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달의 목소리>에서 주역을 맡은 원영애 극단 독립극장 대표가 연기하고 있다.
1인극이지만, 무대 위의 탁자는 12개다. 의자가 딸린 탁자 위에는 전등이 하나씩 있다. 전등이 켜지면, 인생에서 만났던 소중한 이들이 한 명씩 호명된다. 일경의 고문을 받고 죽은 양복점 주인, 친정아버지,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남편 등등…. 12개의 탁자 위에 흰 국화 12송이가 차차 채워진다. 국화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정국 와중에서 그의 곁을 떠난 이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임시정부의 며느리’로 불린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1900~91) 선생이 평생 존경하고 사랑했던 이들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왜 일제 순사 출신한테 취조와 고문을 당해야 하나?” 정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달의 목소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다.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과거 청산이 다시 현재를 거머리처럼 옥죄는 한국의 현실을 웅변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맡은 원영애 극단 독립극장 대표는 <아, 정정화>(1998), <치마>(2001)에 이어 20년 가까이 선생의 일대기를 무대에 올려왔다.
‘임시정부의 며느리’로 불린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달의 목소리>가 18일까지 서울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극중에서 선생은 절규하고 탄식한다. 일제와 맞서 싸운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지사들의 절규요, 아직까지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탄식이다. 선생은 스무살이던 192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가난한 임정 살림을 꾸렸고, 독립자금을 모금하려 국내에 잠입했다가 옥고까지 치렀다. 독립운동 동지였던 남편은 한국전쟁이 앗아갔다. 선생은 2001년 8월 독립기념관이 선정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뽑혔다.
이 작품은 연극적인 의미 이상으로 교육적인 요소가 강하다. 연극은 선생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간다. 무대 전면에 수인복으로 보이는 피 묻은 한복이 걸려 있고, 그 위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영상이 다큐멘터리로 비친다. 하지만 12개의 탁자와 국화처럼 상징적인 기법도 차용해, 관객들한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린 구조’를 택했다.
피아노 이지윤, 첼로 김시은의 라이브 연주에 맞춰 원영애가 ‘여인의 길’, ‘다짐의 노래’, ‘기약 없는 막막함’, ‘옥중 소감’ 등의 노래를 부른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후원했다. 극본 김수미, 연출 구태환, 예술감독 최치림, 무대미술 임일진. 18일까지 서울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 (02)704-9566.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사진 극단 독립극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