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리허설 장면. 김일송 제공
시작은 단순했다. 연극 <창조경제_공공극장편>은 ‘나의 창조 활동이 나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출발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차용한 방식은 서바이벌 리얼리티쇼. 대략의 설계는 이렇다. 경연에 참여한 극단들은 13분 내외의 짧은 공연을 펼친다. 관객은 이들의 공연을 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공연에 자신의 표를 던진다. 그렇게 최종 선정된 1개 극단은 제작비로 지원되는 1800만원을 거머쥔다. 우승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모인 극단은 불의전차(연출 변영진)와 신야(연출 신아리), 잣프로젝트(연출 이재민), 907(연출 설유진) 등 4개 극단, 총 40명이다. 모두 창단 3년 안팎의 젊은 극단이다.
이번 공연에 최다출연자를 무대에 세우는 극단 불의전차는 15명의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한다. 15명의 군무는 휘황하다. 그러나 압권은 다른 데에 있다. 그들은 “여기 남산에서만큼은 꼭 전투기를 만들어야겠습니다”라는 다짐을 무대 위에서 실현한다. 두 번째 참가팀은 평소 연극으로 생존하기를 실험하는 극단 신야다. 실제로 그들은 지난 6월 강원도 양양 설악해수욕장에서 ‘연극으로 바다에서 한 달 동안 살아남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때의 생존기를 무대화한 게 이번 공연 <변태들의 행진>이다. 잣프로젝트의 <골목을 돌아서>는 그야말로 ‘창조경제’에 대한 직접적 질문이다. ‘왜 연극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가’, ‘연극으로 돈을 벌면 안 되는가’ 등 37개의 질문이 스크린 위로 던져지고, 배우들이 몸으로 답한다. 그 움직임이 골목을 도는 형상이다. 극단 907의 <운동장에서>는 조촐한 2인극이다. 극에 등장하는 ‘사과’는 이번 공연에 대해 그들이 던지는 상징처럼 보인다. 씨앗이 나무로 자라기까지 10년이 걸릴 텐데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이라며, 13분은 불충분한 시간이라 항변하는 듯하다. 그리고 경연 전후, 막간에 경연에는 참여하지 않는 극단 앤드씨어터가 등장하여 이 공연이 기획된 과정부터 제작되는 과정에서의 난항, 마지막 소회 등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각각은 1800만원을 차지하고자 저마다의 필살기를 선보인다. 여기까지 보면 장르만 연극으로 바뀌었을 뿐, 일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와 흡사하다. 그러나 연극은 거기에 머무르길 거부하며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예술에 미학적 우위가 있는가? 과연 순위를 매기는 건 가능한 일인가? 객관적 기준을 세울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공연이 진행되면서 질문의 층위가 확대된다. 부제처럼 딸린 ‘공공극장편’에서 알 수 있듯, 공연은 공공극장의 공공성을 질문한다. 그리고 공공성의 질문은 공연의 근본 취지인 경쟁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무엇을 위해 경쟁하는가? 승자독식이 아닌 공평한 분배는 불가능한 것인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등 배분은? 1인 1표 투표제는 공정성을 담보하는가? 이어지는 질문들은 예술가의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관객 각자의 삶 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이들 질문에 대한 참가자 각자의 생각이 경연 후 이어지는 영상에서 드러난다. 영상은 서로 생각이 다른 그들이 의견 충돌로 갈등하는 모습을 압축해 보여준다. 그들과 함께 관객도 회의하게 된다. 그들은 과연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원칙을 찾게 될까? <창조경제_공공극장편>이 보여주고자 하는 건, 어쩌면 바로 거기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절차적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한 지난한 합의의 과정. 결국은 민주주의에 대해.
그들은 경쟁을 통한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라는 대전제를 해치지 않는다. 관객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극단에게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동시에 공연은 경쟁에 동의하지 않는 관객들을 위한 문도 열어놓는다. 관객 역시 주권자로서 참여할 수 있고, 그들은 적극적 주권자가 되길 희망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작은 실험 <창조경제_공공극장편>은 16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