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동차업계 합종연횡 현황
외국 기업, 전기차 개발·표준화 선점 위해 손잡아
현대·기아, 독자기술 밀기…전문가 “표준화 역부족”
현대·기아, 독자기술 밀기…전문가 “표준화 역부족”
현대·기아차는 13일 한국전력과 손잡고 국내 최초로 전기차용 충전 장치의 규격을 공개했다. 주유기와 비슷한 형태의 이 전기차 충전기는 주유구처럼 생긴 차량 콘센트에 주유기 역할을 하는 연결 장치를 꽂아 충전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는 미국 자동차공학회의 규격을 따르지만 속은 모두 국내기술로 이뤄졌다. 현대차와 한전은 “국내기술이 국제표준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젓는다. ‘홀로서기’ 전략을 구사하는 현대·기아차의 위상이 글로벌 표준화를 주도할 만큼 높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빠른 속도로 ‘짝짓기’에 나서고 있어, 자칫 차세대 표준화 경쟁에서 현대·기아차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달 초 다임러(메르세데스-벤츠)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사이에 이뤄진 제휴로 인해 2008년 미국 ‘빅3’의 부도 위기로부터 시작한 세계 자동차업계의 합종연횡 움직임은 일단락된 상태다. 피아트와 크라이슬러, 폴크스바겐(포르쉐 포함)과 스즈키, 푸조·시트로앵과 미쓰비시 등이 서로 손을 잡았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글로벌 자동차 산업 지형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 폴크스바겐-스즈키 연합은 당장 세계 1위로 올라섰고 다임러-르노·닛산 연합 또한 세계 3위로 순위가 껑충 뛰었다. 경우마다 제휴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은 서로 약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친환경차 개발에 따른 부담을 서로 나눠 가지는 전략을 쓸 예정이다.
무엇보다 친환경차 개발 공조는 각 업체들이 손을 잡는 첫 번째 이유다. 자본제휴 협상이 결렬된 푸조와 미쓰비시 역시 전기차 생산·판매를 위해서는 서로 손을 잡기로 했다. 다임러와 르노·닛산이 손을 잡은 배경도 소형차와 친환경차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친환경차 개발비용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미래 친환경차의 표준화를 주도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결국 연합의 확대는 표준화 문제와 연결된다”며 “뭉칠수록 자동차산업에 끼치는 영향은 커질 것이고 그것을 발판으로 아직 태동단계인 친환경차의 표준화를 주도하겠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현대·기아차는 이런 합종연횡 구도에서 한발 떨어져 ‘스탠드 얼론’(Stand Alone·독립) 전략을 쓰고 있다. 적절한 제휴선을 찾기 어렵기도 하려니와, 무엇보다도 그룹 수뇌부가 제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팀장은 “제휴를 하려면 상대방에 견줘 비교우위인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친환경차 부분에서 딱히 뛰어난 장점이 없는 게 문제”라며 “현대·기아차그룹이 철판까지 직접 생산하는 과도한 수직계열화를 통해 효율성 높이기에 몰두하는 것도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국내 자동차산업에서 현대·기아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큰 탓에, 자칫 현대·기아차의 오판이 곧바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전체의 후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현영석 한남대 교수(경영학)는 “산업의 중심이 친환경차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는 과정에서 표준화 경쟁에서 뒤처지면 주도권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며 “위험이 큰 수직계열화에 몰두하기보다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제휴선을 찾는 작업을 함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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