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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세상의 변방에서 ○○을 외치다

등록 2017-06-28 19:16수정 2017-06-28 21:02

2017 서울변방연극제
다양한 장르·국적 창작자들
변방의 상상력 거리와 무대 위에 펼쳐
극단 병소사이어티의 <노동집약적 유희 2017>.
극단 병소사이어티의 <노동집약적 유희 2017>.
폭염이 쏟아졌던 26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 네거리. 점멸하는 신호등이 재촉이나 하듯, 시민들은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가운데 사진을 든 한 남자가 멈춰 섰다. 부산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이다. 사진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금남로 모습과 세월호 선체, 그리고 부산형제복지원 외관이었다. 그는 세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기억’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정작 기억해야 할 것들은 잊고,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기억하려 하는 것 같아요. 5·18과 세월호, 형제복지원은 국가폭력에 의해 인권유린이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국가폭력은 이외에도 많지만, 저는 이 세 사건을 준비했습니다. 세 사건을 통해 ‘기억한다’라는 의미와 현시대의 사회상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억을 위해선 국가폭력이 자행된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먹구름이 드리워 폭우가 쏟아지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1인 시위가 아니었다. 월요일 개막한 서울변방연극제 개막전 ‘25시-극장전’의 한 장면이었다. 올해 서울변방연극제는 시민과 예술가가 참여해 24시간 릴레이 1인 퍼포먼스를 벌이는 개막전으로 시작되었다. 한종선은 그 24인 중 1인으로 참여했다. “제안을 받았을 때는 고사했어요. 예술가가 아니니까. 하지만 시민 참여라는 취지에 공감했고, 투쟁도 예전의 방식이 아니라 문화적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실제 그는 글과 그림으로 형제복지원 사태를 이미 선보인 바 있다. 그에게 참여를 제의했던 건 서울변방연극제의 이경성 예술감독이다. 비 갠 화요일 아침,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경성과 마주쳤다. 개막전이 시작한 지 21시간이 지날 즈음이었고, 밤새 현장을 지킨 그는 다소 수척해 보였다.

서울변방연극제 개막전에 나선 부산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
서울변방연극제 개막전에 나선 부산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
“이번 주제인 ‘25시-극장전’은 ‘극장은 무엇이며 어디가 극장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극장은 고정된 건축물이 아닙니다. 저는 시대와 상황, 맥락에 따라 당대 현실과 파열음을 낼 수 있는 언어와 형식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극장이 발생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개막전은 그것을 극명하게 드러낸 무대였다. 당대 현실에 대한 고민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했던 한 명 한 명이 하나하나의 극장이었으며, 그렇게 24개의 극장이 생겼다 사라졌다.

올해로 18회를 맞이한 서울변방연극제는 자발적으로 변방이라는 위치를 선정하여, 중심에서는 가지기 힘든 시선과 가치를 표출하는 대안적 공연축제다. 2015년 3대 예술감독으로 선임되어 올해 처음 축제를 여는 이경성은 연극제의 기치를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흑인 여성과 백인 여성, 백인 남성이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자기소개를 한다고 해요. ‘전 흑인 여성입니다’, ‘저는 여성입니다’, ‘저는 사람입니다’. 중심에 있을수록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주변부를 의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인데, 저는 예술가란 스스로를 끊임없이 밖으로 내몰아 타자화시켜 그것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표현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축제에서는 이러한 기치를 선명하게 드러낸 작품 9편이 공연된다. 그중 병소사이어티의 <노동집약적 유희 2017>과 큐(Q)의 <케미코후모와>, 창작집단 푸른수염의 <이방인의 만찬>이 눈에 띈다.

<노동집약적 유희>는 ‘부루마블’을 확대한 듯한 무대부터 호기심을 부른다. 공연은 부루마블의 게임 룰에 따라 관객 참여로 이루어진다. 플레이어는 게임머니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월급 135만2230원을 지급받고 게임을 시작한다. 전진할 때마다 교통비를 지불해야 하고, 멈출 때마다 해당 칸에서 요구하는 노동(안무)을 해야 한다.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파는 대한민국 변방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부루마블에 빗대어 유쾌하게 표현한 것이다.

일본 극단 큐(Q)의 <케이코후모와>.
일본 극단 큐(Q)의 <케이코후모와>.
일본 극단 큐의 <케미코후모와>는 무기력에 빠진 일본의 현실을 여성이라는 변방의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이다. 진짜 가죽구두를 찾아 밤마다 거리를 헤매던 여성이 마침내 그걸 찾아 춤을 추게 된다는 우화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제목부터 변방을 연상시키는 <이방인의 시선>은 서울에 위치한 티베트, 베트남, 중국, 인도 식당의 종업원들과 인터뷰를 통해 완성된 작품이다. 무대 위 배우들은 자신이 리서치한 그들의 전통문화를 소개하면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2017년 한국을 이야기한다.

그 밖에도 연극과 무용 등 다양한 장르, 다양한 국적의 창작자들이 모여 서울시내 7개 공간에서 변방성을 담보한 실험적 공연을 펼친다. 주제의 ‘25시’는 7월8일 광화문에서 열 폐막전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 자리에는 개막전에 참여했던 24명이 다시 모여 1시간 동안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다. 도합 25시간인 셈이다.

이경성 예술감독은 현재의 축제 운영방식에 회의 중이라고 한다. “물리적 제반 구조가 미약한 상황에서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참여자와 운영자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구조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창작자들의 상상력이 고갈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을 고안해보려고요.” 어쩌면 올해가 보름 안팎으로 진행되는 기존 형식의 서울변방연극제를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 사진 서울변방연극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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