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극 ‘민중의 적’ 연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복지를 위한 증세, 시위 강경진압…. 토마스 오스터마이어(48) 연출의 연극 <민중의 적>무대는 늘 격렬한 토론장이다. 온천수 오염을 둘러싼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는 4막, 주인공이 ‘당신이라면 어떡하겠느냐’며 관객을 토론으로 끌어들인다. 2014년 9월 영국 런던 공연, 관객은 대부분 “저요, 저요” 손을 들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 대한 찬반부터 스코틀랜드 독립 찬반까지 논쟁은 뜨거웠다. 오스트레일리아 관객들은 배우를 진짜 정치인들인 것처럼 공격했다. 세계 순회공연에서 ‘복지를 위한 증세’ 등 다양한 주제의 의견들이 터져나왔다. 터키 현지 신문은 정부의 시위 강경진압을 비꼰 이 연극을 이례적으로 정치면에 싣기도 했다.
왜 이 연극은 이렇듯 논쟁을 몰고 다닐까? 헨리크 입센의 1882년 원작에 동시대 문제의식을 입혔기 때문이다. 연극은 “침묵하는 다수와 진실을 외치는 소수 가운데 과연 누가 민중의 적이냐”고 질문한다. 실험정신을 대표하는 독일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이 <민중의 적>을 들고 온다. 오는 26~28일 서울 엘지아트센터에서 한국 관객과 처음으로 만난다.
작품의 얼개는 온천 오염 사실을 폭로하려는 박사가 한 축, 은폐하려는 정치인·언론인·자본가와 이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또 한 축을 이룬다. 젊은 아내와 아이를 둔 스토크만 박사는 마을의 온천수가 공장 폐수에 오염된 사실을 알고 언론에 폭로하려 한다. 기사화를 약속했던 신문기자들은 스토크만의 형인 시의원의 외압 속에 지지를 철회한다. 사면초가에 몰린 스토크만 박사가 시청에서 군중을 모아 연설을 벌이는 장면은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오스터마이어 연출은 이 장면에서 관객들을 토론자로 끌어들여 무대와 객석이 함께 융합하게 한다.
세계 순회공연에서처럼 한국에서도 격렬한 토론이 벌어질까? 가능성은 충분하다. <민중의 적>의 소재인 온천수 오염보다 훨씬 더 심각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 증세와 시위 강경진압 등 전세계적인 주제 역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상황,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으로 엄존·상존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엘지아트센터도 연극 중 토론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연극이 독일어로 진행되니만큼 2명의 통역자(독일어-한국어)를 객석에 배치할 예정이다.
엘지아트센터 관계자는 “그 나라 내부의 정치적인 이슈와 맞물릴 때 토론이 더 격렬해지고 객석에서 고함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형인 시의원이 온천수 오염 폭로를 반대하는 이유가 세금을 더 거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증세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독일에서 작품을 보고온 한국 관객 중에는 ‘작품보다 토론이 더 재미있었다’는 반응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토론을 동반한 연극은 즉각적이고 폭발적이다. 극장문을 나선 뒤 리뷰와 비평의 영역으로 넘어가기도 전, 극장 안에서 곧장 사회적 이슈로 직행한다. 바로 그때 관객은 자신의 정당성을 ‘문책’ 당한다. 요컨대 <민중의 적>은 자본주의에 포위된 사회의 병폐를 더덜 없이 보여주되, 한편으로는 그에 포섭된 다수의 시민을 그 사회의 ‘부역자’가 아닌지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연극 곳곳에는 데이비드 보위의 곡 ‘체인지스’가 흐른다. 무엇을 바꾸자는 얘기일까? 오스터마이어 연출의 대답은 뜻밖에 온건하다. “우리 공연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우리 공연을 봤다고 혁명을 일으키는 사람 역시 없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정치적 성공을 빌미로 문화현상을 단순하고 일반화하려는 사람들에게 현명한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 그것이 연극이 해야 할 일이다.” 17년째 샤우뷔네 극장에서 예술감독으로 일하는 그는 고전과 현대극을 오가며 꾸준히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던져왔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