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자동차 내수 시장은 어느 때보다 일본 브랜드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동일본 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유출 사고, 타이 홍수 등 연이은 악재로 고전한 일본 브랜드들이 내년엔 올해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최근 엇갈린 가격 정책을 내놔 업계와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먼저 혼다코리아는 지난 20일 스포츠실용차(SUV)인 4세대 ‘신형 시아르-브이(CR-V·아래 사진)’ 출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판매 가격을 3270만~3670만원으로 제시했다. 이는 이전 모델보다 최고 120만원 낮은 수준이다. 성능과 사양이 개선된 신형 모델이 나오면 개발비 등을 뽑아내기 위해서라도 값이 오르는 게 일반적인데, 혼다코리아가 좀처럼 보기 힘든 가격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특히 이 차종은 2004년 국내에 처음 선보인 이후 2005년부터 2009년까지 4년 연속 수입 스포츠실용차 중 판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 소비자에게 인기를 끈 모델이다. 이에 업계에선 혼다코리아의 이번 가격 책정을 놓고 승부수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혼다코리아 쪽도 “더욱 커질 국내 수입차 시장을 내다보고 내린 결정”이라며 “일종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한국토요타도 내년 초 국내 판매를 시작할 중형 세단 7세대 신형 캠리(왼쪽 위) 가격을 기존 모델보다 낮게 책정할 예정이다. 지난 9월 북미 시장에 먼저 출시할 때도 구형 캠리보다 2000달러(약 230만원) 싸게 내놓은 바 있다. 특히 한국토요타 쪽이 최근 내년 신형 캠리 국내 판매 목표를 6000대로 제시하면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반면 한국닛산은 올해 박스카 신드롬을 부른 ‘큐브’(오른쪽 위)를 내년엔 올해보다 3%(약 70만원) 올려 받기로 했다고 최근 밝혔다. 지난 8월 국내에 선을 보인 지 불과 5개월 만에 가격을 올린다는 것이다.
다소 엇갈리는 가격 정책을 내놨지만,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값을 내리든 올리든 간에 최근 4년간 40% 이상 오른 엔화 강세로 나빠진 수출 경쟁력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한국토요타와 혼다코리아는 원가 절감 차원에서 상품성을 낮춰 가격을 내렸고, 닛산은 상품성은 유지하는 대신 환율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시켰기 때문이다.
실제 도요타 신형 캠리는 구형 모델과 거의 유사한 엔진을 장착했다. 엔진은 원가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한국토요타 쪽이 국내 광고에서 제원보다는 스타일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가 경쟁 차종에 터보 기능까지 강력한 엔진을 차용하고 있는 와중에 도요타는 빛바랜 엔진을 쓰고 있다”며 “수년째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가혹하게 진행된 원가 절감을 위해 상품성을 희생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혼다코리아 또한 지난 11월 출시한 9세대 시빅을 내면서 원가를 줄이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옵션에서 제외했다.
혼다와 닛산이 국외 생산 규모를 크게 늘리는 것도 엔화 강세 극복을 위한 노력이다. 닛산은 최근 2조3000억원을 들여 멕시코에 연간 60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렇게 되면 일본 내 생산 규모(100만대)보다 국외 현지 생산 규모(130만대)가 커지게 된다. 혼다 역시 2년 뒤엔 현지 생산 규모를 현재보다 40% 이상 늘릴 계획이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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