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만 해도 전기자동차의 상용화는 먼 훗날의 얘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불과 1년여 사이에 꿈이 아닌 현실이 됐다. 주행거리가 300~400km나 되는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은 아직 비싸다. 하지만 대량생산이 이뤄지면 가격 인하는 시간문제다. 가격이 적절하고 충전과 주행에 불편이 없다면 소음·진동·공해가 없는 전기차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 스마트폰처럼 전기차가 우리 생활의 중심을 차지할 날도 머지않았다. _편집자
경량화 위해 탄소섬유로 제작 … 다임러, 폴크스바겐과 달리 전용 생산라인 도입
자동차 업체들의 전기자동차 생산이 본격화하고 있다. 독일 BMW 역시 7년여간의 준비 끝에 새 전기차 모델 i3를 내놨다. 생산 방식부터 다른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다. 차체도 철판이 아니라 가벼운 탄소 섬유로 만들었다. 콘셉트카가 아니라 상업적 성공을 겨냥한 야심작이다. BMW는 여기에 3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뮌헨에서는 BMW 본사를 ‘4기통 실린더’라고 부른다. BMW라는 상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바이에른 지방의 자동차 회사란 의미의 ‘Bayerische Motoren Werker’의 줄임말인 BMW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건 실린더를 12개까지 갖춘 강력한 엔진 덕분이었다.
이 엔진을 가동시켜 움직이는 BMW 자동차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환상적으로 달린다. 리무진, 콤비, 지프, 스포츠카 등의 차종에서 파란색과 흰색 엠블럼을 가진 이 회사의 자동차만큼 많이 팔린 경우는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기 힘들다. 자동차로 그처럼 많은 돈을 벌어들인 회사는 BMW가 유일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정이 달라질 것 같다.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BMW 공장 빌딩은 나란히 서 있는 거대한 풍차 4대를 거느린 채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회전축에 달린 날개는 하늘로 190m나 높이 솟아 있다. 여기는 BMW 그룹 회장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가 자동차의 미래와 자신의 경력을 걸고 일종의 도박을 시작한 곳이다. 라이프치히에선 BMW 신형 전기자동차 i3가 생산되고 있다.
컴퓨터의 출현으로 타자기가 겪어야 했던 수난이 앞으로 자기 기업에 닥치는 걸 막기 위해서는 이렇게 다른 차종을 개발해야 한다는 게 라이트호퍼의 생각이었다. 타자기는 비약적인 기술 진보라는 벽을 넘지 못한 채 사라진 실패의 역사를 상징한다. 라이프치히의 대형 풍차 아래서 라이트호퍼의 장담이 과연 적중할지는 머지않아 판가름날 것이다. 과연 사람들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자동차를 구입하게 될까?
전기자동차 생산을 담당하는 헬무트 슈람 생산부장은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전력은 저 풍차 4대로 완전히 충당된다”고 설명했다. 기존과 달라진 건 비단 에너지 수급 방법만이 아니다. “개발 단계부터 전기로 움직이는 고급 자동차를 구상하고 최초로 대량생산까지 시작한 곳이 바로 여기다. 자동차 제작의 혁명이 바로 이 공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학교수이기도 한 49살의 엔지니어는 그칠 줄 모르고 BMW의 전기자동차 생산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일반 신차 개발비보다 2배 이상 투자
여기서는 무거운 철판을 압착하는 대신 아주 가벼운 탄소 성분 소재로 판을 짠다. 차체는 용접하는 게 아니라 갖다붙이게 돼 있다. 소리 없이 춤추는 듯한 접착 로봇은 친환경 제품 인증을 받은 나무 울타리 안에 들어 있고, 시트 가죽은 자연산 올리브기름 추출액으로 다듬어진다. 이른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한 자동차다.
라이프치히에서 생산되는 이 자그마한 전기자동차의 이름은 i3다. BMW는 이 차종으로 미래의 성공을 도모하고 있다. 동시에 회사에 안정적 수익을 보장해주지만 ‘기름 먹는 하마’라는 비난을 받는 대형 자동차의 수명도 연장하려 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정한 각 회사의 이산화탄소 배출 허용량은 그 회사가 생산하는 자동차를 모두 합쳐 계산된다. 배기가스가 전혀 없는 전기자동차 덕분에 기름 먹는 하마의 탄소 배출 허용량이 훨씬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전기자동차가 자동차 제작사에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건 거대한 풍차뿐만이 아니다. BMW는 지금껏 전기자동차의 개발과 생산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금이 들어갔는지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략 20억~26억유로(약 3조~3조8천억원)가 투자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통상 디젤 등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새 차종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의 2배가 넘는 규모다.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 BMW 회장은 수백만명의 인구가 좁은 대도시에서 바글거리며 살 수밖에 없는 시대엔 작은 크기의 ‘대도시용 차량’만이 BMW의 성공을 유지하고 굳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몸집이 큰 마차 같은 차가 도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점차 맞지 않게 될 것임을 간파했다.
그의 계산이 맞아떨어질까? i3 같은 전기자동차가 도로 정체에 시달리는 거대도시 주민들에게 ‘운전하는 새로운 즐거움’(BMW의 광고 슬로건)을 다시 가져다줄 수 있을까? 작고 가벼운 차량이 과연 BMW라는 브랜드와 어울릴까? 전세계 부유층 고객들에게 강력한 엔진을 단 최상급 자동차라는 이미지로 각인된 BMW에 작고 가벼운 새로운 자동차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지도 의문이다. 자칫 이 프로젝트는 몇십조유로에 이르는 거대한 자금을 허공에 날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최고급 차량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아우디와 메르세데스조차 큰 격차로 따돌렸던 BMW로서는 전기자동차가 회사의 이미지를 한번에 몰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울리히 크란츠(55)는 이 도박을 승리로 이끌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2007년 회사가 ‘프로젝트 i’라는 이름으로 시도했던 커다란 변화를 뒤에서 이끈 ‘숨은 지휘관’이다. BMW 뮌헨 연구센터(FIZ)에선 수천명의 설계자들이 새 상품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 엔지니어는 자신이 BMW에 새로운 모델을 도입했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소형 자동차 ‘미니’(Mini)와 높은 차체의 ‘X5’가 출시되면서 뮌헨 사람들은 단숨에 열광적인 스포츠카 팬이 됐다. “‘카본 스토리’는 머지않아 출시될 i3에 고객이 차츰 익숙해지도록 조율해줄 것이다.”
250kg 배터리로 150km까지 주행
그런 그에게도 ‘프로젝트 i’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도전이었다. 크란츠는 “단순히 새로운 자동차를 개발해내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연료와 기술, 생산 시스템, 차체 설계만 새롭게 하는 게 아니라 판매 방법까지 다시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항구적으로 지속 가능해야 했다”고 말했다.
위험 요소가 너무 많은 프로젝트 아닐까? “물론이다!” 그럼에도 7년 전의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상품 개발자의 인생에서 단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거머쥐기로 결정했다. 당시 크란츠에게는 회사 내 인력은 물론 외부 전문가도 재량껏 영입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초기에 8명에 불과하던 담당 직원은 이제 300명으로 불어났다. 생산부 직원은 뺀 수다.
1980년 이후 BMW가 전기자동차 개발에 자동차 제작자를 몇명이나 투입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개발된 전기자동차는 첫번째 제품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 자동차 생산 대수도 늘 작은 규모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전기자동차의 재탄생’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자동차 배터리와 전기 구동장치를 모두 새로 개발했다.
아직까지 경쟁사들은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2011년 독일 자동차 회사로는 처음으로 대량 생산된 배터리 자동차 다임러사의 ‘e-스마트’가 그런 예다. i3와 같은 시기에 거리에 등장하게 될 폴크스바겐의 ‘e-UP’도 마찬가지다. 두 차종은 자사에서 생산되는 다른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라인을 그대로 활용해 제작된다. 폴크스바겐 그룹의 마르틴 빈터코른 사장은 이렇게 하면 생산유연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같은 벨트 위에 놓인 채로 시장의 수요에 따라 가솔린차, 가스차, 전기차로 바꿔 생산하게 된다. 전기자동차만 따로 생산하는 설비를 둘 때보다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빈터코른 사장은 배터리로만 가는 자동차는 주로 시내 교통수단, 즉 개인의 세컨드카나 서드카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폴크스바겐이나 다임러가 선택한 방법은 위험부담이 비교적 적다. 그러나 전기자동차를 단독 생산함으로써 i3를 둘러싸고 새로 써나갈 ‘카본 스토리’ 같은 신화를 만들어낼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실린더’에서 ‘풍차’의 세상으로 옮겨가는 이 변혁은 이제 단순히 문화적 변화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여러 가지 기술적 문제, 그리고 프로젝트 개발자가 BMW에 대한 시장의 기존 이미지와 새로운 변화 사이에서 어렵게 균형을 잡기 위해 고민했던 무수한 사례들이 이 스토리에 포함될 것이다.
디트마어 H. 람파르터 Dietmar H. Lamparter <차이트> 기자 economyinsight@hani.co.kr
ⓒ Die Zeit 2013년 29호 Er stinkt nicht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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