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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33번째 곡에선 무아지경…베토벤의 영혼과 마주하다

등록 2016-07-14 15:35수정 2016-07-14 19:43

피아니스트 김선욱, 디아벨리 변주곡 도전
음악유산 집대성한 ‘언젠가 올라야 할 산’
“1시간 짜리가 10분처럼 빨리 지나가죠”
피아니스트 김선욱. 빈체로 제공(Martin Jehnichen 촬영)
피아니스트 김선욱. 빈체로 제공(Martin Jehnichen 촬영)
2014년 초입의 어느 날,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독일 본에 위치한 베토벤의 생가 ‘베토벤하우스’ 지하의 비공개 기록보관소로 안내됐다. 지상층 박물관과 달리, 지하층 기록보관소는 베토벤 전문 연구자나 베토벤 연주에 권위를 인정 받은 안드라스 시프, 알프레드 브렌델 등 일부 음악가들에게만 출입이 허용된다. 친필 악보, 초판본과 개정본, 일기, 중요 서신 등 베토벤의 음악 유산 중 가장 가치 높고 희귀한 것들이 보관돼 있다.

“200년도 더 전에 베토벤이 직접 쓴 악보와 편지들을 봤을 때, 그의 영혼과 마주한 기분이었어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작곡했을지 상상할 수 있었어요.“

지난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김선욱은 그 때의 느낌이 떠올랐는지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가 비공개 기록보관소에 출입할 수 있게 된 것은 2013년 안드라스 시프 마스터클래스의 일환으로 베토벤하우스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뒤부터였다. 그가 또래 젊은 연주자 중 두드러지게 베토벤에 천착해왔음을 아는 베토벤하우스 학자들은, 거장 연주자 대상의 ‘명예회원’ 제도와 별개로 젊은 연주자를 위한 ‘멘토링’ 제도를 신설해 그를 받아들였다. 그는 현재까지 이 ‘멘토링’ 제도의 최초이자 유일한 회원이다.

“자료가 무궁무진합니다. 덕분에 디아벨리 변주곡(디아벨리의 주제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악보도 베토벤의 친필본으로 접할 수 있었어요.”

작곡가 겸 출판업자 안톤 디아벨리(1781∼1858)는 자신의 왈츠 주제로 베토벤, 슈베르트 등 당대 유명 작곡가 50명에게 변주곡을 쓰게 한 뒤 ‘조국 예술가 동맹’이라는 제목으로 묶어 출판할 요량이었다. 이 제안을 거절했던 베토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음을 바꿔 1곡이 아닌 무려 33개의 변주곡을 썼다. 이 대곡에는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체르니 등 선대 작곡가들의 양식과 거기서 진일보한 베토벤 고유의 양식까지 방대한 아이디어가 집대성돼 있다. 10대 때부터 거의 모든 베토벤의 작품을 섭렵해 온 김선욱에게 이 곡은 언젠가 올라야 할 산이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 빈체로 제공(Martin Jehnichen 촬영)
피아니스트 김선욱. 빈체로 제공(Martin Jehnichen 촬영)

그는 “연주시간 1시간짜리인 이 곡이 내게는 마치 10분처럼 빠르게 지나간다”며 33번째 변주곡에 이르면 무아지경의 상태가 된다고 했다. “다장조 화음으로 끝을 맺는데, 1시간 여정을 이 한 음으로 다 정리하는 것 같아요. 베토벤은 악보에 페달을 누르라는 표시를 하면 어디서 떼어야 할 지도 분명히 표시하는 사람인데, 이 음에는 누르라는 표시만 있어요.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페달을 떼지 말라는 거죠. ‘왜 그렇게 썼을까’ 수없이 생각했어요. ‘삶이 얼마 남지 않았던 당시의 베토벤이 자신의 음악만은 영원하기를 바랐던 걸까. 장대한 여정의 끝을 맺는 대신 다시 뭔가를 시작하고 싶었던 걸까. 모든 의문에 대한 정답을 찾고, 자신을 억누르던 고통에서 자유로워져 훌훌 날아올라 가려던 걸까’ 하고 말입니다.”

김선욱의 <디아벨리 변주곡>은 15일 경기 평촌아트홀, 16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들을 수 있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8번 사장조, 모차르트 환상곡 라단조도 함께 연주한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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