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8.5% 성장” 근거로 EU에 ‘우선 감시’ 요청
정부·업계, 세이프가드 발동 가능성 여부 ‘촉각’
정부·업계, 세이프가드 발동 가능성 여부 ‘촉각’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부터 2011~2012년 유럽발 부채 위기에 이르기까지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가운데서도 승승장구한 현대·기아차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가 시작됐다. 올해 초 브라질이 현대·기아차를 겨냥해 세율(공업세)을 크게 올린 데 이어, 이번에는 프랑스가 발을 걸고 나섰다.
■ 유럽연합 ‘세이프가드’ 발동 채비 존 클랜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통상총국 대변인은 지난 6일(현지시각) “집행위는 한국 자동차 수입에 대한 ‘우선 감시’ 조처를 취해 달라는 요청을 프랑스 정부로부터 접수했다”며 “집행위는 현재 이 요청을 신중하게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프랑스 정부는 올해 들어 자국 내 자동차 판매량이 14.4% 줄어드는 동안 현대·기아자동차는 28.5%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유럽연합 쪽에 우선 감시를 요청했다. 우선 감시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 간에 특정 품목에서 수입이 급증해 산업에 피해가 예상될 때 수입 중단 등의 조처를 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 발동을 위한 사전 절차에 속한다.
유럽연합 집행위가 프랑스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우선 감시에 착수한 데 이어 세이프가드 발동 카드까지 꺼내들면, 국내 자동차 업계의 타격은 물론 한-유럽연합 간 무역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통상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유럽연합 집행위가 프랑스 요청을 받아들일지 여부는 최소 한 달 안팎의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 배경과 영향 정부와 국내 완성차 업계는, 유럽연합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세이프가드 발동을 위해선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발효에 따른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며 “현대·기아차의 경우, 현지 생산 비중이 70%가 넘는데다, 문제를 제기한 프랑스 내수 점유율이 3%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의 품질과 가격 경쟁력 때문에 판매가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발효 덕택에 현대·기아차 판매량이 늘어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정부와 국내 업계는 프랑스의 감시 요청 배경을 프랑스 국내 문제에서 찾고 있다. 프랑스는 자국 브랜드인 르노와 푸조-시트로앵이 심각한 부진에 빠진데다, 푸조가 파리 근교 오네공장을 폐쇄하고 8000명을 감원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내놔 시끄럽다. 조철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프랑스가 현대·기아차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 같다”며 “현재로선 프랑스의 감시 요청은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로 보인다”고 말했다.
■ 미풍에 그칠까?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에서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이 매우 모호하게 처리돼 있기 때문이다. 협정문상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은 ‘수입량이 급증하고, 자국 산업 피해가 있거나 피해가 있을 우려가 있을 때’로 정리돼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세이프가드 요건이 전혀 계량화되어 있지 않다”며 “이 때문에 만일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유럽연합 집행위가 조사 범위를 프랑스로 한정할지, 아니면 유럽연합 관할 시장 전체로 설정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세이프가드 발동 범위가 유럽 시장 전체로 확장될 경우, 국내 업체가 받을 타격도 덩달아 커지기 때문이다. 지경부 쪽은 “유럽연합 집행위의 정확한 스탠스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조철 팀장은 “프랑스의 문제제기 이후 다른 유럽연합 내 국가의 움직임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올 상반기 유럽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는 업체는 사실상 현대·기아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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