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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음울한 무대 휘감은 단조풍 선율

등록 2017-04-21 17:29수정 2017-04-24 00:01

[리뷰] ‘보리스 고두노프’
지름2.2m 종 14개, 지름2m 향로
갑자기 바닥 솟는 등 압도적 무대
신상근 고음, 이준석 저음 인상적
국립오페라단이 국내에선 첫 제작
지름 2m의 대형 향로가 연기를 뿜는 압도적 무대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국립오페라단 제공
지름 2m의 대형 향로가 연기를 뿜는 압도적 무대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국립오페라단 제공
막이 오르자 먼저 무대에 압도당한다. 황금색 키릴 문자를 돋을새김한 음울한 러시아 세트, 흰색 라틴문자가 벽면에 촘촘히 박힌 폴란드 세트, 난타하는 종소리를 시각화한 지름 2.2m의 종 14개, 진자처럼 무대 앞뒤를 3~4m 오가는 지름 2m의 향로, 12개의 로마숫자가 선명한 지름 14m의 시계 모양 회전무대, 바닥이 솟아오르며 갑자기 만들어진 2층 무대, 객석 뒤쪽까지 쳐들어와 코끝을 자극한 매캐한 연기….

국립오페라단이 만든 무소륵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20~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다. 1989년 러시아 볼쇼이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했지만, 국내 단체가 제작한 건 처음이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러시아의 역사와, 차르 지배를 받던 민중의 구슬픈 정서가 응집된 작품이다. 16세기 말~17세기 초 실존인물 고두노프는 황권 찬탈의 야심을 품고 황태자를 살해한 뒤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맞았다. 푸시킨의 동명 희곡이 원작으로, 무소륵스키는 화려한 기교의 아리아 대신 장엄하고 숙연한 합창과 중창을 배치했다.

압도적인 분위기의 음울하고 장중한 무대 위로는 러시아 정서가 물씬 풍기는 단조풍의 베이스, 테너, 메조소프라노와 함께 비장한 합창이 흘렀다. 결론적으로, 이탈리아 출신의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는 무대, 의상, 조명, 안무까지 겸하며 국내 팬에게 생소한 이 작품을 ‘깔끔하고 인상적으로’ 인사시켰다.

지름 2.2m의 종 14개 아래 황관을 든 고두노프. 국립오페라단 제공
지름 2.2m의 종 14개 아래 황관을 든 고두노프. 국립오페라단 제공
오케스트라 도입부에선 연방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귀족들이 성당으로 진입하는 ‘대관의 합창’이 울리지만, 고두노프는 ‘내 영혼은 슬프도다’를 부르며 비극적 운명을 예고한다. 극의 마지막 4막에서도 장례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서 비극적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2막에선 고두노프가 죄책감에 시달리며 드라마틱하게 ‘나는 권력을 쥐었다’를 부른다. 4막에서 12개의 검은 깃발과 함께 민중들은 바리케이드에 맞서 싸우고, 고두노프가 자살한다. 광장에서 권력의 죽음을 목도한 2017년 한국에서, 이 오페라는 민중의 오페라로도 보였다.

고두노프 역을 맡는 베이스 미하일 카자코프는 4막 매드신(광란 장면)에서 고음이랑 맞물려 마치 테너처럼 높은 음역대를 소화했고, 회상이나 슬픔의 순간에는 아주 낮은 저음을 냈다. 다양한 음색을 바탕으로 텍스트에 따라 음색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저력이 엿보였다. 그가 연기에 몰입하는 장면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고두노프의 정적으로 등장하는 그리고리 역의 테너 신상근은 호소력 짙은 고음과 아름다운 음색을 자랑했다. 3막에서 마리나(메조소프라노 알리사 콜로소바)와의 이중창은 특히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피멘 역의 이준석도 빼놓을 수 없다. 진실을 기록하는 수도승인 그는 시종 진정성 있는 묵직함과 호소력 짙은 비장미로 주목받았다. 극의 중심을 잡는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 22일 유명을 달리한 손준현 기자의 마지막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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