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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높이 1km넘는 초고층 빌딩을 남몰래 꿈꿨던 건축거장

등록 2017-07-27 11:42수정 2017-07-27 21:17

프랭크로이드라이트 탄생 150돌
뉴욕 모마 특별한 아카이브 회고전
자연과 소통한 유기적 건축 실현했지만
초고층 마천루에 골몰했던 이면 공개돼
모마에 차려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회고전 전시장. 가운데 그의 생전 얼굴 영상이 보이고 양옆으로 ‘1마일 더높이’를 모토로 구상했던 초고층 마천루의 구상 도면이 내걸렸다.
모마에 차려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회고전 전시장. 가운데 그의 생전 얼굴 영상이 보이고 양옆으로 ‘1마일 더높이’를 모토로 구상했던 초고층 마천루의 구상 도면이 내걸렸다.
‘150살 먹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아카이브를 풀어헤쳤다!’

이 문구는 세계 현대미술 명가인 미국 뉴욕 도심의 모마(근대미술관)가 올여름 내놓은 회고전 제목이다. 제목에서 짐작되는대로, 6월부터 모마 3층 전시실에서 진행중인 이 전시(10월1일까지)의 주역은 올해 탄생 150돌을 맞는 건축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다. 그는 두말할 필요 없는 20세기 세계건축사의 최고 거장이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나선형 건물과, 웅장한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전원 저택 ‘낙수장’의 설계자로 유명하다. 모마가 오랜만에 선보인 건축거장 기획전인데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로서 지금도 그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현지인들의 애정어린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초 필자가 뉴욕 모마를 방문한 날은 일요일 오후였다. 전시장 입구부터 프랭크의 건축도면을 그려보는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도면과 드로잉들이 내걸린 거장의 전시실에는 건축전문가들과 더불어 일반인들도 많이 찾아와 꼼꼼히 작품들을 보고 있었다. 거장의 생전 건축에 얽힌 450개의 사진, 건축도면, 모형, 드로잉, 실제 건축부재 등 그동안 거의 공개되지 않거나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던 아카이브 자료들이 전문가가 보기에도 수준이 높고 섬세한 구성으로 짜여져 나왔다.

프랭크로이드라이트가 생전 구상했던 1마일(1.6km) 넘는 초고층 빌딩의 가상도. 유기적 건축을 추구했던 그의 건축세계와는 상반된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프랭크로이드라이트가 생전 구상했던 1마일(1.6km) 넘는 초고층 빌딩의 가상도. 유기적 건축을 추구했던 그의 건축세계와는 상반된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번 전시는 그의 사적인 작업기록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카이브의 많은 분량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빚어낸 독특한 건축적 형식과 구조를 창안했던 프랭크는 명성과 달리 개인 가정사는 복잡했다. 부모의 결별 뒤 어머니에 대한 편애 속에 성장했고, 외도했다가 이혼하고, 재혼했다가 사별하고, 불행한 사고로 자식을 잃는 등 곡절이 많았다. 비평가들은 그의 파란 많은 사생활을, 지적인 욕망에 걸맞은 여성과의 사랑을 갈구하는 몸부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시장 아카이브들은 복잡다단한 개인사를 좇지 않는다. 그보다는 설계 중인 도면이 불타는 일을 겪고도 다시 처음부터 의연하게 작업을 시도한 집요한 건축적 작업과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

전시 제목처럼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서의 면모와 그의 70년 동안의 작업 자료들인 총 5만5000장의 도면, 30여만장의 편지, 12만5000장의 사진, 2700 장의 원고·필름들, 건축모형들 가운데 고른 자료들을 12개 주제에 맞추어 간추렸다. 그의 평생 건축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는 형태적으로 통일성을 이루는 ‘유기적인 건축’(Organic Architecture)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모마의 전시는 건축을 시작했던 곳인 시카고부터 나중에 자신만의 건축 커뮤니티를 만들었던 애리조나주의 탈리에신까지, 미국의 대평원에서 땅과의 형태적 교감을 추구했던 그의 면모를 촘촘한 자료들을 통해 살펴보게 한다. 프랭크의 작업세계는 건축물이 주변의 자연이 어울려 기하학적으로 연결되는 유기적인 모습을 지향했다. 하지만 전시장의 드로잉을 비롯한 공개자료들은 거장의 알려진 작업 성향뿐 아니라, 오히려 그와 상반되는 면모들도 비춰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독일에서 온 당대 모더니즘 건축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미국에 성공적으로 다수의 고층 마천루들을 짓는 것을 지켜봤던 그가 마천루 작업에 대한 구상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마천루 구상 중 실현된 건물은 없다. 1956년에는 설계의뢰인도 없이, 스스로 1마일(1.6km) 높이의 마천루를 계획하기도 했음을 생소한 드로잉 자료들은 보여준다. 현재 두바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부르즈할리파)도 이 높이의 반절밖에 안되는데, 그가 이런 구상을 거듭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 계획안은 건축의 역사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 텔레비전에 출현하며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기에 그 명성을 거의 90살이 되어가는 시점에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생전 구상했던 위스콘신주 모노나 테라스 프로젝트의 가상도. 전시장에 나온 주요 아카이브 중 하나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생전 구상했던 위스콘신주 모노나 테라스 프로젝트의 가상도. 전시장에 나온 주요 아카이브 중 하나다.
세상이 기억해주는 프랭크 말고도 프랭크가 남기고 싶은 자신에 대한 마지막 확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실현한 건물들과 실현하지 못한 건물들에 대한 그의 집요한 탐색과 훈련의 자취들을 전해주고 있다. 현대건축의 새 장을 연 대가가 스스로의 열망을 구현하기 위해 거쳤던 속깊은 과정들을 후대의 시민들이 충분히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이 회고전의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있을 듯하다.

송하엽 중앙대 건축과 교수, 사진 뉴욕모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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