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오 호샤 한국지엠 사장(오른쪽)이 30일 오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차발표회에서 스포츠카 ‘쉐보레 콜벳(Corvette)’ 앞에 서 있다. 콜벳은 8기통 6.2리터 엔진을 탑재해 최대 430마력의 풍부한 출력과 58.7kg.m의 최대 토크 등을 내며, 가격은 8640만원, 프리미엄 인테리어 패키지 추가 시 8940만원이다. 국내에선 5월4일부터 판매가 시작된다. 한국지엠 제공
한국지엠(GM)은 부산 국제모터쇼 개막 전날인 지난 24일 진행된 언론 사전 행사 때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행사장에 나타난 세르지오 호샤 한국지엠 사장은 “부평 공장 내 디자인센터를 두배 이상으로 확장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올해 투자 규모를 1조5000억원으로 제시했다. 2002년 한국지엠 출범 이후 매년 1조원 가량씩 투자해오던 전례에 비춰 50% 가까이 투자 규모를 늘린다는 의미다.
국내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한국지엠이 지엠 내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사실 2001년 대우차 인수 이후 한국지엠은 탄탄대로를 걸어오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1조8000억원의 적자를 보면서 위기를 맞았지만, 당시에도 과도한 환헤지에 따른 영업외손실 영향이었지, 자동차 판매는 190만대로 평년 수준을 유지했다.
한국지엠의 승승장구는 두가지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단 2004년부터 시작된 지엠의 플랫폼 통합 작업에 덕을 보고 있다. 지엠은 생산 모델별로 중형·준준형, 경·소형, 고급·스포츠실용(SUV) 등 8개 분야로 나눠 각 지역 거점을 전문화시켰다. 이 중 한국지엠은 경차·소형차 개발을 따내면서 지엠 내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티코나 마티즈 등 한국지엠의 전신인 대우차 시절부터 구축해 놓은 경차 생산능력 덕택이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애초 지엠의 경차 개발 베이스는 일본 스즈키였다”며 “하지만 2004년 사업 조정 과정에서 한국지엠이 가져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뚜렷해진 고유가가 지속하면서 효율이 높은 경·소형차의 중요성이 커진 것도 한국지엠으로선 반가운 일이다. 실제로 지엠의 경·소형차 라인업인 스파크, 마티즈, 아베오는 한국지엠이 주도적으로 개발했고, 지엠 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쉐보레’ 브랜드의 지난해 판매량(반조립 포함) 가운데 40%를 한국지엠이 도맡았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지엠이 언제까지 쾌속 행진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하는 이는 드물다. 지엠 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언제든지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수년째 매각 혹은 공장 폐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엠의 유럽 생산 거점인 오펠이 당장 한국지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칼 슈트라켈 오펠 사장은 자구책을 내놓으며“오펠 공장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쉐보레를 유럽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디트로이트(지엠 본사), 상하이(한국지엠이 소속돼 있는 지엠국외사업부문) 쪽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지엠의 생산물량을 가져와 오펠을 살리겠다는 의미다. 지난 1월 독일 자동차 노조는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생산되는 쉐보레 크루즈와 올란도를 오펠로 이관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차종까지 거론한 바 있다.
한국지엠 쪽은 생산물량 이전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지만, 이처럼 지엠 본사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물량축소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지엠 본사는 각 공장별로 생산성을 비교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한국지엠은 현대차나 기아차, 르노삼성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지엠 우산 내 다른 공장과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의 주력 생산차종 중 하나인 아베오(미국명 소닉)와 크루즈는 각각 미국 미시건주와 오하이오주에서도 생산되고 있다. 한국지엠의 수출분을 현지 생산으로 돌린 셈이다. 보다 큰 위협은 지엠 중국 생산 거점인 상하이지엠이다. 이곳은 한국지엠이 만드는 대부분 차종을 생산하고 있다. 2002년 한국지엠 출범 이후 연간 90∼100만대(완성차 기준) 수준인 생산능력이 더 이상 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상하이지엠이 내수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수출에 나서게 되면 한국지엠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재 주말 특근이 반복될 정도로 높은 가동률을 보이고 있지만,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본격 활동에 나선 한국지엠 사무직 노조 사무실에는 노조 가입서가 쇄도하고 있다. 지난 4월 말 현재 전체 가입 대상자 중 80% 가량인 4000여명이 노조 가입을 마쳤다. 이창훈 한국지엠 사무노조위원장은 “오펠로의 물량 이전 가능성은 낮게 보지만, 우즈벡이나 폴란드 등 생산비가 낮은 공장으로의 물량 이전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임단협의 주요 안건 중 하나가 생산 물량 보전”이라고 말했다. 한국지엠의 전체 고용인원은 1만7000명이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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