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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세계적 산악인 키운 뜨락

등록 2006-04-05 23:06수정 2006-04-06 10:30

김우선 시인
김우선 시인
[산따라사람따라] 도봉산 망월사길
도봉동에서 시계를 벗어나 의정부로 들어서는 지역은 길 양쪽으로 수락산과 도봉산 자락이 마주하고 있는 특이한 지형을 이룬다. 수유리에 오래 살면서 산을 사랑하는 정공채 시인 같은 이는 그의 작품에서 이곳을 ‘산협’이라고 즐겨 표현한다. 불암산부터 시작해서 수락산 거쳐 도봉산과 북한산까지 일명 ‘불수도북’을 하루만에 종주하는 산악인들에게 이 ‘산협’은 수락과 도봉을 잇는 가장 짧은 통로인 셈이다. 그 ‘산협’의 ‘혈’에 해당하는 지점에 망월사역이 있고, 역에서 나와 바로 오른쪽에는 의정부시에서 세운 ‘엄홍길 기념관’이 있다.

한국 산악인으로서 히말라야 8천미터급 봉우리 14개를 모두 올랐으며, 2006년 4월 현재 로체샤르를 등반 중인 엄홍길.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서 세계 여덟 번째의 8천미터급 14봉 완등자인 그는 이번 로체샤르 등정에 성공하면 2004년 5월에 오른 얄룽캉에 이어서 모두 열 여섯 개의 히말라야 8천미터급 봉우리 정상을 밟은 인류 최초의 산악인이라는 대기록을 이룩하게 된다. 이는 후배 산악인 박영석이 3극지점(남극, 북극, 에베레스트), 7대륙 최고봉, 히말라야 8천미터급 14봉을 완등함으로써 세운 ‘산악그랜드 슬램’과 함께 대한민국 산악계가 보유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기록이기도 하다.

2004년 10월 어느 날 원도봉 망월사길을 엄홍길과 함께 폴란드의 크리스토프 비엘리츠키,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마르티니가 함께 오르고 있었다. 각각 히말라야 8천미터급 다섯 번째와 일곱 번째 등정자인 이들과 함께 걸으며 엄홍길은 흡사 자신의 집 뜨락을 소개하는 듯 여유롭고도 시종 미소 띈 표정으로 안내했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그가 세 살때부터 자란 곳이 바로 이 망월사 계곡. 지금은 집터만 남았으나 ‘경남집’은 선친 엄금세씨가 원도봉 유원지에 자리잡고 문을 연 가게였으며, 엄홍길 4남매를 키운 집이기도 했다. 의정부 호암초등학교 6학년때 이미 아버지를 도와 음료수 상자를 지어 올렸으니 ‘엄땅크’라 불리는 그의 체력은 이때부터 다져지기 시작한 것이다.

권투며 태권도 같은 격투기에도 자신있던 엄홍길은 고교 2학년 때 의정부에 있는 권투도장에 다니면서 권투선수로서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적도 있다. 하마터면 세계적인 산악인 하나를 잃을 뻔한 셈이었는데 운명의 여신은 정동 문화체육관 특설링에서 열린 전국 학생아마추어 복싱 신인 선수권대회에 플라이급으로 출전한 그에게 2대 1 판정패라는 ‘쓴맛’을 먼저 보여주었다. 그렇게 일찍 맛본 인생의 ‘쓴맛’은 그의 발길을 산으로 향하게 했고, 죽음을 넘나드는 히말라야 원정등반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끊임없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단풍으로 온통 수를 놓은 듯한 망월사 경내에 들어서자 취재진들은 기다렸다는 듯 앞다투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무려 1시간 가까운 취재와 ‘엄사모’ 회원들과의 기념 촬영까지 마친 그가 두 ‘귀빈’과 함께 찾은 곳은 뜻밖에도 망월사 법당. 아홉 번 절하고 나서 잠시 무릎 꿇고 앉은 세 사람의 뒷모습에는 국적이며 인종을 초월한 큰 ‘산악인’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김우선/시인, 전 <사람과 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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