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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빗물에 젖은 광장의 둥근 춤

등록 2017-03-02 16:55수정 2017-03-02 17:15

블랙리스트 반대 블랙텐트 춤공연
젖고 미끄러져도 “우리는 춤춘다”
최보결 안무가와 시민무용단 ‘도시의 노마드’가 <물의 꿈: 빛을 향하여> 공연을 마친 뒤 관객과 어울려 함께 춤을 췄다. 블랙텐트 제공
최보결 안무가와 시민무용단 ‘도시의 노마드’가 <물의 꿈: 빛을 향하여> 공연을 마친 뒤 관객과 어울려 함께 춤을 췄다. 블랙텐트 제공
춤꾼의 아랫도리는 검붉었다. 천막극장으로 스며든 빗물이 자줏빛 치마를 짙게 물들였기 때문이다. 태극기 집회와 촛불집회가 엇갈린 3·1절 저녁 8시, 빗줄기가 서울 광화문광장 블랙텐트를 호되게 후려쳤다. 빗물은 천막 틈새를 집요하게 비집고, 바닥 경사면으로 밀정처럼 침투했다. 자동차 소음과 “박근혜 퇴진” 구호가 천막극장으로 ‘난입’했다.

악천후를 넘어, 소음을 넘어 춤판은 절정을 향했다. ‘도시의 노마드’ 소속 시민 춤꾼들은 둥근 원을 그렸다. 최보결 안무가가 “함께 추자”며 객석을 향해 손짓했다. 무대로 합류한 관객 ○명, 잠시 머뭇거리다 합류한 관객 ○○명. 일순 두겹, 세겹의 원이 그려졌다. 빗물에 젖은 광장 춤꾼들의 둥근 군무.

정영두 안무가가 이끄는 두댄스 씨어터의 <퍼즐>. 블랙텐트 제공
정영두 안무가가 이끄는 두댄스 씨어터의 <퍼즐>. 블랙텐트 제공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저항해 무용인들이 뭉쳤다. 이날 공연은 지난달 27일부터 진행한 블랙텐트 무용주간의 세번째 날로, 정영두 안무가가 이끄는 두댄스 씨어터의 <퍼즐>, 최지연 안무가의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현대무용가 최보결과 시민무용단체 ‘도시의 노마드’의 <물의 꿈: 빛을 향하여>가 무대에 올랐다. 보조석까지 가득 메운 객석은 블랙리스트에 저항하는 무용인들에 대한 응원이었다.

오랫동안 무용인들은 현실 발언에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권력에 굽실거린 굴종의 역사였다. 무용인들은 1980년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계엄령을 옹호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1987년 민주화 투쟁 때에도 침묵했고 그 후로도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블랙리스트에 반대하는 시국성명서를 내는가 하면 광장에서 당당하게 춤판까지 벌였다.

최지연 안무가의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블랙텐트 제공
최지연 안무가의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블랙텐트 제공
명단에 든 무용가만 참여한 건 아니다. 지원기금 심의에 떨어진 이들만도 아니다. 그런데 왜 무대도 조명도 열악한 이곳에서 비를 맞으며 춤을 췄을까?

“공정한 심사를 원하는 것과 블랙리스트를 반대하는 것은 지극히 일부분이다. 무용인들은 지원기금이라는 명분으로 예술을 농락하는 권력이 싫었다. 블랙리스트를 인지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진행되는 자기검열이 얼마나 예술가를 가두고 창작의 가능성을 협소하게 하는지를 잘 알기에 광장으로 나왔다.” 블랙텐트 무용주간 공연을 죽 지켜본 박성혜 무용평론가의 설명이다.

무용가들이 웅장하고 화려한 극장을 벗어나 광장에서 춤춘다. 빗물로 흥건해진 무대에서 온몸이 젖고 미끄러져 넘어져도 그들은 춤춘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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