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벼 파듯 한 땀 한 땀 그린 그림들.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해 간다. 서촌옥상도 3, 2014년, 펜, 29.4×84㎝
이제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네 성질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뭐 1000일쯤 실컷 그려봐”
4년 전 ‘서울 드로잉’이라는 그림 수업에 스케치북 들고 따라나섰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선으로, 뭘 그려낼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던 그 그림 수업은, 토요일마다 서울의 여러 동네를 직접 찾아가 수채물감으로 동네 풍경을 그리는 식으로 진행됐다. 첫 수업 날. 철거되기 직전의 아현동 산동네에 들어갔다. 허물어진 벽,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막아놓은 어설픈 대문 등을 펜으로 그리는데, 재미났다. 처음엔 밑그림을 간단하게 스케치한 후, 수채화 작업을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펜으로 점을 꽁꽁 찍어가며 한 뭉텅이씩 떨어져 나간 시멘트벽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일도, 땅바닥에 뒹구는 돌멩이 그리는 일도, 너무 재미났다.
다음 수업 시간에는 비가 와서 카페에서 그렸다. 한옥을 변형해 만든 카페 천장과 창밖으로 보이는 옆집 기와지붕까지, 내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펜으로 샅샅이 그려냈다. 그다음 그림도, 또 그다음 그림도, 나는 후벼 파듯 세밀하게 그리는 재미에 푹푹 빠져들어갔다.
서촌옥상도 6, 2014년, 펜, 29.4×84㎝
솔직히 나도 깜짝 놀랐다. 내가 100시간씩 앉아 펜으로 이런 그림을 그려낼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다음엔 전혀 다른 톤으로, 전혀 다른 선으로 그려봐야지!’ 하고 마음먹어도, 또다시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100장 정도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나서야 나는 중얼거렸다. ‘아! 내 속에 이런 선이 그렇게 힘들게 엉켜 있었던 거구나!’,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구나!’
전시회에 와서 내 그림을 본 옛 친구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가 이렇게 섬세한 사람이었니? 잘 몰랐네. 깜짝 놀랐네.”, “그동안 저런 걸 어떻게 숨기고 살았니? 아이구 욕봤다 힘들었겠다~.”
내가 쏟아낸 선들이 놀랍고, 창피했다. 뭐랄까? 그동안 감추어왔던, 거부해왔던, 아니 나 자신도 잘 몰랐던, 내 속의 ‘까탈스러움’을 들켜버린 기분이랄까? 평소에 주위 사람에 대한 느낌을 천에 견주어 생각하고 가늠해보곤 한다. 늘 주위 사람을 잘 배려하는 사람에게서는 곱게 짠 부드러운 면의 느낌이 난다. 시원시원해서 좋지만 너무 무심한 사람에게서는 삼베의 질감이 느껴진다. 깊이 있고 융통성 있는 사람은 꼭 질 좋은 울 같다. 섬세하고 민감한 사람은 살짝 손끝만 잘못 스쳐도 보푸라기가 올라올 듯싶은, 까칠한 비단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는 스스로를 ‘부드러운 면’처럼, 무난한 사람이려니~ 하며 살았다. 그런데 내가 그려내는 그림을 보면서, 뒤늦게 나는 또 다른 나를 알아차리고 있다. 비단같이 까칠한 사람. ‘털털함’ 속에 오랫동안 꽁꽁 숨기고 살아왔던 내 ‘까칠함’에 대한 재발견이다.
내 속의 ‘촌스러움’도 들켜버렸다. 언젠가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여느 현대 미술의 대가들처럼, 나는 아주 세련되고,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선을 뽑아낼 줄 알았다. 선뿐 아니라 파스텔톤의 세련된 색상을 세련되게 매치해낼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그런데 내가 쏟아내는 그림은 ‘촌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리는 대상도, 구도도, 한마디로 촌스럽다. 그래서인지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자꾸 ‘정겹고, 따뜻하다’고 말한다. 나는 속으로 ‘아~ 나는 세련되고, 이기적인 ‘차도녀’(차가운 도시여자)인데, 왜 자꾸 정겹고, 따뜻하다는 거지? 촌스럽게?’ 하고 되묻는다. 세련된 도시여자처럼 보이고 싶어, 꾹꾹 눌러뒀던, 내 속 ‘촌스러움’과 ‘따뜻함과 정겨움’이 그림으로 삐져나오는 게 분명하다.
서촌옥상도 8, 2014년, 펜, 29.4×84㎝
힘차게 쭉쭉 긋지 못하고 덜덜덜 떨리며 그어대는 내 선도, 겉으로는 여장부처럼 시원시원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늘 자신 없어 덜덜덜 떨고 있는 내 속 모습 같다.
이제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네 성질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뭐 1000일쯤 실컷 그려봐. 그럼 네 성질이 뭔지 조금은 알게 될 거야.” ‘승질’의 재발견!
전시장에서 내 그림을 한참 동안 찬찬히 구경하고 나오던 한 친구가 일갈했다.
“미경아, 이렇게 후벼 파고 있는 걸 보니, 너 승질 쫌 많이 더·러·운 애였구나. 이제 알았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