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는 1991년생 작가의 눈으로 흙수저·팔포세대라는 말이 넘치는 우리 사회의 가족이 어떻게 해체되고 재조립되는지 탐구한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남자 “내일 동사무소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전입신고를 하고.” 여자 “컨셉은 부부로 가자는 거지. 너 소득확인 증명서 어딨어?” 남자 “아 여기.” 여자 “소득확인 증명서. 도호영. 0원. 좋아.”
이들은 지금 “절차상 결혼은 포기했어도 형식상으로 결혼”하려는 참이다. 둘은 예술가 지원금을 타내려 ‘가짜 부부’ 서류를 꾸민다. ‘팔포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나온 ‘2017년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는 내 집 마련, 인간관계를 접으며 오포세대로, 꿈·희망·건강까지 포기한 팔포세대로 진화 또는 퇴화했다.
‘2017 두산아트랩’ 쇼케이스 연극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는 1991년생 작가의 눈으로 흙수저·비혼·팔포세대라는 말이 넘쳐나는 우리 사회를 들여다본다. 가부장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이 어떻게 해체되고 재조립되는지 ‘생태’를 탐구하고 ‘보고’한다. 박서혜 작가가 쓰고 <이반검열>의 이연주가 연출한다. 지난 3일 박 작가를 만났다. 그는 이 작품으로 2015년 제14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부문에 당선했다.
‘레이디 맥베스’ 캐릭터가 무척 끌린다는 박서혜 작가. 손준현 기자
“지원금을 받기 위해 거짓 혼인신고를 하는 대목은 제 이야기예요. 실제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지원금을 받기 위해 서류를 만들려고 한 적이 있거든요. 결국 소득이 1000만원이 넘어 심사에서 탈락했지만…. 배경도 실제 살았던 대학촌을 배경으로 했고요.”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에는 조부모·부모·고모부·딸의 6인 가정, 재혼부부와 딸이라는 3인 가정, 가짜 부부인 2인 가정, 1인 가정이 등장한다. 6인 가정의 모습은 ‘건장한 성인 남성’을 중심으로 꾸려지는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월소득 400만원 이상인 정규직 노동자 대신 아버지는 월 200만원을 버는 영업직이며, 아내와 딸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6인 가정에서는 가부장 체제의 붕괴와 소통 부재를 강조했어요.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를 등장시켜, 가족의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도록 설정했어요. 3인 가정에선 ‘콩쥐 팥쥐’처럼 전통적으로 나쁜 이미지의 새엄마가 아니라 전처의 딸이 권력관계의 우위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요. 1인 가정은 개와 함께 살다가 그 강아지가 죽는 이야기입니다. 개와 함께하는 것도 가정, 물론 개가 없어도 가정!”
‘레이디 맥베스’ 캐릭터가 무척 끌린다는 박서혜 작가는 스스로 막막한 세대라고 느낀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격동적인 현대사를 살고 있어 쓸 것은 많아요. 그렇지만 저희가 살아야 할 시대인데, 뭔가 노력할 수 있는 통로들이 다 막혀버린 것 같고. 이를테면 ‘인형 뽑기 보부상’(뽑은 인형을 온라인에서 파는 사람)이라는 직업까지 생겨나는 것을 보면….”
박 작가는 젊은 창작자그룹 ‘하나만 프로젝트’로 활동하고 있다. “제 또래는 굳이 극단에 들어가려 하지 않아요. 끈끈하게 뭉치는 게 아니라 모이고 흩어지는 프로젝트를 선호하죠. 연극을 할 때만 모이고 안 할 때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저는 애들 가르치고 다른 친구들은 앱을 통해 당일 바로 돈을 주는 일을 많이 찾아요. 우리 프로젝트는 지금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절충 방향을 찾고 있습니다.”
오는 16~18일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하며 누리집(doosanartcenter.com)에서 무료예매가 가능하다. 젊은 창작자 지원프로그램인 ‘2017 두산아트랩’은 <대안 가정 생태 보고서>와 함께 이달 10~11일 마르크스 ‘자본론’을 통해 예술노동의 가치를 고민하는 <삼각구도>(오재우, 이희문, 장현준), 2월23~25일 우리 사회의 커트라인을 다룬 <캇트라인>(해보카 프로젝트)을 선보인다. (02)708-5001.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