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중국말을 잘하니 중국 사람들을 좀 맡아주게.”
현대·기아자동차가 최근 2년 연속 중국에서 차를 100만대 이상 판매했다. 1997년 기아차가 프라이드 150대를 처음 수출한 이래 15년 만에 이룬 실적이다. 2009년부터 현대차는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와 독일의 폴크스바겐, 일본 닛산과 더불어 중국 5대 메이커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에서 급성장한 배경에는 중국 정·관계 인사들과 두터운 관계를 맺어온 설영흥 현대·기아차 중국사업담당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 설 부회장이 기용된 것은 2004년이지만, 그가 현대차그룹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로부터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당시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이던 정몽구 그룹 회장이 설 부회장을 고문으로 영입한 게 시작이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당시 정 회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설 부회장을 고문으로 영입하며, 현대그룹 생산시설을 보러 오는 중국 정·관계 인사에 대한 의전을 일임했다”며 “그때부터 중국에서 사업할 때 가장 중요하다는 ‘관시’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고 말했다. 관시란 관계를 뜻하는 중국 말로, 기업인들은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중국 정·관계 인사와의 인맥 형성을 중요한 자산으로 여긴다.
설 부회장은 중국 산둥성 출신의 부모를 둔 화교 2세다. 1945년 서울생으로 대학은 대만(성공대학 회계과)에서 나왔다. 일찌감치 사업을 시작해, 화교 사회에서 성공한 화상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중국과 대만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에 문외한인 설 부회장을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고문으로 영입한 데 이어 2004년 현대차그룹 부회장으로 전격 발탁한 배경이다.
정 회장과 설 부회장 간의 첫 만남은 이보다 앞선 1960년대로 거슬러 간다. 설 부회장이 현대모비스 고문으로 영입되기 수십 년 전부터 정 회장과의 인연은 시작됐다는 것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설 부회장이 고등학교 시절 즐겨 찾던 중국 음식점에서 정 회장을 만난 게 인연이 된 것으로 안다”며 “현대와 직접 손을 잡은 것은 1994년이지만, 그 전에도 이런저런 중국 관련 사업과 관련해 조언을 해왔다”고 말했다.
설 부회장은 현대차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관시로 여러차례 힘을 발휘한다. 설 부회장은 현대차 고문 시절이던 2002년, 당시 중국 정부로부터 베이징자동차와 합작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주룽지 중국 총리를 직접 만나 설득하는 등 중국 고위층과도 폭넓은 유대관계를 과시했다. 기아차가 2000년대 초중반부터 중국 실세그룹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상하이방의 근거지인 장쑤성 주변에 공장을 세운 것도 설 부회장과 중국 고위층 간의 인연이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기 전인 1990년 중국이 서울에 무역대표부를 설립할 당시에도 설 부회장은 현대그룹을 도왔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중국 무역대표부 직원들이 사용할 사무실 집기부터 시작해 소소한 생활 편의까지 현대그룹에서 많이 지원했는데, 이 과정에서 설 부회장이 총괄 책임을 맡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설 부회장의 이러한 이력과 활동 때문에 재계에선 설 부회장이 현대차그룹 내에서 여타 부회장과는 조금 다른 위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중국 사업에 대해 정 회장이 사실상 영업과 관련한 모든 것을 설 부회장에게 일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고용과 피고용인의 관계를 넘어서는 관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정기 인사에서 설 부회장의 아들인 설호지씨가 40대 초반 나이에 전격 임원으로 발탁된 것도 현대차그룹 내 설 부회장의 위상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장급 나이에 임원 승진한 것은 설 부회장의 역할을 정 회장이 높게 인정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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