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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취미발레의 ‘백조’ 변신…오리 날다

등록 2017-02-19 12:05수정 2017-02-20 16:00

3월4일 한국발레협회 무대 앞두고
꿈 접었던 전공자, 의사, 작가 등
무대꿈 좇아 20명 동료와 땀방울
퇴근 지하철서도 연습 또 연습
파 드 되, 그랑 주떼 등 기량 쑥쑥
일반인으로 구성된 ‘스완스발레단’ 이가경(왼쪽)씨와 장지웅씨가 14일 저녁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2인무 ‘파드되’를 연습하고 있다. 스완스발레단은 발레 전공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취미로 발레를 하는 일반인으로 구성됐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일반인으로 구성된 ‘스완스발레단’ 이가경(왼쪽)씨와 장지웅씨가 14일 저녁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2인무 ‘파드되’를 연습하고 있다. 스완스발레단은 발레 전공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취미로 발레를 하는 일반인으로 구성됐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우리도 멋진 파드되(pas de deux)!” 파드되, 발레의 명장면 중 하나로 남녀 주역의 2인무다. ‘은행원 발레리나’ 안지원씨와 ‘회사원 발레리노’ 장지웅씨의 콧등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취미로 시작한 발레지만 20일 뒤인 3월4일 한국발레협회 무대에 선다. 설렘 반 긴장 반. 지난 14일 밤 서울 마포아트센터 연습실의 불은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40대 초반의 두 사람은 전공·경력에 관계없이 취미로 하는 일반인 발레단 ‘스완스’(Swans·백조) 단원이다. “날자, 날자꾸나”를 외치며 무대 위에서 우아한 날갯짓을 꿈꾼다. 무용을 전공했지만 부상 때문에 접었던 꿈, 아마추어라 기대조차 못했던 무대의 꿈…. 단원들의 작은 꿈 20개가 모여 ‘백조’의 큰 꿈으로 비상하고 있다.

'파 드 되'를 연습하고 있는 안지원(오른쪽)씨와 장지웅씨. 김명진 기자
'파 드 되'를 연습하고 있는 안지원(오른쪽)씨와 장지웅씨. 김명진 기자
# 의사, 작가 등 20명, 배운 지 평균 5~6년

이날 저녁 8시, 뻣뻣한 몸에 기름칠부터. “팔꿈치 손등을 밀어내고, 엉덩이를 뒤로, 꼬리뼈가 빠지지 않게, 자 자 인상쓰지 마시고.”(일동 웃음) 최진수 스완스발레단 예술감독의 구령에 따라 단원들은 발을 좌우로 앞뒤로 날렵하게 움직인다. 프라페(발바닥으로 마룻바닥을 스쳐 발목을 강화시키는 연습), 그랑바트망(다리를 높이 들어 근육 탄력성을 높이는 연습) 동작이 이어진다.

몸을 푸는 ‘발레 클라스’ 동작이다. 긴 봉을 잡은 채 활처럼 몸을 뒤로 젖히고, 다시 오뚝이처럼 몸을 꼿꼿이 세운다. 절하듯 앞으로 잔뜩 숙이다가, 두 다리를 다이아몬드형으로 만든다. 직장인이 많아 한꺼번에 모이기 힘들다. 두 그룹으로 나눠 연습하는데, 이날은 20명 중 11명이 모였다. 최 예술감독은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에서 무용수로 활동했고, 제17회 한국발레협회 신인 안무가상을 받았다.

단원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의사, 변호사, 작가, 화가, 은행원, 교사, 약사, 안경사, 항공사 직원, 학생, 주부…. 발레를 한 지 10년이 넘은 단원도 있지만 평균 5~6년이다. 매주 2차례씩 저녁 8~10시 연습을 한다. 부족하다 싶으면 토·일요일에도 나와 3~4시간씩 마룻바닥을 땀으로 적신다. 24살 여성이 최연소, 55살 가정의학과 의사가 최고령이다. 남자는 장지웅씨가 유일하다.

스완스를 지도하는 건 직업 공연단체인 ‘와이즈발레단’. 그래서 ‘와이즈발레단2 스완스’라고도 부른다. 2005년 창단한 와이즈발레단은 마포아트센터 상주예술단체, 발레에스티피(STP)협동조합 가입 단체다. 지난달 21일 창단한 스완스발레단은 지난해 12월 와이즈발레단의 전막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 계기가 됐다. 취미로 해온 아마추어들도 함께 무대에 올라 좋은 반응을 얻자, 김길용 와이즈발레단 단장이 창단을 결정했다.

김 단장은 “현재 단원은 20명이지만 애초 30명이 목표였습니다. 보통 한 팀이 <백조의 호수> 전막을 단독공연하면 부족하지만 30명 정도가 최소한입니다. 10~20분 소품의 경우엔 20명 정도는 필요합니다”라고 설명했다. 3월 중순 추가 오디션을 볼 계획으로, 19살을 넘은 발레초급반 이상 경력자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 부상에 접었던 꿈, 복싱 대신 이룬 꿈

‘파드되’를 연습 중인 안지원씨는 원래 발레리나를 꿈꾸던 무용 전공자다. 하지만 발목 인대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꿈을 접고 5~6년 은행을 다니던 중 우연히 동료 지점에 놀러 갔다가 발레학원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다시 발레를 시작한 게 5~6년.

“스완스발레단에서 무대에 선다니 실감이 안 나요. 학생 때 무대에서 느꼈던 희열이 되살아났으면 해요. 나이가 들면서(웃음) 감정표현이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무용은 테크닉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이 더 중요해요.(웃음) 전 가늘고 길게 가고 싶어요. 외국에선 70살까지 한다잖아요. 저도 무대에서 환갑을 맞고 싶어요. 꼭 하고픈 역은 지젤이에요. 진한 사랑을 못 해봤지만 지젤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요.” 안씨의 웃음은 튀밥처럼 연방 터졌다. 그는 “앞으로 다리보다 상체 기술을 더 연마해 감정 표현을 더 잘하고 싶어요”라고 했다.

안지원씨의 ‘파드되’ 파트너 장지웅씨는 스완스발레단의 청일점이다. 발레를 30살에 시작해 벌써 11년차다. 여자들 위주의 발레 연습장에서도 이제 별 쑥스러움이 없다.

“제가 머슴형이라 몸을 굴려야 덜 아픈 스타일이거든요. 복싱을 배우고 싶었지만 신입사원이 스파링하다 얼굴에 상처나면 찍힐까봐 못 했죠. 뮤지컬배우 하는 친구가 권해서, 발레를 6개월 정도 하고 힙합 같은 다른 춤을 배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해보니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장씨가 복싱 글러브 대신 타이츠를 입은 사연이다.

“지난해 <호두까기 인형> 군무로 무대에 섰어요. 발레는 무대예술이잖아요? 무대에 올라야 완성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반인으로서 무대 경험도 해봤으니 ‘정육면체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요. 전 <해적>의 알리 역을 해보고 싶어요. 알리는 남성미를 강하게 뿜어내는 역할이어서 그렇습니다.”

단원들은 저마다 사연을 간직했다. 30대 후반의 예고 무용과 출신 단원은 예중을 거치지 않고 진학해 부적응을 겪다 일반고로 전학한 경우다. 그는 지난해 다시 토슈즈를 신었다.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온 55살의 가정의학과 의사는 10년 전 발레를 시작했다. 당시 딸이 고3이라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엄마도 힘든 걸 할 수 있다’며 딸을 격려하려고 했다.

군무를 연습하고 있는 ‘스완스발레단’. 김명진 기자
군무를 연습하고 있는 ‘스완스발레단’. 김명진 기자
# 퇴근 지하철에서도 발레 동작 연습

스완스발레단은 다음달 한국발레협회 공연에 단편 두 작품을 올린다. 김길용 와이즈발레단 단장이 안무한 8분 분량의 <러블리 나이트>와 홍성욱 와이즈발레단 예술감독이 안무한 6분짜리 <비틀스 슈트>다. 지금 두 그룹으로 나눠 연습중이다.

<러블리 나이트>는 동화적이다. 마네킹이 음악에 맞춰 깨어나 발레 동작을 한다. 배경음악은 록앤드롤 <트위스트 앤드 샤우트>와 뮤지컬 <싱잉 인 더 레인> 등을 5~10초씩 연속해서 사용한다. 그랑주테(큰 도약), 피루엣(공중회전), 발랑세(왈츠 리듬을 타며 상체를 부드럽게 움직이는 동작) 등은 일반인에겐 어렵지만, 단원들은 생각보다 잘 소화하고 있다.

“그분들 눈빛이 또랑또랑하게 뭘 받아먹겠다는 게 보여요. 연습 끝나고도 집에 안 가고,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발레 동작을 연습합니다. 어색하고 서툴지만 프로페셔널이 갖지 못한 정열과 매력이 있습니다.” 김 단장의 칭찬이다.

또다른 작품 <비틀스 슈트>는 바로크식으로 편곡한 비틀스 음악을 바탕으로 한다. 거장 조지 발란신(1904~83)한테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음악성이 요구되며 매우 역동적이다. 이날 연습에는 <비틀스 슈트>의 파드되와 군무가 이어졌다.

“파드되의 경우 남자는 여자에 손만 대도 여자의 중심이 느껴질 정도로 오랜 시간 연습해야 하는 파트너링(여성 무용수를 들어 올리는 동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연습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어요.” 최진수 스완스발레단 예술감독은 단원들을 신뢰한다.

최 예술감독한테 취미발레 입문자를 위한 조언을 들었다. “전문 무용수의 테크닉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발레의 장점인 근육을 골고루 사용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특정 학원·센터나 선생님의 좋고 나쁨을 말할 순 없습니다만, 수업을 받을 때 무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근육 사용에 집중하길 바랍니다.” 스완스발레단 (02)703-9690.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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