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군대 갔다 왔고 오태석씨는 군대 가기 전이었으니까, 우린 대학을 같이 다녔어요. 1962년 <꼭두각시 박첨지놀이> 할 때 오태석씨가 연출을 맡고 난 대사를 혼자 도맡아 하는 ‘막잡이’를 했어요. 그게 작품에서 첫 인연이지요.”(오현경)
“1962년 박첨지를 할 때부터 2016년 지금까지 54년 동안 초지일관 연극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그런 선후배가 이번에 다시 제 작품 <태>를 함께하게 돼 매우 뜻깊습니다.”(오태석)
두 사람은 <꼭두각시 박첨지놀이>에서 배우와 연출로 처음 만났다. 연세대 선후배 사이로 오현경은 국문과, 오태석은 철학과를 나왔다. 이후 두 사람은 번역극 <우리 읍내>에서 두번째로 함께했다. 세번째는 배우 오현경이 식도암 수술을 한 뒤 요양 중 올린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연출 오태석이 “형, 목소리는 나오지?”라고 물은 뒤 주역을 떠맡겼다. 두 사람은 이번에 다시 네번째로 연출과 배우로 만난다.
여든살의 현역 배우 오현경과 일흔여섯살의 연출 거장 오태석이 대형 정극 <태>에서 의기투합했다. ‘원로연극제’의 하나로 새달 3~12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지난 22일 대학로에서 두 연극인을 만났다.
<태>의 배경은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권좌에 오르는 왕위찬탈이다. 세조가 충성을 맹세하면 살려주겠다고 설득해도 사육신은 ‘불사이군’의 결연한 태도를 굽히지 않는다. 멸족을 앞둔 박중림(오현경 분)과 손부가 세조를 찾아가 뱃속의 아이만 낳게 해달라고 간청하자 세조는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살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손부는 아들을 낳았지만 여종의 자식과 바꿔치기해 아들을 살린다. 자식을 잃은 여종은 실성해 아이를 부르며 떠도는데….
<태>는 유신 반대 시위가 절정으로 치닫던 1974년 초연했다. 직접 대본을 쓴 오태석이 배경을 설명했다.
“유신 정권에 저항이 컸습니다. 명동성당 시위가 있은 뒤 ‘소급 계엄령’이 내려졌습니다. 당시 데모를 하지 않은 대학생이 거의 없었는데, 장준하·백기완·주동 학생 외에 ‘보통 학생’ 8명이 데모 선동 명단에 올랐습니다. 그 8명의 학생도 처벌 대상이 되는지, 그들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관심이 쏠렸습니다. 다시 올리면서 지금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배우 오현경은 <티브이 손자병법>으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연극계 후배들에겐 ‘사실주의 연기의 대가’로 통한다. 대극장을 울리는 정확한 모국어 발음, 말투의 엄중함, 품위있는 연기는 연극계에서 이미 정평이 났다.
오현경은 “큰 극장 연기를 하려면 연기도 커져야 해요. 배우가 상대 배우와 대화를 하더라도 객석을 보고 말하면, 관객이 먼저 대사를 느끼고, 다시 상대 배우한테 넘어가게 됩니다”라고 했다. 소극장 위주의 무대에 주로 선 배우들은 오현경의 연기론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겠다. 오태석은 “배우가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말이 결정됩니다. 배우에겐 우리말을 보존·유지하고 빨래하고 꿰매는 역할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오현경에겐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라는 작품에 우리 부부(부인은 배우 윤소정)가 같이 나오니까 방배동 우리집에서 연습했어요. 여섯달 동안 오 연출이 집에 오니 당시 유치원생이던 딸(배우 오지혜)이 오 연출을 ‘진짜 삼촌’으로 알았습니다, 하하.” 연습을 6개월이나 했지만 정작 무대에는 오르지 못해 늘 아쉬운 작품이다.
<태>에는 정진각, 손병호, 성지루 등 쟁쟁한 배우들이 함께한다. 원로연극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한국 연극사를 톺아보는 행사로 새달 3~26일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연다. 김정옥, 오태석, 하유상, 천승세의 작품을 한 번에 볼 기회다. (02)3668-0007.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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