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경제 쏙]
전기차 181년
예나 지금이나 유망하다는데…
언제쯤 대세 될까요
전기차 181년
예나 지금이나 유망하다는데…
언제쯤 대세 될까요
“가솔린 자동차보다 전기차를 타는 쪽이 쾌적하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기 모터는 떨림 없이 조용하며 가솔린이나 증기차처럼 악취를 풍기지도 않는다. 자동차의 미래는 전기에 있다.” 외국의 한 과학잡지가 전기차의 미래를 확신하며 쓴 기사의 일부분이다. 최근 기사가 아니다. 기사가 나온 건 1899년. 무려 114년 전의 일이다.
■ 점화될 듯 말 듯한 전기차 시대 스코틀랜드의 사업가 로버트 앤더슨이 세계 최초로 전기차 시제품을 선보인 것은 1832년이었다. 이후 미국 뉴욕시에선 전기차 택시(1897년)가 등장했고, 프랑스에선 시속 100㎞ 이상을 낼 수 있는 전기차 ‘라 자메 콩탕’(1899년)이 나왔다. 1912년 전세계 전기차 등록대수는 3만대. 헨리 포드가 ‘티(T)자형 포드’로 대중을 위한 값싼 차를 대량생산하기 시작(1908년)했지만, 전기차의 인기를 따라잡진 못했다. 하지만 엔진을 자동으로 회전시키는 전기시동장치의 개발 및 속도와 주행거리의 개선, 지속적인 유가 하락은 전기차의 쇠퇴를 불러왔다. 1930년대 후반, 전기차 시대는 만개하지도 못 한 채 가솔린 차들에게 전세계 도로를 내줬다.
1973년 중동발 오일쇼크와 1980년대 이후 커진 지구 온난화에 대한 각성은 잊혀졌던 ‘전기차의 추억’을 되살렸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차, 연비가 적게 드는 차로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제너럴모터스(GM)가 그 바람을 타고 1996년 순수전기차 ‘이브이(EV)1’을 내놨다. 리스 형식으로 보급된 이브이1엔 톰 행크스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도 열광했다. 하지만 여전히 수요는 적고 수익은 나지 않았다. 2003년 지엠은 이브이1을 전부 회수해 폐차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기차로 인해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정유 회사와 이를 옹호하는 부시 정권이 ‘전기차를 죽였다’는 음모론이 들끓었지만, 금새 시들해졌다. 유가가 폭등할 때마다 ‘전기차 대안론’이 나오곤 했지만, 전기차는 아직도 ‘곧 다가올 미래’로만 얘기되고 있다.
1832년 등장 뒤 잠시 인기 끌다
가솔린차에 밀려나 도로 내줘
이익 걱정한 정유사 음모론도 제주도서 민간에 첫 보급
BMW 등 수입업체 출시 예고
‘전기차 시대 곧 온다’ 전망에도
국내업체 “살 사람 없다” 미적 ■ 다시 각광받는 전기차 시장 지난 한 달, 제주도는 전기차의 민간 시장을 놓고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처음으로 맞붙은 ‘격전장’이 됐다. 제주도는 국내 최초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전기차 보급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에 기아차와 르노삼성, 한국지엠 등 전기차를 생산하는 국내 완성차 업체 3곳이 모두 뛰어든 것이다. 전기차 구매를 원하는 160명에게 정부(1500만원)와 지자체의 보조금(800만원), 그리고 충전시설 설치비(800만원 상당)를 지원하는 이 사업에 지난 26일까지 도민 487여명이 신청했다. ‘3 대 1’의 높은 경쟁률. 사업을 담당하는 제주도청 스마트그리드과 관계자도 “이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보일 줄 몰랐다”고 얘기했다. 첫 대결은 르노삼성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신청자 가운데 307명(63%)이 르노삼성의 ‘에스엠(SM)3 ZE’를 선택했다. 준중형급이지만, 한 두 차급 낮은 기아차 레이 EV(첫번째 사진 3500만원)와 한국지엠의 스파크 EV(맨뒤 4000만원) 수준(4225만원)까지 파격적으로 가격을 낮춘 전략이 주효했다. 제주도에서 드러난 폭발적 관심 속, 올해 말부터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 업체들 외에도 베엠베(BMW)에서 내년에 콘셉트카 i3(가운데)를 출시 예고 하는 등 수입차 업체들까지 나서 국내에서 고객 선택의 폭이 다양해지는데다, 가격 인하가 시작되면서 시장이 커질 거란 기대다. 전세계적으론, 올해 초 닛산이 전기차 ‘리프’의 가격을 6000달러 정도 낮춘 것을 시작으로, 지엠과 포드 등도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지난 1분기 ‘모델S’ 전기차를 북미지역에서 4900대 이상 판매하며, 회사 설립 3년 만에 첫 분기 흑자를 냈다. 전기차 관련 주들은 장밋빛 기대 속에 들썩거리고 있다. ■ 엇갈리는 전망 속 미온적인 업체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전기차를 내놨던 현대기아차의 반응은 어째 뜨뜻미지근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저탄소 녹색성장’을 한다고 밀어붙이는 바람에 전기차를 생산했지만, 사실 전기차는 미래가 밝지 않다. 한 번 충전(완전충전)하는데 3~5시간 정도 걸리는데,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은 잘 안 돼 있고, 주행거리도 고작 200㎞ 안팎이다. 일반 소비자가 보조금 없이 구매하기엔 차값이 너무 비싸다. 기술이 없어 양산을 안하는 게 아니다. 당장 살 사람이 없는데 양산만 하면 뭘 하겠느냐.” 현대기아차의 한 임원이 밝힌 사정은 이러했다. 현대기아차는 정부의 보조금 정책을 봐가면서 전기차 양산 여부 등을 결정한다는 방침 아래, 당분간은 하이브리드 판매에 집중하면서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을 통해 향후 친환경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미온적 반응은 전기차 시대의 도래 시기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에너지기구(IAE)는 2020년까지 전체 승용차의 2% 수준인 2000만대 정도의 전기차가 도로를 주행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올해 전세계에 보급된 전기차의 수는 18만대 수준으로 전체 승용차의 0.02%에 불과하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의 폴크마 덴너 회장은 최근 “배터리 성능 개선이 더뎌 전기차는 2020년 이후에나 대중 제품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교체 방식 등 독자적 사업모델을 추진했던 베터플레이스의 파산도 비관론을 부추기는 소재다. 더욱이 셰일가스를 비롯한 석유 매장량은 앞으로도 400년 이상 쓸 수 있는 분량이 남았다는 보고서들이 잇따르고 있다. 전기차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환경부 공무원조차 “각국 정부가 장밋빛 전망 속에 목표를 과도하게 높게 잡은 측면이 있다”고 인정할 정도다. 국내에선 이명박 정부 시절 2020년까지 총 100만대의 전기차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공공기관 등에 공급된 전기차는 1000여대 수준이다. 그나마도 박근혜 정부가 ‘녹색성장’ 대신 ‘창조경제’를 들고나온 뒤 추진력이 크게 떨어졌다. 전기차 관련 환경부 예산이 지난해 537억원에서 올해 276억원으로 반토막이 난 게 대표적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보조금이 없으면 전기차 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고 울상이지만 “자동차 업체들이 주행거리 향상 등 소비자에게 먹힐 수 있는 제품 개발과 보급에 힘쓰진 않고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기차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는 원인을 친환경 자동차 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은 “내연기관의 우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현대기아차는 위험 부담을 안고 후발주자로 전기차 시장에까지 뛰어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투자한 돈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는 부담도 있다. 현대기아차가 연료전지차 개발에 투자하는 건 전기차 시대 이후 친환경차 시장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전략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배터리 기술력이 급격히 향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2015년 이후부터 수소연료전지차 양산이 본격화할 2025년 사이 현대기아차의 친환경차 전략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전기차용 배터리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 전기차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경우, 현대기아차의 전략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가솔린차에 밀려나 도로 내줘
이익 걱정한 정유사 음모론도 제주도서 민간에 첫 보급
BMW 등 수입업체 출시 예고
‘전기차 시대 곧 온다’ 전망에도
국내업체 “살 사람 없다” 미적 ■ 다시 각광받는 전기차 시장 지난 한 달, 제주도는 전기차의 민간 시장을 놓고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처음으로 맞붙은 ‘격전장’이 됐다. 제주도는 국내 최초로 민간인을 대상으로 전기차 보급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에 기아차와 르노삼성, 한국지엠 등 전기차를 생산하는 국내 완성차 업체 3곳이 모두 뛰어든 것이다. 전기차 구매를 원하는 160명에게 정부(1500만원)와 지자체의 보조금(800만원), 그리고 충전시설 설치비(800만원 상당)를 지원하는 이 사업에 지난 26일까지 도민 487여명이 신청했다. ‘3 대 1’의 높은 경쟁률. 사업을 담당하는 제주도청 스마트그리드과 관계자도 “이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보일 줄 몰랐다”고 얘기했다. 첫 대결은 르노삼성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신청자 가운데 307명(63%)이 르노삼성의 ‘에스엠(SM)3 ZE’를 선택했다. 준중형급이지만, 한 두 차급 낮은 기아차 레이 EV(첫번째 사진 3500만원)와 한국지엠의 스파크 EV(맨뒤 4000만원) 수준(4225만원)까지 파격적으로 가격을 낮춘 전략이 주효했다. 제주도에서 드러난 폭발적 관심 속, 올해 말부터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 업체들 외에도 베엠베(BMW)에서 내년에 콘셉트카 i3(가운데)를 출시 예고 하는 등 수입차 업체들까지 나서 국내에서 고객 선택의 폭이 다양해지는데다, 가격 인하가 시작되면서 시장이 커질 거란 기대다. 전세계적으론, 올해 초 닛산이 전기차 ‘리프’의 가격을 6000달러 정도 낮춘 것을 시작으로, 지엠과 포드 등도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지난 1분기 ‘모델S’ 전기차를 북미지역에서 4900대 이상 판매하며, 회사 설립 3년 만에 첫 분기 흑자를 냈다. 전기차 관련 주들은 장밋빛 기대 속에 들썩거리고 있다. ■ 엇갈리는 전망 속 미온적인 업체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 국내에서 가장 먼저 전기차를 내놨던 현대기아차의 반응은 어째 뜨뜻미지근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저탄소 녹색성장’을 한다고 밀어붙이는 바람에 전기차를 생산했지만, 사실 전기차는 미래가 밝지 않다. 한 번 충전(완전충전)하는데 3~5시간 정도 걸리는데, 충전소 등 인프라 구축은 잘 안 돼 있고, 주행거리도 고작 200㎞ 안팎이다. 일반 소비자가 보조금 없이 구매하기엔 차값이 너무 비싸다. 기술이 없어 양산을 안하는 게 아니다. 당장 살 사람이 없는데 양산만 하면 뭘 하겠느냐.” 현대기아차의 한 임원이 밝힌 사정은 이러했다. 현대기아차는 정부의 보조금 정책을 봐가면서 전기차 양산 여부 등을 결정한다는 방침 아래, 당분간은 하이브리드 판매에 집중하면서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을 통해 향후 친환경차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미온적 반응은 전기차 시대의 도래 시기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에너지기구(IAE)는 2020년까지 전체 승용차의 2% 수준인 2000만대 정도의 전기차가 도로를 주행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올해 전세계에 보급된 전기차의 수는 18만대 수준으로 전체 승용차의 0.02%에 불과하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의 폴크마 덴너 회장은 최근 “배터리 성능 개선이 더뎌 전기차는 2020년 이후에나 대중 제품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교체 방식 등 독자적 사업모델을 추진했던 베터플레이스의 파산도 비관론을 부추기는 소재다. 더욱이 셰일가스를 비롯한 석유 매장량은 앞으로도 400년 이상 쓸 수 있는 분량이 남았다는 보고서들이 잇따르고 있다. 전기차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환경부 공무원조차 “각국 정부가 장밋빛 전망 속에 목표를 과도하게 높게 잡은 측면이 있다”고 인정할 정도다. 국내에선 이명박 정부 시절 2020년까지 총 100만대의 전기차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공공기관 등에 공급된 전기차는 1000여대 수준이다. 그나마도 박근혜 정부가 ‘녹색성장’ 대신 ‘창조경제’를 들고나온 뒤 추진력이 크게 떨어졌다. 전기차 관련 환경부 예산이 지난해 537억원에서 올해 276억원으로 반토막이 난 게 대표적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보조금이 없으면 전기차 사업을 확대하기 어렵다고 울상이지만 “자동차 업체들이 주행거리 향상 등 소비자에게 먹힐 수 있는 제품 개발과 보급에 힘쓰진 않고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기차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는 원인을 친환경 자동차 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은 “내연기관의 우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현대기아차는 위험 부담을 안고 후발주자로 전기차 시장에까지 뛰어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투자한 돈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다는 부담도 있다. 현대기아차가 연료전지차 개발에 투자하는 건 전기차 시대 이후 친환경차 시장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전략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배터리 기술력이 급격히 향상될 것으로 예상되는 2015년 이후부터 수소연료전지차 양산이 본격화할 2025년 사이 현대기아차의 친환경차 전략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전기차용 배터리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해 전기차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경우, 현대기아차의 전략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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