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대지진 뒤인 2013년 9월21일 후쿠시마의 미나미소마에서 다미르 사골이 찍은 쓰나미에 휩쓸려 온 자판기.
한 세기 전, 독일에서는 발전된 망판 기술로 신문에 사진을 싣기 시작했다. 이렇게 탄생한 포토저널리즘은 그로부터 100년간 사진 장르 중 으뜸으로 군림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부분의 사진가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로버트 카파 등은 사진기자였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인류는 인터넷과 디지털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포토저널리즘이 붕괴하고 현대예술사진이 부상했다. 누구나 사진기자가 될 수 있어도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순 없었다. 그 경계에 <로이터> 기자 다미르 사골(45)이 있다.
사골도 우리처럼 일상에서 아무 고민 없이 음료수 한 잔을 뽑아든다. 자판기 기계가 요구하는 동전, 지폐를 넣어주면 곧 얼음까지 포함한 ‘코카콜라’ 한 잔이 제공된다. 그런데 이런 장소는 어떨까? 자판기가 동일본 미나미소마의 논밭 한가운데 있다. 얼마 전 쓰나미가 몰려와 원래 있던 곳에서 피치 못하게 휩쓸려 왔다. 근처 후쿠시마 원전에서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주변은 생명이 살기에 부적합할 정도로 오염됐다. 사골은 목이 마르지만, 거기는 이미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미나미소마의 자판기를 찍은 사골의 사진은 기존 저널리즘 사진과 매우 다르다. 기존 사진은 직접적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시각정보를 주지만, 사골의 사진은 정보가 감추어졌다. 한참을 감상해야 의도를 읽고 공감하게 된다. 사골은 말한다. “좋은 저널리즘 사진은 ‘두 개의 의자'에 걸터앉는 것과 같다. 정확성·공정성·연관성 등 뉴스의 속성은 물론 아름다움을 갖춰야 한다. 포토저널리즘에서 아름다움이란 곧 진실을 말한다.”
사골은 타인의 고통과 대면하는 방법을 안다. 고향 보스니아의 내전 당시 시민군으로 참전해 4년간 복무한 전력이 있다. 그 뒤 파리에서 직업 사진기자의 전선에 나선 그는 20년 가까이 인간의 고통이 스민 풍경들을 찾아다녔다. 너무 뻔한 객관적 정보도, 모호한 예술가의 주관적 해석도 거절한 채 현장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미려하고도 아픈 사진들을 내보이고 있다. <로이터 사진전>에서 그의 작품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상엽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