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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통조림 예술 냅다 걷어찬 ‘르네상스맨’ 박용구

등록 2017-04-06 17:37수정 2017-04-06 21:49

1주기 맞아 문화예술계 추모행사
일제·독재정권에 저항 고행
음악·무용평론 넘어 극작·연출까지
후학에겐 예술적 영감 젖줄
“선생은 현실 안주 않는 탈출가”
6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예술평론가 박용구 1주기 추모행사, 박용구를 기억하는 어깨동무 모둠 잔치’에서 홍신자 현대무용가가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6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예술평론가 박용구 1주기 추모행사, 박용구를 기억하는 어깨동무 모둠 잔치’에서 홍신자 현대무용가가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저희 (유니버설)발레단이 3년간 <심청> 월드투어를 마치고 2013년 5월 국립극장에서 공연할 때 99살의 선생님께서 직접 관람하셨습니다. 공연 뒤 저희에게 ‘나이도 있고 하니 더 늦기 전에 꼭 구경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여러분의 기량이 오래전에 봤을 때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모두가 프리마 발레리나, 프리모 발레리노를 해도 괜찮을 정도로 좋아져서 아주 놀랐고 감개무량했다’고 말씀하셨어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6일 서거 1주기를 맞은 ‘한국 문화예술의 르네상스맨’ 박용구(1914~2016) 평론가를 이렇게 회고했다. 박 평론가는 명작으로 남은 창작발레 <심청>의 대본을 썼다. 한국춤비평가협회는 이날 ‘박용구를 기억하는 어깨동무 모둠 잔치’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 다목적홀에서 열었다. 육완순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 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이종덕 전 충무아트홀 사장, 손진책 연출, 박정자 배우 등 문화계 주요 인사가 총출동해 고인의 예술혼을 기렸다.

박 평론가는 20세기 초 음악·무용평론가, 극작가, 연출가로 활동하며 이 땅에 문화예술의 씨를 뿌리고 꽃을 피웠다. 그에겐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해방된 조국에서 최초로 중등 음악 교과서를 집필하고 1948년 최초의 음악평론집 <음악과 현실>을 발표하는가 하면, 1950년대엔 일본 최초의 창작발레 <니치링> 대본을 집필했다. 1966년엔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제작했다. 최승희의 스승 이시이 바쿠(1892~1962)로부터 춤을 배우고 한때 배우를 꿈꾸기도 했다.

건축가 김수근과 함께 1966년 건축 잡지 <공간>(현재 스페이스)의 창간을 이끌었다. 전위적인 공연의 본거지인 소극장 ‘공간 사랑’ 운영에도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까지 참여했다. 2000년대까지 꾸준히 무용·음악 평론을 발표했고, 88서울올림픽 개·폐막식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했다.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심포카 바리>, 국립발레단 <판타지 발레 바리> 등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그의 일생은 저항정신과 끊임없는 창작정신으로 요약된다.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던 평양고보 시절, 교실을 뛰쳐나가 “식민지 교육을 강요하지 말라”며 시위를 주도해 일본경찰에 구속되고 퇴학당했다. 이승만 정권에선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4·19 뒤 귀국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엔 간첩 누명으로 구금돼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평론은 동시대 예술가와 후학들에게 예술적 영감의 젖줄이었다.

“나는 중학 시절에 박용구씨의 평론집 <음악과 현실>에서 ‘박수고’(拍手考)라는 글을 읽고 청중의 박수조차 통조림 음악 속에 기록화 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꼈었다. 김순남(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알게 된 것도 이 평론집의 영향이 크다. 그래서 이 평론집의 복간은 반갑다.” 세계적인 전위예술가 백남준(1932~2006)이 1997년 그의 평론집 복간을 축하하며 쓴 글이다.

‘모둠 잔치’ 행사장에는 고인의 육필 원고, 저서와 사진이 전시됐고, 생전의 영상도 상영됐다. 평론가 후학들의 회고도 이어졌다. “박 선생은 조금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탈출가였다. 첫 평론집에서부터 당시 거장들을 혹독하게 비판했다.”(이상만 평론가) “평창동에서 선생과 같이 살면서 한국의 유일한 지성인으로 모셨다. 선생은 발레 대본 등 창작은 물론, 21세기를 준비하는 모임 ‘영고21’을 꾸리는 등 돌아가실 때까지 늘 새로움을 추구하셨다.”(이상일 평론가) “선생은 타협을 거부하는 반항아였음에도 ‘어깨동무라야 한다’며 사회의 갈등을 풀 통합을 얘기하셨다. 평생 화합을 얘기하던 분이 아니어서 그 뜻을 더 귀중하게 새겨야 한다.”(이순열 평론가)

이어 전위예술가 홍신자가 붉은색, 분홍색 장미꽃잎을 흩뿌리며 사뿐사뿐 단상으로 올랐다. 10분 가까운 춤 공연에서 홍신자는 하늘을 보듬어 박 평론가의 뜻을 떠받쳤다. 배우 박정자는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는 그의 책 한 대목을 낭독했고, 국악인 박윤초는 추모공연을 펼쳤다. 발레 <심청> 공연 영상 상영에 문훈숙 단장의 설명도 이어졌다. ‘박용구 1주기 추모행사 운영위원회’는 이달 30일 박용구의 새로운 예술평론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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