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엠그룹이 실시한 ‘2010 시보레(YCC) 유럽 아트 콘테스트’ 패션·디자인 분야 1위 수상자로 뽑힌 한국인 음정은씨의 작품.
예술가 공동작업 아트카에 미술품 전시 갤러리 매장도
제조업서 감성 파워 커지자 미술·패션과 ‘접점찾기’ 활발
제조업서 감성 파워 커지자 미술·패션과 ‘접점찾기’ 활발
지난 14일 문을 연 서울 강남구 현대자동차 대치지점. 자동차 판매점이라고 하기엔 ‘아름답다’. 벽면엔 활짝 핀 꽃과 역동적인 말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 가득하다. 마치 갤러리 같다. ‘자동차와 미술의 조화’라는 주제로 제작된 작품 스무 점의 가치만 무려 17억원에 이른다. 현대차 마케팅팀 관계자는 “이색 마케팅 전략인 동시에, 고객과 만나는 최접점에서 ‘기술이 모이면 예술이 된다’는 제품 철학을 구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업계가 미술·패션과의 협업(컬래버레이션)에 점차 눈을 뜨고 있다. 최근 제조업의 패러다임이 첨단기술을 강조하는 ‘하드파워’에서 소비자들의 감성을 움직이는 ‘소프트파워’로 옮겨가는 추세에 발맞춰나가기 위해서다. 외장, 색깔, 인테리어 등 ‘자동차는 디자인의 집합체’라고 불리는 만큼, 자동차업계가 미술과 패션 등으로 소비자와 교감을 모색하는 것은 자연스럽기도 하다.
국외 자동차업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패션디자이너나 미술가들과의 공동작업을 즐겨왔다. 딱딱하고 차가운 자동차의 느낌을 걷어내고,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다. 지난달 열린 파리모터쇼에서 프랑스 시트로앵은 패션 의류브랜드인 라코스테와 공동개발한 콘셉트카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스포츠 의류에 들어감직한 형광색으로 꾸민 차량은 경쾌한 느낌을 준다.
예술가들이 만든 ‘아트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독일 베엠베(BMW)는 지난 6월 전위적 현대미술가인 제프 쿤스가 디자인한 아트카를 파리에서 공개했다. 검은색 외장 위에 빛의 속도, 폭발을 상징하는 알록달록한 선을 표현한 레이싱카는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듯한 강렬한 인상을 풍겼다. 이밖에도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 팝아트계의 거장들과 공동작업한 17가지 아트카는 베엠베의 자랑이다.
국내 업체로는 쌍용자동차가 지난 4월 부산모터쇼에 팝아티스트 이동기씨의 작품으로 도색한 코란도 아트카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직 드물긴 하지만 국내 도로에서도 이런 특별한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지난 2008년 현대차는 이탈리아의 프라다 디자인센터와 손잡고 내부 디자인 등을 공동개발한 제네시스 3대를 한정판매했다. 프라다폰, 아르마니폰 등을 선보인 휴대전화 업체들처럼 ‘명품’을 앞세워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지난 2006년 푸조가 국내에 한정판매한 206CC 퀵실버와 록시 모델은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 ‘퀵실버’와 여성 캐주얼 브랜드 ‘록시’의 로고를 각각 도어와 시트에 새겨 젊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자동차 디자인을 모티브로 패션을 완성하는 ‘역흐름’도 나타난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파리모터쇼 전야제 행사를 ‘패션 갈라쇼’ 형식으로 펼쳤다. 유명 여성복 디자이너 프랑 소르비에가 시보레 브랜드의 대표 모델 분위기에 맞춰 특별제작한 옷을 무대에 올렸고, 마지막엔 파리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7인승 다목적 패밀리카 시보레 올란도가 패션모델들과 함께 등장했다.
올해 초 열린 현대차 쏘나타 2.4 GDI 출시 기념행사는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특별 제작한 옷을 선보이는 패션쇼 형식으로 진행됐다. 동양란을 형상화해 옷감의 주름을 살린 디자인은 쏘나타와 닮아 있었다.
국내에선 첫걸음을 뗀 정도지만, 외국 자동차메이커들은 공공 문화활동으로까지 한 단계 앞서나가는 중이다. 이달 초 베엠베그룹은 구겐하임재단과 공동연구소를 개설해, 6년 동안 전세계 주요 도시를 돌면서 미술, 디자인, 건축 등 도시생활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주양예 베엠베코리아 이사는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을 담고 있는 상징물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다.” 올해 초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발표할 때 했던 말이다. 지금까지 기술을 주로 강조해왔던 국내 완성차업체들도 ‘기술과 예술의 교차로’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나갈 수 있을까? 정희식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품질·성능이 평준화돼 자동차 제품만으로는 차별화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라며 “국내 자동차산업도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새로운 가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서울 강남구 현대자동차 대치지점.
국내에선 첫걸음을 뗀 정도지만, 외국 자동차메이커들은 공공 문화활동으로까지 한 단계 앞서나가는 중이다. 이달 초 베엠베그룹은 구겐하임재단과 공동연구소를 개설해, 6년 동안 전세계 주요 도시를 돌면서 미술, 디자인, 건축 등 도시생활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주양예 베엠베코리아 이사는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을 담고 있는 상징물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에 서 있다.” 올해 초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발표할 때 했던 말이다. 지금까지 기술을 주로 강조해왔던 국내 완성차업체들도 ‘기술과 예술의 교차로’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나갈 수 있을까? 정희식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은 “품질·성능이 평준화돼 자동차 제품만으로는 차별화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라며 “국내 자동차산업도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새로운 가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