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가시나무 작사·곡 하덕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하덕규는 그 내면에서 들리는 작은 절규의 다성화음을 받아 적을 줄 아는 드문 가수였다. 그는 고통을 견딜 줄 안다. 아니, 그의 노래는 고통을 ‘생산’한다. 사람들이 ‘전망’을 생산할 때 그는 ‘고통’을 생산했다. 그 고통은 어디에서 오나. ‘어둠’과 ‘슬픔’에서 온다. 그는 내 속의 ‘나’를 지배하는 두 요소를 ‘어둠’과 ‘슬픔’으로 요약한다. 어둠은 내가 어쩔 수 없고 슬픔은 내가 이길 수 없다. 어둠과 슬픔은 언제나 쌍으로 존재한다. 때는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전망에 관심을 쏟던 1980년대였다. 사람들은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절박했다. 금지된 광장에서는 미래의 희망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둠과 슬픔은 말없이 부대끼는 나뭇가지들이 무성한 방, 내면의 몫이었다. 젊은이들이 사과탄에, 백골단에 쫓겨다녔다. 해가 지면 교문 앞의 싸움은 사과탄 파편과 깨진 보도블록을 남기고 일시중단되었다. 달려간 친구는 며칠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고 선배들은 걱정하며 그 아이가 어느 서에 있는지 알아보았다. 젊은이들은 교문을 지나쳐 지하의 주점으로 흘러들곤 했다. 막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취기만이 남았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자주 울던 어떤 선배를 기억한다. 그는 만취 상태에서 울었고, 주위에 있던 동료나 후배들도 괜히 같이 따라 울곤 했다. 사실 그 울음에는 정확한 이유가 없었다. 그 선배는 참 노래를 잘했다. 그가 큰 눈망울을 반짝이며 노래할 때 여자 후배들이 그 눈빛을 바라보곤 했다. 왠지 그 눈망울에는 아픔이 없지 않았다. 그 선배의 이념적 박약함을 비판하던 사람들도 있었고 그 비판은 정당한 것이었지만 아무도 그 선배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지하의 주점에서 우리는 많은 노래를 불렀다. 레퍼토리는 뽕짝에서 민중가요까지 다양했다. 왜 그렇게 노래를 많이 불렀을까. 노래하면 조금 나아졌다. 차이들은 살짝 지워졌고 낮에 엔엘(NL)이다, 시에이(CA)다, 논쟁하던 선배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이 처이, 무릎을 치며 함께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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