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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그 역사와 문화의 매력에 빠지다

등록 2012-04-06 18:14

자료 제공 : 화순군청 - 정찬주(소설가)
자료 제공 : 화순군청 - 정찬주(소설가)
선비정신이 깃든 누정과 다산 정약용의 숨결
화순으로 낙향해 산 지 12년째다. 수십 년의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내려온 나는 바로 이양면사무소를 찾아가 전입신고부터 했다. 화순 땅에 뼈를 묻을 각오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15대조는 춘양의 해망서원에서 배향을 받는 돈재 정여해 선생이고, 고조는 쌍봉마을에서 살다가 보성 복내면으로 가셨으므로 낙향이란 단어는 사뭇 비장했다.

더구나 내가 쌍봉사 위 동편 계곡에 터를 닦아 집을 지은 것은 쌍봉사와의 인연이 깊은 까닭이었다. 1973년도에 나는 동국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반독재를 외치는 데모가 아주 격렬할 무렵이었으므로 강의가 장기간 결강되면 나는 치약 칫솔을 가방에 넣고 쌍봉사로 내려와 소설습작을 했던 것이다. 민주투사로서의 꿈보다는 소설가에 대한 열망이 강렬했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결강의 허전함을 달랬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니까 쌍봉사와의 인연은 그때 싹텄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쌍봉사 위에 나의 독서당인 이불재(耳佛齋)를 짓고 작가로서 정복(淨福)을 누리고 사는 것 같다.

내가 처음 화순역사에 눈을 뜬 것은 이불재 주변에 조광조가 잠시 묻혔던 조대감골(서원터마을)이 있고, 한말의병의 훈련장인 쌍산의소가 있어서였다. 그리고 쌍봉마을에는 기묘명현인 학포 양팽손의 독서당이 있고, 동복에 역시 기묘명현인 신재 최산두의 도원서원이 있었다. 그밖에도 화순 땅에는 많은 선비와 무인들의 숨결이 서려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내 무릎을 소리 나게 쳤다. 자각(自覺)이 섬광처럼 스쳤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야말로 산 역사의 현장이며, 따라서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과거인물이 아니라 현재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소설을 구상했고, 화순군 홈페이지에 소설연재 공간을 빌려 집필에 들어갔다. 장장 1년 6개월 동안 매주 원고지 50매씩 연재했는데, 그 결과물이 3권 분량의 장편소설 <하늘의 도>였다.

지석강과 여러 정자, 그리고 동복천의 적벽, 천년 고찰 등등 화순의 아름다운 풍광이 소설의 배경이 됐고, 화순의 선비들이 얘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 되었다. 서울의 공중파 피디가 내 산방으로 내려와 대하드라마를 논의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구상단계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소설의 주제가 혼탁한 세상을 맑히려 했던 선비들 이야기이므로 시절인연이 되면 언제든 다시 드라마화 될 것이라고 믿는다. 화순의 빼어난 풍광과 누정, 그리고 선비들의 올곧은 모습이 전국 시청자들에게 보여진다고 생각하면 미리부터 가슴이 설렌다.

낙향한 작가가 할 수 있는 몫은 바로 그런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중앙문화 못지않게 눈부신 화순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물들을 재조명하여 타지역 사람들에게는 화순의 정체성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군민들에게는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일도 작가의 몫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사는 땅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면서 자기 지역을 사랑한다는 말은 허구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공직자라면 역사문화 해설사 수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자기가 사는 땅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금언이 있다. 군 차원에서 화순학(和順學) 강좌를 개설하여 민관이 체계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것도 정체성을 찾고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한 방법이 될 터이다. 아마도 이는 전국 지자체 중에 최초의 시도로써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되리라고 믿는다.

작년에 나는 교육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한국기행>의 ‘화순편’에 출연하여 화순의 누정(樓亭)과 조광조에 대해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담당 피디가 선비정신이 깃든 누정이 담양군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화순군에도 많고 주변 풍광이 더 아름답다며 놀랐던 것이 선명하게 기억된다. 누정이란 풍류가 깃든 선비문화의 꽃이 아닐까 싶다. 결코 천박한 음주가무의 공간이 아니다. 누정 처마 밑에 걸린, 풍광을 찬탄하는 시판(詩板)들을 보면 얼마나 고상하고 품격이 높은 문화인지 금세 알 수 있는 것이다.

아취가 있는 문화공간은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까지 격조 있게 변화시키는 기능이 있는 법이다. 화순 땅에 산재한 누정과 그 주변을 하루 빨리 정비했으면 좋겠다. 예산을 몇 억씩 들여 조악하고 속되게 뒤엎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검박한 삶을 지향했던 선비정신과도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빈한 선비가 좋아하는 것은 서책과 사군자일 뿐이다. 비록 남루할지라도 정갈하면 그만이다. 풀을 깔깔하게 먹인 두루마기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누정은 단정하기만 하면 된다. 누정 둘레에 매화 한 그루, 대나무 서너 뿌리 심는 일을 귀찮아해서는 안 된다. 누정을 아끼는 마음만 있으면 군의 저예산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면민들과 공무원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누정지킴이를 맡는 것도 한 방법이 되리라. 시원한 누정에 앉아 마음을 소통하는 멋들어진 믿음의 공간이 될 것이다.

최근에 나는 어느 인터넷 매체에 <다산의 사랑>이란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중이다. 8회는 몽땅 다산 정약용이 화순에 남긴 흔적들을 살피는 글만 실었다.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실제로 답사해보니 그 의미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정조 1년(1777)에 다산의 부친 정재원이 화순현감으로 부임하자 다산의 형제들도 따라 내려와 동헌에 딸린 금소당에서 살게 된다. 다산의 나이 16세 때의 일이다. 다산은 17세 때 서석산과 물염정 적벽을 유람하며 호연지기를 길렀는데 기행문 두 편을 남긴다. <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와 <물염정기(勿染亭記)>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17세 때 겨울에는 번다한 동헌을 떠나 만연사 동쪽에 있었던 동림사에서 작은형 정약전과 함께 독서삼매에 빠진다. 이도 또한 <동림사독서기(東林寺讀書記)>란 글에 당시의 정황을 세세하게 남기고 있다. 형은 주로 <상서(尙書)> 즉 <시경(詩經)>을 외웠고, 다산은 <맹자>를 독파하며 선비로서의 길을 사색했다. 다산은 <맹자>뿐만 아니라 많은 서책을 읽었다.

훗날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를 가 500여 권의 책을 저술하여 실학을 집대성했는데, 그 밑거름이 됐던 땅이 바로 화순인 것이다. 다산학(茶山學)의 모태가 된 곳이 바로 화순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터이다. 다산이 동림사에서 쓴 시, <동림사에서 글을 읽으며(讀書東林寺)>를 보면 다산의 학문에 대한 각오와 열정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화순에 대한 다산의 글이 남아 있고, 유적지가 확실하므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나한산 지척에 ‘다산의 길’이라든지 ‘다산의 공원’을 만들고 ‘동림사’를 복원하면 어떨까. 화순군 공무원과 군민들이 화순과 다산의 인연을 역사적 사실대로 알고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21세기는 복지와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다산이 집대성한 실학은 복지와 문화를 우리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므로 다산학은 앞으로도 더 연구되고 재조명되리라고 믿는다.

올해 다산탄신 250주년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유네스코에서는 ‘다산의 날’을 제정한다고 한다. 이처럼 다산은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인물인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다산학의 밑거름이 된 곳이 바로 화순 땅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서둘지 말고 다산의 흔적을 차근차근 복원하여 후손에게 물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산이 태어난 남양주와 유배지 강진은 지금 다산탄신 250주년을 기리는 기념사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화순군도 이제는 다산을 통찰할 때가 됐다고 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역설(paradox)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창의적인 사고와 열정적인 태도를 기대해 본다.

정찬주(소설가)

[ 약력 ]

1953년 보성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문단 데뷔.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대백제왕><하늘의 도> <소설 무소유> 산문집으로 <돈황 가는 길> <암자로 가는 길> <정찬주의 다인기행><크게 죽어야 크게 산다>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 등 발표.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등을 수상.

현재 이양면 쌍봉사 부근의 이불재에서 집필활동.

* 자료 제공 : 화순군청

<본 기사는 한겨레 의견과 다를 수 있으며, 기업이 제공한 정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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