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소년의 ‘다시 4월, 아픈 세월’의 한 장면. 뉴스타파 제공
‘문신, 피어싱, 챙이 큰 모자, 헐렁하거나 찢어진 복장…’
힙합 연관어는 대부분 불손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힙합정신의 뿌리는 저항이기 때문이다. 1970년 미국 빈민가 흑인들은 노골적인 차별을 받았고 희망 없는 현실의 탈출구로 힙합을 노래했다.
힙합은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불렀던 노동요에서 시작된 블루스와 달랐다. 블루스가 자신을 때리는 채찍이라면 힙합은 세상을 향한 기관총이었다. 같은 5분이라도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이처럼 힙합이 저항 또는 자유의 음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힙합의 역사와 형식적 특성에서 오는 것이다. 따라서 치타와 장성환 전에도 이미 여러 힙합 뮤지션이 ‘세월호’ 노래를 많이 불렀다. 도대체 국가는 어디 갔느냐는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거침없는 내용의 사회참여적 힙합곡을 선보여온 디지의 ‘엑스엑스엑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2014년 9월 이 노래를 자신의 페이스북(deegie.kheem)에 올렸다. 이 노래에선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을 비웃고, 좌우를 편가르려는 정치권과 언론을 강하게 질타한다. 그는 “세월호라는 단어가 왜 정치적인 단어인지/ 그리고 노란색과 노란 리본이 왜 정치적인지 난 도대체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제리케이의 ‘스테이 스트롱’(Stay strong)도 비슷한 곡이다. 2014년 하반기 나온 이 노래 역시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을 보면서 쓴 곡이었다. 가사도 의미심장하다. “우린 가시 위를 걷고 있지/ 하지만 이겨내/ 스테이 스트롱 스테이 스트롱” 그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생존 기반이 취약한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개인적 힘으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쉽지 않기 때문에 강하게 버티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디템포의 세월호 추모곡 ‘선명하게’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우주의 기운’ ‘새타령-닭전’ 등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노래를 발표해온 디템포도 추모곡 ‘선명하게’를 2015년 12월 선보였다. 디스코 멜로디에 풍자가 가득했던 그의 다른 곡과 달리 이 노래는 매우 서정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생자들을 잊지 못하고 더 그리워한다는 내용이다. “아직도 난 그 시리고도 차갑게 느껴지는 날에서 살고 있어/ (중략) 희미해져버린 니 미소를 가슴에 다시 한번 새겨/ 세월은 야속하게도 점점 아리게 그 향기와 흔적을 남겨, 선명하게.”
디템포가 자신의 스타일과 다른 노래를 부른 것은 혹시 유가족의 상처를 건드릴 수 있다고 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중의적인 가사를 썼고 지나치게 슬프지 않으려고 작곡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6월 세월호 관련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고 뒤풀이에서 유가족들을 만난 뒤 들었던 기분을 정리한 것”이라며 “보컬은 담담하게, 랩도 자박자박하게 갔다”고 말했다.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해온 아날로그 소년이 지난해 4월 선보인 ‘다시 4월, 아픈 세월’이라는 노래는 디템포와는 반대다. 이 노래는 대안언론 ‘뉴스타파’에서 랩과 뉴스를 결합시킨 ‘설파’라는 새로운 형식인 만큼 유가족의 아픔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고 박수현군과 아버지 박종대씨의 사연이 화면으로 전개되고 그 위에 배경 음악처럼 노래가 흐른다. 랩이 뉴스 인터뷰와 함께 편집돼 몰입도가 매우 높다.
노래는 아버지가 수현군의 책상에서 “사랑하는 수현아 그동안 잘 있었느냐”라는 편지를 쓰는 가슴 먹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현군이 세월호에서 아이들과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며 찍은 영상도 나온다. 그 위로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직설적인 랩이 거침없이 흐른다. “내 아이의 희생으로 사회가 변하는 건 너무나 잔인하지만/ 그렇게라도 바뀐다면 덜 억울할 것 같아/ 이 나라는 1년 동안 배신감만 안겼어/ 아무리 피 토해도 메아리는 없어/ 여전히 수면 아래 잠겨 있네 세월은 여전히 잠겨 있네/ 모든 게 숨겨진 채 잠겨진 채.” 힙합 특유의 욕설도 등장하지만 통쾌하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4월16일을 기억하기 위해 러닝타임 4분16초짜리 곡을 만든 래퍼도 있었다. 가장 인기있는 힙합 가수 가운데 한 명인 지코는 2015년 ‘말해 예스 오어 노’의 길이를 4분16초로 녹음했다. 또 앨범 오른쪽 하단에는 세월호를 추모하는 뜻의 노란 리본을 달아놓았다. 지코는 이미 자신의 에스엔에스에 “세월이 지나도 그 세월만은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힙합의 상징인 문신으로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래퍼도 있었다. 봉사활동이나 기부에 적극적이어서 ‘개념 래퍼’로 불리는 슬리피는 2014년 5월 손목에 노란색 문신을 했다.
물론 힙합 장르 말고도 세월호 관련 수많은 추모곡이 있다. 이 가운데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포크 부문을 수상한 권나무의 세월호 추모곡 ‘이천십사년사월’,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불러 유명해진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등이 특히 널리 알려진 곡이다. 임형주는 세월호 참사 뒤 외국곡에 자신이 가사를 직접 붙인 이 곡이 각종 추모행사와 라디오방송 및 온라인상에 널리 쓰이자 공식 추모곡으로 헌정하고 음원 수익금 5700만원을 전액 기부하기도 했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