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브이8(DV8) 피지컬 시어터’ 춤꾼 출신 안무가 에릭 롱게. 엘디피무용단 제공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샘하는 사람>에서 영감을 얻었다. (호퍼는 도시의 텅 빈 공간을 통해 고독, 우울, 절망감을 표현한 화가다.) 내 신작 무용은 유리상자를 이용해 사람이 북적이는 쇼핑몰이나 버스정류장 같은 느낌을 표현했다. 그 공간은 같이 있으면서도 같이 있지 않은 느낌을 준다.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춤꾼들은 노래하고 웃지만 내면은 쓸쓸하고 우울하다.”
안무가 에릭 롱게(55)가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표현한 신작 <아이 워스 어드마이어링 허 스루 어 시리즈 오브 프리시즌 컷 미러스>(I was admiring her through a series of precision cut mirrors)를 설명한 말이다. 엘디피(LDP)무용단 정기공연에서 작품을 맡은 롱게는 세계적인 혁신무용단 ‘디브이8(DV8) 피지컬 시어터’의 춤꾼 출신이다. 29일 그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만났다.
뉴질랜드 시인 빌 넬슨의 동명 시 제목에서 영감을 얻었다. 춤꾼들이 노래하거나 대사를 읊고 욕을 하는 등 연극적인 요소를 더했다. 피아노 연주곡과 케이팝을 배경음악에 깔아 우울하지만 코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롱게는 이 작품에서 춤꾼들의 캐릭터, 움직임, 표정 등에 좀더 강조점을 뒀다.
“각각 사람들이 가지는 욕망을 서로 다르게 표현했다. 그래서 세 명의 춤꾼이 서로 다른 춤을 출 수 있다. 그런데 대체 누구를 쳐다봐야 할까? 그냥 한 명만 쳐다 봐도 된다. 공연 뒤에 함께 관람한 사람들과 ‘난 누구를 봤는데, 넌 누구를 봤느냐’라며 대화를 나누면 전체 그림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상자 모양의 무대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샘하는 사람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엘디피무용단 제공
롱게는 그래서 춤꾼들 간의 밸런스를 중요시한다. 한 춤꾼이 너무 튀면, 다른 춤꾼들의 개성적인 표현이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춤꾼들 사이의 세심한 균형잡기 속에서 춤꾼 개개인의 세세한 욕망의 무늬가 비로소 객석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실베스타 스탤론을 닮았다고 하자 “실제 인도네시아에서 나를 ‘그분’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며 활짝 웃었다. 요즘 엘디피 무용수들한테 배워 카카오톡을 쓴다. 주로 전화만 했는데 이제 메시지도 슬슬 배우고 있다. 엘디피 무용단에 대한 그의 평가가 궁금했다.
“춤꾼들로서 매우 영리하고 훌륭했다. 하지만 작품을 얘기하면 대답을 잘 안한다. (웃음) 유럽에서 한국 무용수를 선호하는 걸 보면 엘디피뿐 아니라 한국 무용수들은 매력적이다. 엘디피 춤꾼들이 제안해 노래방 장면을 3개나 넣게 됐다. 한 사람이 진지하게 부르는 대목, 한 명이 ‘한 곡 더 하자’는데 다른 이들은 원하지 않는 대목,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대목이다.”
롱게의 안무작업 방식은 ‘가장 간단하게’이다. “프랑스에선 안무를 너무 머리로만 한다. 작품을 이해하려면 책을 엄청나게 읽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관객 가슴에 닿게하려고 ‘가장 단순하게, 가장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김동규 엘디피무용단 대표는 “롱게는 무용인들에게 선망의 단체인 ‘디브이8’ 댄서 출신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협업하는 안무 아이디어와 작업 등이 뛰어나 해외안무자로 선정했다”고 위촉배경을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번 정기공연에 2년만에 신작 <룩 룩>(Look Look)을 준비하고 있다. 엘디피무용단 17회 정기공연은 31일~4월2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