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대선에 묻힐라” 연초로 미뤄
경쟁사보다 앞당겨 기선 제압도
경쟁사보다 앞당겨 기선 제압도
연말 대통령 선거가 자동차 업체들의 신차 출시 일정에 차질을 줬다?
기아자동차가 올해 말 출시 계획으로 야심차게 준비해 왔던 대형 스포츠실용차(SUV)인 ‘HM’(프로젝트명)의 출시를 내년으로 미뤘다. 올 11월부터 생산이 시작되는 현대차의 대형 세단 ‘제네시스’도 내년초에나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현대·기아차 쪽에선 겉으로는 “보통 연초에 차량 판매 여건이 좋기 때문에 출시 일정을 미루게 됐다”고 말하지만, 실제 속사정은 다르다. “대선과 출시 일정이 겹치는 것이 우려돼서 그랬다”는 게 한 실무 관계자의 설명이다. 공들인 신차가 대선이라는 큰 이슈에 묻힐까봐 걱정한 것이다.
자동차 회사로서 신차 출시일은 가장 큰 경삿날이다. 그만큼 ‘택일’에도 정성을 쏟을 수 밖에 없다. 출시일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당연히 개발과 생산 일정이지만 출시가 다가오면 각 자동차 회사는 ‘신차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날짜 선정에 골머리를 앓는다. 신차 효과란 새차가 나온 뒤 일정 기간에는 수요가 반짝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대선이나 월드컵, 올림픽 같이 온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큰 행사는 신차 출시의 가장 큰 적이다. 지난 8월 말 대우자동차가 내놓은 정통 로드스터(오픈형 2인승 스포츠카) ‘G2X’도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발표되는 바람에 급히 출시 날짜를 1주일 앞당겼다.
경쟁회사의 새 차량 출시도 피해야 할 대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슷한 시기에 경쟁사의 새 모델이 출시된다고 알려지면 우리 모델을 1주일 정도 앞당겨 출시해 기선을 제압하려는 등의 ‘눈치작전’이 펼쳐진다”고 말했다.
연말에 새 연식 모델의 출시 날짜를 잡는 것도 쉽지 않다. 새 연식이 곧 출시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이전 연식의 차량 판매가 급감하기 때문이다. 회사로서는 새 연식 모델의 출시 때까지 재고를 소진하지 못하면 대폭 할인해서 파는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소비자로서도 구형과 신형 중고차값이 상당히 차이가 나니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 차의 출시날짜와 가격의 정확한 내용은 판매 직전까지 절대 비밀이 엄수된다. 회사들은 기자들에게조차 1주일 전에서야 정확한 출시일을 알린다. 올해말에는 르노삼성의 새 스포츠실용차 ‘H45’, 대우차의 젠트라 후속모델 ‘젠트라X’ 등 신차들이 쏟아지는 만큼 출시일 잡기 ‘눈치싸움’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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