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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궁체, 꿋꿋하면서도 유장한 우리 글씨

등록 2018-03-11 14:13수정 2018-03-11 20:29

-‘궁체활자―김충현과 최정호’전-
조선 근·현대 궁체 문서들 한자리에
현대궁체 기틀 만든 서예가 김충현
궁체폰트꼴 개발 디자이너 최정호
세조 한글 권선문·선조 편지 등 눈길
전시장 안쪽에 나란히 마주보고 들어선 김충현과 최정호의 글씨 작품 패널판. 왼쪽이 김충현의 한글궁체이고, 오른쪽이 그의 궁체를 바탕으로 만든 최정호의 디자인폰트 활자체다. 사이를 지나가며 비교감상 할 수 있다.
전시장 안쪽에 나란히 마주보고 들어선 김충현과 최정호의 글씨 작품 패널판. 왼쪽이 김충현의 한글궁체이고, 오른쪽이 그의 궁체를 바탕으로 만든 최정호의 디자인폰트 활자체다. 사이를 지나가며 비교감상 할 수 있다.
마음이 환해지게 하는, 이 매무새 야무진 글자는 무엇인가.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글씨체라는 궁체. 그 글씨를 읽지 않고 가만가만 뜯어본다. 300년 전 손으로 옮겨 쓴 한글 소설과 유훈집, 제사상 차림 물목에 빼곡하게 적힌 궁체들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ㄱ, ㄴ, ㅏ, ㅓ 등의 한글 자음 모음 자체가 억세게 부딪히지 않는다. 정겹게 사이 두고 어울리며 단정하게 획을 긋고, 삐침 하며 유려한 곡선을 그려낸다.

서울 관훈동 백악미술관 1층에서는 조선 중후기 궁중 상궁들이 기틀을 닦았다는 전통 궁체와 근현대 궁체자의 모습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판이 펼쳐져 있다. 이달 초부터 열리고 있는 ‘궁체활자―김충현과 최정호’전이다. 일제강점 말기인 1942년 전통 궁중궁체를 연구해 <우리 글씨 쓰는 법>을 저술하며 평생 한글 서예의 보급에 힘썼던 서예 대가 일중 김충현(1921~2006)과 오늘날 한글 고딕, 명조체의 원형과 궁체폰트를 개발한 글꼴 디자이너 최정호(1916~1988)의 작품들을 나란히 선보이면서 우리 궁체의 근현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자리다.

길은 각기 달랐지만, 두 대가는 궁체를 통해 우리 문화사에 굵은 흔적을 남겨놓았다. 70년대 최정호는 한글 고유 글꼴을 갈망하면서 김충현의 궁체를 바탕으로 활자체를 디자인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디지털 매체 등에서 친숙하게 보는 궁체폰트꼴이다. 전시는 이런 인연을 부각하기 위해 중후반부에 두 대가의 글씨꼴을 크게 키운 활자 패널로 비교했다. 세로축에 맞게 쓰인 일중의 장대한 궁체와 활자체 특유의 사각꼴에 맞춰 자간을 좁히며 밀도감을 높인 최정호 궁체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궁체활자―김충현과 최정호’전이 열리고 있는 백악미술관 전시장.
‘궁체활자―김충현과 최정호’전이 열리고 있는 백악미술관 전시장.
사실 궁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더욱 솔깃한 감상거리는 도입부 1장 ‘궁체의 형성’이다. 1464년 오대산 중창 당시 세조가 쓴 한글 권선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필사본으로 직송처럼 획이 죽죽 내려뻗은 궁체의 원형을 보여준다. 제왕의 인간적인 풍모가 올올이 드러나는 선조와 숙종의 어필 한글 편지, 똑 부러진 한글활자체의 전형을 보여주는 <오륜행실도>(1797년 편찬)가 뒤를 잇는다. 영정조대 궁체로 필사된 소설 <옥원중회연>, 1835년 순조가 딸 복온공주가 숨진 뒤 사위에게 내려보낸 제사물목집 <제물정례책> 등을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궁체의 꿋꿋하면서도 유장한 변천사가 눈에 잡힐 듯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통 고문서 상당수는 복제 이미지를 썼고, 근현대 이후 궁체의 변천 양상에 대한 세부자료들은 빠져 있어서 밑그림이 충실하지 않게 비치는 게 아쉬운 점이다. 14일까지. (02)734-4205.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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