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 원산지
왜구 노략질막던 성터
포구엔 횟집들 맛자랑
길이 끝난 곳에서 뱃길 시작
탐진강 하구. 강진만 갯벌 따라 흐르는 물살에 저녁 햇살이 몸을 섞는다. 반짝이고 퍼득이고 철썩여서 낯이 따갑고 눈이 부시다. 해가 기울수록 탐스러워지는 풍경을 향해 한 남자가 투망을 던진다. 그물코엔 금비늘같은 햇살들이 잔뜩 걸려 투망이 묵직하다.
강진만 동쪽 해안길 풍경이다. 탐진강은 영암 동쪽, 장흥 북쪽에서 발원해 강진만으로 흘러든다. 탐진강과 강진천이 만나 이루는 삼각주 지역, 강진만의 가장 깊숙한 곳에 강진읍이 자리잡았다. 우묵한 만 양쪽 지역이 다 강진땅인데, 읍에서 시작해 해안을 따라 뻗은 두 해변길이 모두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다. 서쪽으로 내려가면 해남·완도에 닿고, 동쪽 길은 남쪽 끝 마량포구를 거쳐 장흥 땅으로 이어진다. 관광객들은 주로 강진만 서쪽 지역으로 몰린다. 다산 정약용의 체취가 서린 다산초당과 고찰 백련사를 거치는 길이기 때문이다.
강진읍에서 마량포구로 가는 동쪽 해안길은 장흥으로 이어지는 23번 국도다. 아름다운 해안 풍경에다, 강진만 서쪽땅 못지않은 볼거리를 갖춘 드라이브 코스다. 칠량면·대구면·마량면 해안을 따라 가는, 물살·햇살이 녹아 흐르는 길이자 즐비한 역사 유적지들을 밟아나가는 여정이다. 특히 저물녘에 물길 따라 남쪽 끝 마량포로 흘러가노라면, 굽이마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개펄과 섬들이 금빛 물결 세례를 받는 모습에 자주 차를 세우게 된다.
옛 사람들은 이 물길의 빛을 건져올려 새로운 빛깔을 빚어냈다. 23번 국도변, 대구면의 사당리·수동리·용운리 일대는 1000년 전 눈부신 옥빛 그릇을 구워냈던 고려 청자의 ‘원산지’다. 전국에서 발굴된 400여기의 가마터 가운데 절반 가까운 180여기가 대구면에 몰려 있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500년간 청자를 구워낸 도요지들이다. 국내에서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청자의 80%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강진의 다른 이름은 ‘청자골’이다. 1977년부터 600년간 단절됐던 청자 제조기법을 재현하기 시작해, 10년 전부터 해마다 청자문화제를 열어오고 있다. 청자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고려청자박물관과 도예문화원 등이 있다.
마량포. 여객선터미널에선 완도군 고금도와 금일도·생일도 등을 오가는 철부선을 탈 수 있다.
청자도요지에서 남쪽으로 4㎞쯤 달리면 구곡리다. 우회전해 해안쪽으로 잠시 들어가면 남호마을(성머리)인데, 여기서 오래된 성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동북쪽을 향해, 장흥 대덕읍 지역까지 20㎞나 뻗어 있는 석성 흔적의 일부다. 만리성 또는 마류성으로 불린다. 병영면에 있는 조선시대 병마절도사영과 관련된 왜적 방어용 성곽일 것으로 추측되지만, 고려시대 축성설과 조선 초기 축성설 등 여러 설이 있다. 장흥 쪽엔 좀더 원형에 가까운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고 한다.
강진읍을 출발해 23㎞. 강인 듯 바다인 듯 차츰 넓어지는 물길을 따라 차를 달리면 상록수림 우거진 까막섬을 코앞에 둔 마량포구에 닿는다. 마량포구로 내려가기 직전 왼쪽 언덕에서 또하나의 옛 성벽을 만날 수 있다. 마도진의 ‘만호성’터다. 왜구들이 나타나 조세로 거둬들이는 곡식운반용 배(조운선)를 공격하는 등 노략질을 일삼자, 조선 초 만호(종4품)을 파견하고 마도진을 두어 수군을 주둔시켰다. 700여m의 석성이 남아 있고, 그 앞엔 선정비가 하나 서 있다. ‘마도(馬島)’란 본디 지금의 완도군에 속하는 섬 고마도를 가리켰다. 마도진을 마량 쪽으로 옮긴 뒤 섬은 ‘고(古)마도’가 됐다.
마량포엔 제철 해산물과 맛깔스런 반찬들을 내는 횟집들이 몰려 있어 남도 맛의 한자락을 만나볼 수 있다. 지금 광어·낙지·바지락 등 해산물이 고루 들어온다. 포구 앞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까막섬이 있다. 열대성 난대림 수목 120여종이 빽빽한 두 개의 섬으로, 보호를 위해 2011년까지는 드나들지 못한다.
마량포구는 찻길의 종착점이 아니다. 장흥군 대덕·회진으로 이어지는 찻길말고도, 무수히 깔린 섬들로 떠나는 뱃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여객선터미널에서 철부선을 타면 고금도·조약도·금일도·생일도 등 완도군에 속한 여러 섬들로 차를 싣고 들어갈 수 있다. 개펄로 둘러싸인 까닭에 해수욕장이 없는 강진이지만, 뱃길은 널찍한 해수욕장을 갖춘 섬들로 이어진다. 그중 넓기론 금일도의 금일해수욕장이다. 2㎞ 길이의 깨끗한 모래밭이 있다. 섬에 짝돌밭(자갈밭) 해변, 빽빽한 해안 소나무밭인 월송리 송림, 용이 승천하며 뚫렸다는 용굴 등 볼거리도 많다. 생일도에도 아담한 금곡해수욕장이 있고, 고금도를 통해 차로 건너갈 수 있는 조약도(약산면)에도 100m 길이의 자그마한 모래밭(가사해수욕장)이 있다.
강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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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토의 부드러운 유혹, 청자문화제
청자골 강진의 청자문화제는 올해로 10회째를 맞는다. 전통문화의 진수를 재현해 보임으로써 청자의 우수성을 나라 안팎에 알리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문화관광부 선정 최우수문화관광축제로 4년간 연속해서 뽑힌 축제다.
올해는 7월30일부터 8월7일까지 9일간 대구면 사당리 23번 국도변 고려청자도요지 일대에서 행사를 펼친다. 휴가철 여행객들을 위해 각종 체험행사들을 대폭 늘린 게 특징이다.
청자의 주원료인 고령토를 직접 주물러 갖가지 형태의 그릇을 빚어볼 수 있다. 물레 돌려보기, 흙을 꼬아 감아올려 만드는 코일링, 청자 파편 붙이기, 그릇에 글씨 쓰고 그림 그리기, 물레를 돌리며 직접 자기를 빚어보는 물레성형 체험 등 방문객 참여 행사가 진행된다. 체험에 참가하기 전에 청자박물관에 들러 고려청자의 발생과 발전과정, 특징 등을 살피며 진품들을 감상한다면 더욱 실감나게 청자 체험을 할 수 있다.
청자 체험말고도 행사장엔 ‘전통농경문화체험 한마당’이 마련돼 소달구지 타기, 봉숭아 물들이기, 농작물 관찰하기 따위를 할 수 있다. 하신베틀놀이, 영동별신굿 등 다양한 전통문화공연도 곁들여진다. 고려청자사업소 (061)430-3525.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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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지역번호 061)=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목포에서 나가 2번 국도 따라 강진으로 간다. 서울~목포 4시간30분, 목포~강진 30분. 강진 볼거리로 다산초당·백련사와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조선시대 목조건물 극락보전이 있는 월출산 자락 무위사, 그리고 병영면의 전라병영성 유적(하멜 체류지), 시인 영랑 김윤식 생가, 월남사터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 등이 있다. 월출산 자락에 아담한 골짜기 경포대계곡이 있고, 부근에 차밭도 있다. 강진읍에 남도 한정식 명가인 해태식당(434-2486)·명동식당(434-2147)·흥진식당(434-3031)·청자골종가집(433-1100) 등이 있다. 한상 기본이 6만원(3인분)부터, 1인 2만~3만원 수준. 흥진식당은 5000원짜리 백반부터 시작한다. 마량항엔 직접 담가 내는 젓갈과 어죽으로 이름난, 40여년 전통의 완도횟집(완도식당·432-2066)이 있다. 시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은 김순자(55)씨가 30년째 맛깔스런 남도 맛을 낸다. 백반에도 6~7가지 젓갈이 기본으로 나오고, 어죽은 회를 든 뒤 매운탕 대신 선택해 주문하면 된다. 마량항 해태횟집(432-2322)은 회말고도 장어전골과 회덮밥·백반 등을 내는 집이다. 대구면 저두리(중저)엔, 국악인 채향주(66)씨가 강진산 콩으로만 된장·청국장을 담가 내는 청자골손된장(432-3372)이 있다. 마량항의 테마모텔(432-2626) 등 마량항과 강진읍에 모텔들이 많다. 강진군청에 문의하면 농촌체험마을 민박 등을 안내받을 수 있다. 마량항에서 고금도행(10분) 배는 수시로, 금일도행(1시간15분)은 하루 9회(7월말~8월초엔 수시운행)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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