센 러시아 곰의 섬세한 변신

등록 2016-04-20 21:59수정 2016-04-20 21:59

  사진 마스트미디어 제공
사진 마스트미디어 제공
베레좁스키 6년만의 내한 독주회
190㎝ 거구 공연중 피아노줄 끊기도
그리그 서정소곡 선곡…새 면모 기대
건반 위의 사자, 러시아 곰, 힘센 러시아인(Mighty Russian)….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좁스키(47)를 이런 수식어로만 기억했던 이들은 이제 시선을 달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6년 만에 열리는 그의 내한 독주회(5월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로그램에서 그리그와 스카를라티의 서정미 넘치는 곡을 발견한 뒤 든 생각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클래식 음악계에서 베레좁스키의 명성이 한창 수직 상승하던 시점, 그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마도 앞으로 10년 정도 이러한 수준의 기교를 지속할 겁니다. 50살 무렵에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은 고난도의 곡을 연주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강한 스태미나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신이 말했던 ‘그 무렵’이 가까워졌고, 내한 공연에서의 선곡은 분명 눈에 띄게 달라졌다.

베레좁스키는 지금껏 ‘비르투오소’(기교가 매우 뛰어난 연주자)의 대명사였다. 1990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자인 그는 내한 공연 때마다 초절기교적인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도배해왔다. 협주곡 무대의 경우 한 번에 한 곡으로는 성에 안 차는지, 2~3곡의 협주곡을 폭풍처럼 쏟아내 혀를 내두르게 했다. 2006년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의 밤’에서는 협주곡 2, 3번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2007년 ‘러시안 협주곡의 밤’에서는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을, 2009년 ‘2번 협주곡의 밤’에서는 쇼팽, 라흐마니노프, 브람스의 협주곡을 내리 연주했다. 이때 첫 곡인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는 강한 타건으로 피아노 줄을 끊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독주회 레퍼토리도 난이도가 협주곡 못지않았는데, 2002년에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을 완주했고, 2004년에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곡’ 중 하나로 꼽히는, 레오폴드 고도프스키 편곡의 쇼팽 연습곡을 연주했다. 그가 190㎝가 넘는 장신을 구부린 채 두툼하고 큰 손으로 건반을 장악할 때면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가 작아 보이는 착시가 일어나곤 했다.

이런 그에게서 변화가 읽히기 시작한 것이 2010년 독주회 때였다. 쇼팽의 왈츠와 뱃노래 등 서정적인 레퍼토리를 독주회 2부에 비중 있게 배치하며 그동안 상대적으로 가려졌던 섬세하고 서정적인 면모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 연주는 최근 들어 실수가 잦고 집중력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협주곡 연주보다 오히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다른 여러 나라의 무대에서도 그의 서정적인 레퍼토리는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이번 독주회 무대에서 그는 그리그의 서정소곡과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를 골랐다. 그가 앞으로 펼쳐 보이고 싶은 음악세계를 좀더 본격적으로 전개하리라 기대된다. 물론 그의 기교를 전혀 맛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첫 곡인 버르토크 피아노 소나타와 마지막 곡인 스트라빈스키 피아노 소나타에서는 전매특허인 불꽃 기교를 여지없이 선보일 것이다. 잘 알던 음악가의 새로운 면모를 엿보는 것은, 기대한 바를 충족시키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줄 것이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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