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르는 정세영의 극장 사용법 쇼케이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인 남산>. 남산예술센터 제공
작가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미완의 작품이 들어 있을까? 이들의 머릿속을 미리 스캔해볼 순 없을까? 창작 전 단계의 작품을 찾아내 보여주는 기획전이 마련됐다. 남산예술센터의 ‘서치 라이트’(Search Wright)다. 90여편 응모작 중 뽑은 낭독공연 4편, 회의테이블 3편, 비연극 무대 2편 등 9개 프로그램이다.
먼저, 정진새 작·연출의 낭독공연 <환상 속의 그대>(14일)가 무척 흥미롭다. 작가의 상상력에 관객이 동참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작품이다. 2016년 벌어진 정치·사회적인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정진새 특유의 에스에프(SF)적 기법으로 만들었다.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와 이화여대 학내 시위를 통해, 여성과 정치가 각각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권력이 개인을 통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질문한다. 에스에프적인 연극을 한다는 것은 관객 참여를 전제한다. 등장인물의 말은 현실(reality)의 말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reliability)해 지어낸 말이기에, 관객이 머릿속에 그 말의 이미지를 즉시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연극이 현실의 언어로만 가득할 경우 관객에게 계몽이나 교훈을 강요합니다. 최종 판단은 ‘지금 여기’의 관객이 하기 때문에, 그들의 과감한 결단과 힘겨운 고민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심란한 미래를 보면 현재가 좀 나아지겠죠, 아니면 말고.” <환상 속의 그대> 정진새 작가의 말 자체가 ‘환상적’이다.
창작 전 단계의 작품을 보여주는 남산예술센터의 ‘서치 라이트’ 포스터. 남산예술센터 제공
그런가 하면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만나는 공개토론 형식도 눈에 띈다. 창작집단 ‘극과이것’의 신작 <마지막 황군>(16일)이다. 강훈구 작·연출로 70여년간 서울 일대에 숨어 항전을 이어온 가상의 인물 가네무라 지로(99)를 통해 일제 잔재를 과감하게 까발린다.
스크린에 근대화 과정에서 망각된 일제 잔재를 드러내면 관객은 모습을 바꾸며 끈질기게 살아남은 가네무라 지로를 발견한다. 연출은 진정한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가네무라 지로처럼 도처에 숨어 있는 ‘황군’을 제거할 것을 주장한다. 그 종착점으로 ‘마지막 황군, 박정희’를 지목한다. 이번 무대에선 연극 <마지막 황군> 중 일부 장면을 시연한 뒤, 관객들과 함께 우리 안의 박정희를 폭로하는 토론의 장을 만든다.
<환상 속의 그대> 외에도 낭독공연은 3편 더 있다. <소년비(B)가 사는 집>의 작가 이보람이 쓰고 백석현이 연출하는 <두 번째 시간>(17일)은 독재정권 시절 의문사로 죽은 남편을 둔 부인 이야기다. 37년 전 의문사로 죽은 남편의 유골이 빗물에 무너진 무덤에서 나왔다. 유골엔 타살 흔적이 선명하다. 가족들은 이번에야말로 정부 발표대로 실족사인지 아닌지 진실을 알고 싶다.
고연옥 작가의 <처의 감각>(21일)은 남산예술센터 2016 시즌 프로그램 <곰의 아내>의 원작으로, 지난해 고선웅이 각색·연출한 공연과 해석과 결말이 다르다. 김정 연출이 맡은 낭독공연을 통해 고연옥의 원작이 무대 위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다. 마지막 낭독공연은 일본 여성작가 오사다 이쿠에의 신작으로 김재엽이 연출을 맡은 <소에츠-한반도의 하얀 태양>(24일)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공연이 마련됐다. 정세영의 극장 사용법 쇼케이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인 남산>(22일), 리서치 <극장을 측정하는 작가들>(22일), 제18회 서울변방연극제(예술감독 이경성) 개막작인 렉처 퍼포먼스 <25시-극장전>(23일), 영국 웨일스 국립극장의 공개토론 <빅 데모크라시 프로젝트>(15일)다. 14~24일 서울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손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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