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납품단가 인하 흐름도
‘차종별 계획서’까지 만들어 치밀하게 진행
공정위 “생산성 향상 외면 값 후려치기” 지적
현대·기아차 “일률적 인하 아니다” 법적 대응
공정위 “생산성 향상 외면 값 후려치기” 지적
현대·기아차 “일률적 인하 아니다” 법적 대응
공정거래위원회가 15일 현대·기아차의 부당 하도급 행위를 적발해 과징금 부과 등의 조처를 내린 것은,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대기업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첫 제동을 건 것이다. 공정위가 이번에 문제 삼은 것은 ‘정당한 이유없이 일률적으로 납품단가를 인하한 행위’다. 그러나 현대차는 부당 하도급 행위가 아니라며 법적으로 대응할 방침을 밝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 ‘클릭’ 사례 들여다보니=공정위가 찾아낸 현대차의 ‘저수익 차종 재료비 인하계획’이란 내부 문건을 보면, 단가 인하는 차종별 계획에 따라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대차는 2003년 초 소형차 ‘클릭’의 재료비를 3.5% 낮춰 242억원의 원가절감 목표를 세우고, 차체·의장·샤시 등 9개 팀별로 목표를 할당했다. 각 팀들은 담당하는 부품업체에 납품 단가를 일률적으로 낮추도록 해, 결과적으로 26개 업체가 789개 부품에 대해 3.4%씩 내렸다. 특히 2002년 말과 2003년 초에 생산대수 증가를 고려해 일부 업체에 대해선 이미 2.0%씩 단가를 내렸음에도, 다시 이 문건에 쓰인 계획에 따라 1.4%를 더 내리도록 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이날 ‘공정위 의결 관련 현대·기아차 입장’이란 보도자료에서 “당시의 납품단가 인하는 생산물량의 현저한 증가에 따른 고정비 절감효과를 납품단가에 반영한 정상적인 조정”이라고 주장했다. 또 클릭 생산라인 납품 업체 77곳 가운데 26곳만 단가 인하율이 비슷했는데 어떻게 ‘일률적인 납품단가 인하’라고 판단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현대차는 법적 대응 방침도 밝혔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하도급법의 취지가 ‘계획과 의도를 갖고 시행했느냐가 중요하다’라는 점을 들어 제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경만 공정위 하도급개선팀장은 “업무계획서 등을 보면 현대차가 원가절감 방안으로 88%를 단가 인하에서 찾고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 방법인 공정개선 등에선 14%로 목표를 잡고 있었다”며 “수익개선의 대부분을 손쉬운 단가 인하에서 찾으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 쉽지 않은 위반 적발=공정위 조사에서 현대차는 하도급법 위반 여부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클릭의 생산량이 95% 늘었기 때문에 납품업체로서는 고정비가 전체적으로 7.6% 감소했다는 논리를 내세워 반발했다고 한다. 납품가 인하보다 물량증가에 따른 혜택이 더 컸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생산량이 2배 가까이 늘었는데도 납품업체들에 설비투자 등 고정비용 증가분이 전혀 없다는 현대차의 논리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나마 기아차의 경우 구두 합의가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확인서를 받음으로써 대금반환을 명령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동훈 공정위 기업협력단장은 “이전엔 주로 문제되는 게 대금 미지급이나 지연 등이었는데 2003년 이후 점차 납품단가 인하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판단해 2004년부터 공정위가 석유화학·기계 등 업종별 직권조사를 벌여오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 조사가 대기업들의 ‘생산성 향상’을 내세운 납품단가 인하행위를 바꾸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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